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같이 힘없는 사람들이 답답한 거 얘기할 수 있으니까 감사하죠. 누가 자기 일처럼 이렇게 해줘요.…아무것도 모르는 이런 노동자들한테는 정말 큰 힘이 돼요.”
곽경찬(65)씨는 지난 2018년 정년퇴직을 한 뒤 경비노동자로 일하며 서럽고 억울한 일을 자주 겪었다고 했다. 주차 타워를 관리하는 경비노동자로 취직했는데, 두 달 만에 갑작스레 해고당했다. 그 뒤 다른 아파트 경비노동자로 일할 때는 휴게시간에 쉬다 쓰레기 처리를 지시받았다. ‘부당하다’고 느꼈지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막막할 때 그가 의지한 곳은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였다. 사용자가 해고 30일 전 미리 예고를 하지 않으면 자신이 해고예고수당을 받을 수 있고 휴게시간을 보장하지 않은 때 이를 따지기 위해선 증거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사실을 노동상담소에서 알게 됐다. 노무사나 변호사를 선임할 여력이 없는 곽씨와 같은 노동자를 위해 한국노총이 운영하는 전국의 노동상담소는 부천을 포함해 모두 19곳이다. 한국노총은 국가에 사업 단위로 신청해 지원받는 국고보조금 26억원 가운데 14억7000만원을 노동상담소 운영 몫으로 사용한다.
윤석열 정부가 회계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에 지원하는 국고보조금을 중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상황에서, 실제로 국고보조금이 중단될 경우 ‘노동 약자’를 위한 노동상담소가 당장 존폐 기로에 놓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23일 오전 <한겨레>가 찾은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의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부천상담소) 활동가들은 “사업에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닌데, 노정관계를 푸는 도구로 이용하는 건 취약계층 노동자들한테 피해를 주는 정부의 자해행위”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23일 오전 이동철 부천 노동상담소 상담실장이 전화 상담을 하고 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이날 오전 3시간여 동안 박덕수 상담소장과 이동철 상담실장은 4통의 전화 상담을 하고 밀려 있는 10여건의 온라인 상담 건을 틈틈이 처리하느라 분주했다. 한 외국인 노동자는 지인이 지난해 건설현장에서 “몇 개월 치의 월급을 떼였다”며 상담을 해왔다. “어느 지역인지, 얼마나 일했는지, 원청이 하청에 돈을 줬는지” 등을 확인한 이 실장은 결국 내방 상담을 권유했다. 이 실장은 “이주노동자들은 한번 여기서 도움을 받으면 지인들한테 소개하기 때문에 ‘고객’이 점점 늘어난다”며 “이주노동자는 전화로는 상담에 한계가 있어서 내방을 권하는 일이 많은데, 단둘이서 상담소를 운영하다 보니 방문 상담이 하루에 한건만 잡혀도 전화나 온라인 상담이 적체된다”고 말했다.
부천 상담소를 이용하는 ‘고객’은 한 해 3489명(전화 상담 691명, 내방 122명, 인터넷 상담 2675명, 기타 1명 등, 2022년 기준)이다. 하루 평균 9명이 부천 상담소의 문을 두드리는 꼴이다. 2022년도 목표 건수는 2400건이었는데 계획대비 148%를 달성했다. 한 해 2800여명에 이른다. 근로시간, 휴가 관련 상담이 872건으로 최저임금·체불임금 등 임금 관련 상담(773건), 근로계약·취업규칙 관련 상담(749건)보다 많다. 주 최대 노동시간을 52시간에서 80.5시간(7일 근무 기준)으로 늘리려는 윤 정부의 연장근로 유연화 정책이 실제 시행될 경우 부천 상담소의 일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 실장이 기자에게 보여준 온라인 상담 페이지에는 23일 오전에만 8개의 상담이 신규로 올라왔다. 연차휴가 사용의 어려움, 포괄임금제 악용 등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부천상담소에서 10년 동안 일한 이 실장은 10대 알바 노동자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피시방이나 치킨집 등 프랜차이즈 업주들이 월급 대신에 피시방 이용권이나 폐기품인 삼각김밥을 주는데, 알바 노동자들은 “무단 취식으로 형사 고소한다”는 협박을 받고 퇴직금 신청도 못 한다. 이 실장은 “10대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서 상담하러 와서는, 결국 제도가 복잡해서 대응을 쉽게 포기한다”며 “노동의 시작단계에 부당한 경험을 하고 사회에 나가면 제도적 불신을 가질 텐데 그런 부분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한 사람의 노동자도 일터에서의 경험이 트라우마가 돼선 안 된다”고 믿는다. 호텔 식당에서 일하던 이 실장의 어머니가 주방장 허락 아래 남은 식재료를 싸간 뒤 인사담당자가 그 장면이 찍힌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내밀며 “임금 삭감에 동의하지 않으면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했던 경험은 ‘노동 약자’를 조력하는 상담소를 첫 직장으로 잡은 계기가 됐다.
공공근로 노동자들이 모인 ‘시니어클럽’ 교육도 부천상담소가 신경 쓰는 부분이다. 박 소장은 “고령자에게는 근로기준법 적용 예외가 많아서 내용을 더 잘 아는 게 중요하다”며 “간혹 ‘나는 늙어서 그런 거 몰라’라고 하는 어른들한테는 제가 정말 단호하게 말씀드린다. 청년이든 노년이든 노동법은 다 알아야 안 당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12차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제1차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노조 부패를 공직 부패, 기업 부패와 함께 척결해야 할 3대 부패로 규정했다. 연합뉴스
부천상담소 운영은 한국노총이 하나, 상담소 이용자는 노조 조합원보다 비조합원이 훨씬 많다. 지난해 한국노총이 운영하는 상담소 19곳의 전체 상담 건수 중 조합원 이용자는 1843명인 반면, 미조직 노동자(비조합원)는 1만5743명으로 8배에 가까웠다. 특히 부천상담소는 ‘사용자’들도 자주 찾는다고 한다. 박 소장은 “매달 월급 줄 때마다 헷갈리는 부분들 저희한테 전화하는 노무 담당자들도 있다”며 “강원도에 있는 어느 회사 총무, 그리고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 경리는 목소리만 들어도 딱 알고 ‘아 월급날인가보다’ 한다”고 말했다.
부천의 한 청소업체 대표인 홍순찬(62)씨도 부천 상담소 단골이다. 청소업체 직원일 때 부천상담소를 알게 되었고 노조를 하면서 부당해고를 당했을 때도 도움을 받았다. 홍씨는 “5명, 10명 수준의 사업장에 있는 노동자들이 노무사를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구제를 받나. 아직 작은 사업장에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있는 것도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며 “내가 주변에 ‘여기(부천상담소) 가면 얘기해볼 수 있다’고 소개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부천상담소가 문 닫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기자에게 들은 홍씨는 손사래를 쳤다. “여기 없으면? 절대 안 되죠. 상당한 문제가 생기죠. 이보다 좋은 제도가 어딨다고 이걸 없애요. 국가에서 이건 없어도 만들어야 하는 건데, 지원을 끊으면 안 되지…”
장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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