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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노동장관의 노란봉투법 때리기…“죽음의 침묵이 낫다는 건가”

등록 2023-11-10 20:08수정 2023-11-11 01:27

대법 판결까지 부정…노동계 “노조 혐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일방적으로 처리된 점에 대해 노동정책을 책임지는 장관으로서 비통한 심정을 억누르기가 어렵습니다.”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주무 장관인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즉각 브리핑을 열고 비난을 쏟아냈다. 이 장관은 개정안이 시행되면 “(원청에) 무분별하게 교섭을 요구하고 폭력적인 파업이 공공연해질 우려”가 있고, “산업 현장이 초토화”되며 “국가 경쟁력은 추락하고”, “일하고 싶어하는 근로자의 권리도 침해하게 된다”는 등 주장을 펼쳤다. 기울어진 노사관계 속에서 이를 공정하게 조정하고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노동부 장관이 되레 재계 주장을 격정적으로 쏟아낸 것이다.

노동계에선 이 장관의 발언이 “노조 혐오”에 바탕을 둔 무책임한 발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김혜진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은 한겨레에 “노동자들이 자꾸 투쟁할 수밖에 없는 건 회사가 교섭에 응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노동부 장관 말은 노동자들이 회사에 교섭을 요구할 권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잔 건데 파업보다는 죽음의 침묵이 낫다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노동계는 이 장관이 개정안 관련 구체적인 쟁점에 대해서도 사실관계가 맞지 않거나 극히 특수한 경우를 일반화한 주장을 펼쳤다고 지적한다.

■ “기존 판례 입법화했단 주장은 잘못이다”

이 장관은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더라도 하청업체나 특수고용노동자 등의 근로조건에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지배력을 미치는 사용자는 노조법상 교섭 의무(실질적 지배력설)를 지도록 한 2조 개정안이 대법원 등의 기존 판례를 입법화했다는 해석은 거짓이라며 “그릇된 주장으로 진실을 호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2010년 원청인 현대중공업이 하청 노동자의 사용자로서 부당 노동행위를 했다고 판결했는데, 이는 “부당노동행위(지배·개입)의 주체로서의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본 판결”일 뿐 교섭 의무까지 지운 판결은 아니라는 게 노동부 논리다.

전문가들은 사용자가 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 주체는 될 수 있으나 교섭 의무를 띤 사용자로 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노동부 논리는 자가당착이라고 반박했다. 현대중공업 판결 당시 노동자 쪽을 대리한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노동부 주장은 노조 활동을 지배하고 개입할 수 있는 사용자가 근로조건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해서 단체교섭은 못한다는 것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노조법상 단체교섭 거부도 부당노동행위이고, 노조활동에 개입하는 것도 부당노동행위인데, 사용자는 다르다는 게 더 이상하다”고 말했다. 이용우 법무법인 창조 변호사도 “대법원이 이 판결로 실질적 지배력설을 수용한 건데, 이를 선별적으로 수용했다고 볼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짚었다.

하급심 법원도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단체교섭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판결을 잇따라 내놓는 추세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5월 전국택배노조가 교섭을 거부하는 씨제이(CJ)대한통운을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 취소 사건에서 “씨제이대한통운이 택배노조 교섭 대상이 맞다”고 판결했다. 지난 3월엔 중앙노동위원회가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에 “하청노조가 교섭을 요구하는 경우, 원청 사업주가 하청 사업주와 함께 성실히 교섭에 응해야 한다”고 판정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0일 오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0일 오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 “사실상 손해배상청구가 불가능해진다”

이 장관은 사용자가 손해배상 소송을 걸 때 대상자의 책임을 구분해 액수를 특정하도록 한 개정안 3조에 대해선 “수십, 수백명의 불법행위자 중에 어떤 사람이 얼마의 손해액을 발생시켰는지 일일이 입증해야 하므로 사실상 손해배상 청구가 불가능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현재는 사용자가 쟁의행위를 한 노조원 전체에 수십억원 배상을 청구하면 나중에 남은 한두명의 노조원이 이 액수를 모두 배상해야 하는 구조(부진정연대책임)다.

이 또한 억측이란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용우 변호사는 “법원은 손해 발생이 확실하나 그 액수 산정이 곤란한 경우 여러 사정을 종합해 손해액을 인정하는 판례 법리를 형성해왔다”며 “민사소송법에 근거한 것으로, 이에 따라 손해액 산정이 불가능한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6월 현대자동차가 쟁의행위를 한 사내하청업체 소속 노조원 4명을 대상으로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은) 조합원별로 책임 정도를 판단해야 한다”며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내, 노란봉투법의 밑자락을 깔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 “1년 내내 교섭하고 파업할 것이다”

“수백, 수천개의 협력업체를 가진 일부 기업은 1년 내내 교섭하고 강성노조 사업장은 1년 내내 파업을 할 우려가 크다”는 이 장관 주장에 대해선 노동계는 “현실을 모르는 발언”이라고 반박했다. 1995년 대법원이 이른바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확정한 판결을 내놓은 이후 노동자는 파업 기간의 임금을 받을 수 없는 게 원칙이 됐다. 김혜진 공동집행위원장은 “1년 내내 파업하면 1년 동안 월급을 못 받는다. 어떤 노동자가 파업을 오래 하길 바라겠는가”라고 말했다.

‘1년 내내 교섭’ 주장은 전형적인 침소봉대라는 지적이 나온다. 개정안이 시행되더라도 원청이 모든 하청업체 노동자의 노조법상 사용자가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하청 노동자의 임금이나 노동시간 등 노동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하는 원청임이 입증돼야 하는 탓에 통상적인 도급 계약을 맺고 사업장도 달리하는 협력업체 노동자의 사용자로 원청에 책임을 지우는 경우는 매우 드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게다가 이미 노동 현장에선 여러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하나의 노조를 결성해 교섭 등을 요구하는 게 관행이다. 원청업체가 수백개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개별 상대해야 하는 일은 없다. 한화오션에 교섭을 요구하는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거통지회)가 대표적이다. 거통지회에 소속된 사업장만 100곳가량이다. 김혜진 위원장은 “모일수록 힘이 강해지는데, 따로따로 교섭하려는 노조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김해정 기자 se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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