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회사 바꿀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친구가 허리 아파서 일 못 하니까 회사에서 ‘아프면 스리랑카로 가라’고 했어요. 우리는 (한국에 오기 위해) 은행 대출을 받고 빚이 많아서 갈 수 없어요.”(스리랑카 출신 조선소 이주노동자 ㄱ씨)
저임금·장시간·위험 노동에 놓인 조선업 이주노동자의 모습을 담은 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조선소에서 일하는 10개국 410명의 이주노동자를 설문조사하고, 그중 22명을 심층면접한 결과다.
금속노조는 19일 오후 국회에서 ‘조선업 이주노동자 실태조사 보고회’를 열어 한화오션,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벌인 설문 결과를 발표했다. 조선소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는 올해 8월 기준 1만3258명으로, 지난해 6078명에서 배 이상 증가했다. 코로나19 완화와 조선업 경기 회복에 정부의 조선업 인력수급 정책이 더해진 결과다. 이번 조사는 지난 5~7월 설문지에 직접 자신의 상황을 적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설문 응답자 대부분(85.9%)은 시급제로 일하고 있는데, 평균 시급은 9680원으로 올해 최저임금(9620원) 언저리였다. 경력에 따른 임금 인상은 거의 없었다. 설문 응답자 중 6개월 미만 일한 노동자의 평균시급은 9636.3원, 5~10년 미만 일한 노동자의 평균 시급은 9772.3원이었다.
조선소 이주노동자에게 장시간 노동은 일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절반 가까이(49.1%)는 주 4회 이상 잔업을 한다고 답했다. 한달에 쉬는 날은 평균 4.3일로, 월평균 3일 이하 쉬었다는 이도 31.3%나 됐다. 1주일에 하루 남짓 쉰다는 의미다.
응답자 중 26.7%는 지난 1년간 다친 적이 있고, 24.7%는 질병 경험이 있었다. 대부분(96.3%) 안전교육을 들었지만 겉치레에 그친 모습도 드러난다. 응답자 18.7%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안전교육이 시행됐다’고 했다. 조선소에서 가장 힘든 점을 묻는 말(복수 응답)엔 위험한 작업환경(44.3%)과 노동강도(34.8%)가 가장 많이 꼽혔다. 응답자 63.7%는 ‘기회가 된다면 조선소가 아닌 곳으로 이직하고 싶다’고 답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조선업 이주노동자 실태조사 보고회’를 열었다. 장현은 기자.
이날 발표에선 특히 일반 기능인력 비자(E7-3)로 한국에 오는 이주노동자의 송출·송입 수수료 문제가 주로 지적됐다. 정부에서 관리하는 비전문 취업 비자(E-9, 고용허가제)와 달리 일반 기능인력 비자는 민간 업체가 수수료를 받고 이주노동을 주선한다. 심층면접에서 한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는 “스리랑카 돈으로 300만루피(약 1200만원)를 주고, 비행기 표 비용은 따로 내야 했다”며 “나는 집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았고, 다른 친구들은 집도 팔고, 차도 팔고, 오토바이도 팔고 왔다”고 말했다.
한국에 오는 과정에서 큰 수수료 부담을 떠안은 이주노동자는 열악한 노동 환경에 저항하기 어려운 조건에 놓인다. 윤용진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 사무장은 “큰 빚을 지고 입국해서 쉽게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무기로 열악한 환경에 처한 노동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 탓에 불법적인 계약서 작성까지 감수하는 조선소 이주 노동자의 현실도 이번 조사에서 드러났다. 일반 기능인력 비자로 입국하는 노동자들은 법무부 지침에 따라 입국 전 월 270만원의 통상임금을 보장한다는 계약서를 쓰는데, 입국 뒤 최저임금 수준의 계약서를 다시 강요받는 식이다.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이김춘택 사무장은 “(심층면접 조사에서) 2월에는 270만원 계약서를, 불과 한달 뒤에는 강요에 의해 210만원짜리 계약서를 쓴다”며 “입국한 뒤에 마지못해 쓰는 계약서가 정당한 계약서라고 할 수 있나. 원래 계약서와 다르게 지급해 발생하는 부족분은 체불임금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장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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