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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대표가 함께 일하기 힘들겠다며 제게 퇴사를 권유했고, 인사팀도 면담을 하며 사직서에 서명하라고 했습니다. 절차에 맞춰 해고 해달라고 했더니 제 업무 실수로 손실이 발생했다며 소송을 걸겠다고 해 결국 사직서에 서명했습니다.” (ㄱ씨, 직장갑질119에 보낸 이메일 제보 가운데)
ㄱ씨가 강요를 받아 서명한 사직서 한장은 회사의 일방적 해고를 자발적 퇴사로 둔갑시켰다. 이런 경우 실업급여를 받지 못할 수 있으며, 법에 따라 해고의 정당성을 다투기도 어렵다.
직장갑질119는 직장인 1천명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1월 이후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실직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이들이 13.7%였다고 11일 밝혔다. 실직 사유를 보면 계약 기간 만료(29.2%)가 가장 많았고, 권고사직·정리해고·희망퇴직(25.5%), 비자발적 해고(23.4%)가 뒤를 이었다. 조사는 여론조사 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3월 3~10일 이뤄졌다.
근로기준법은 회사가 일방적으로 근로관계를 종료시키는 해고 요건을 엄격하게 보고 있다. 우선, 정당한 해고 사유가 있어야 하며 적어도 30일 전 해고를 예고하거나 예고하지 않았을 경우 30일분 이상의 수당을 지급해야 하고, 사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해야 한다. 그러나 올해 1~5월 직장갑질119로 들어 온 이메일 제보(231건)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회사가 해고의 법적 요건을 무시했다. 구체적으로 “괴롭히다가 구두로 해고를 통보”(1월 제보)했다든가, “구두 해고 통보에 문제 제기하고 출근하려 했지만 회사가 출·퇴근 계정부터 막아버렸다”(2월 제보)는 호소가 있었다. 부당해고·징계에 대한 직장갑질119 이메일 제보는 전체 제보의 28.4%(231건)로 지난해 같은 기간(18.5%)보다 그 비중이 10%포인트 가까이 늘었다. 회사가 경영상의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하려면 긴박한 사유가 있어야 하고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며 해고 50일 전까지 노사 협의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회사가 힘들다”며 해고 남용이 흔하다.
더구나 회사가 사직을 권고하고 노동자가 이에 동의한 ‘권고사직’ 사례 중에는 사쪽이 고용보험 상실신고 코드를 ‘권고사직’(26번)이 아닌 ‘자진 퇴사’(11번)로 기재해 노동자가 실업급여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가 있다. 일부 회사는 감원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받은 정부 지원금이 끊길 것을 우려해 권고사직이나 해고 사실을 숨기려 하기 때문이다.
직장갑질 119는 부당하거나 위법한 해고에 대응하기 위해 △(증거 수집을 위해) 가슴에 품고 다녀야 할 것은 사직서가 아니라 녹음기 △사직서에 서명하면 부당해고도 실업급여도 ‘땡’(끝난다) △권고사직 때는 고용보험 26번 신고를 요구한다 △각서(부제소 특약)에 서명하지 않는다 △회사 동의 없이 퇴사할 때는 30일 전 통보한다 등 ‘퇴사 5계명’을 제시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