“사장에게 폭행, 성희롱, 괴롭힘, 부당해고를 당했지만 부당해고 구제신청 결과 기각이 나왔습니다. 차라리 제가 자살을 하고 이런 사실을 알리면 제 억울함을 알아줄까요?”(2023년 4월, 직장갑질119 이메일 제보 내용 중)
직장 내 괴롭힘 경험자 10명 중 1명은 극단적 선택을 고민해 본 적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최근 일부 주장처럼 직장 내 괴롭힘 판단 요건을 높여 피해자를 고립시킬 경우 이런 경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직장인 1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26일 보면,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 응답자 359명 가운데 “괴롭힘으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고민해 본 적이 있다”고 답한 이는 39명(10.1%)이었다. 괴롭힘 행위자로는 상급자(37%)가 가장 많았고, 비슷한 직급 동료(22.3%)가 뒤를 이었다. 대표나 경영진 등 사용자도 19.2%였다. 괴롭힘이 있을 때 사안 조사와 피해자 보호 조처를 해야 할 사용자마저 괴롭힘 행위자가 되는 일이 적잖은 셈이다. 조사는 지난 9월4일~11일 온라인 설문을 통해 이뤄졌다.
직장갑질119는 “신고 이후 달라질 것이 없다는 절망감이 죽음으로 억울함을 알리겠다는 극단적 사고로 이어진다”고 진단했다. 실제 직장갑질119에 지난 1월 접수된 이메일 상담에서 한 피해자는 “직장 내 괴롭힘을 노동청에서 인정 받았지만 회사가 가해자와 분리조치를 해 주지 않아 1년 넘게 가해자와 같이 근무하고 있다. 제가 죽으면 가해자들이 잘못을 인정할까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자살을 선택해야지만 제 일이 사회적으로 알려질 수 있는 것일까요?”, “억울함을 죽음으로 보여줘야 보육현장이 바뀌겠구나 싶다”는 등의 표현이 담긴 제보도 있었다. 올해 직장갑질119에 접수된 신원이 확인된 상담 이메일 1592건 중 극단적 선택을 직·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은 53건이다.
직장 내 괴롭힘 판단 기준에 지속성과 반복성을 추가해야 한다는 등 판단 요건을 강화하자는 주장에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고용노동부가 발주해 지난 3월 제출 받은 ‘직장 내 괴롭힘 분쟁 해결 방안 연구’ 보고서에는 업무능력 미인정, 조롱, 차별, 배제, 회식 강요 같은 괴롭힘 유형은 평균 주 1회 이상 반복되고 3개월 이상 지속될 때만 괴롭힘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주장이 담겼다.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하는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의미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도 지난 1일 청년들과 간담회에서 “직장 내 괴롭힘 판단 기준을 명확하게 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최승현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현행 괴롭힘 금지법조차 (사용자의)조사조치의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한계가 있는데 고용노동부는 이를 보완하는 대신 반복성과 지속성 요건을 강화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낸다”며 “이는 피해자를 고립시켜 극단적 선택을 할 가능성을 높이는 최악의 조처”라고 비판했다.
장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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