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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가족비자도 안 주는 이주노동자 ‘10년 체류’…인권은 빠졌다

등록 2022-12-29 17:48수정 2022-12-29 21:33

정부, 고용허가제 개편방안 내놨지만
‘사업장 변경 횟수 제한’ 등 완화책 빠져
인력난 해소 명분 노동착취 강화 우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이주노동자평등연대 등 노동 관련 단체들이 지난 10월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에 이주노동자의 안전한 거주 대책 마련 등을 촉구하고 있다. 이주노동자평등연대 제공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이주노동자평등연대 등 노동 관련 단체들이 지난 10월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에 이주노동자의 안전한 거주 대책 마련 등을 촉구하고 있다. 이주노동자평등연대 제공
정부가 29일 내놓은 ‘고용허가제 개편방안’은 대표적으로 이주 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지목돼 온 사업장 변경 횟수 제한 완화책 등이 빠졌다. 이주노동자 단체에서는 국내 중소기업의 심각한 인력난 해소를 명분으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개편방안의 핵심으로 숙련인력 확보를 내걸었다. 현재 비자 제도에선 3~4년 한 사업장이나 업종에서 일하며 숙련이 쌓인 이주노동자도 입국 뒤 4년10개월 뒤엔 무조건 본국에 돌아간 뒤 6개월이 지나야 다시 들어올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국내 업주가 겪는 인력 확보의 어려움이 크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 이주노동자가 한 번 입국해 10년 이상 일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부는 한 번 입국 뒤 최대 3번까지만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한 제도의 틀은 흔들지 않았다. 준숙련 인력으로 인정받으려면 제조업의 경우엔 30개월 이상(비제조업은 24개월 이상) 근속 조건을 채워야 하고 장기근속 특례 인정 뒤에도 일정기간은 해당 사업장 근무를 해야 한다. 사용자의 귀책 사유가 있는 경우엔 횟수에 상관없이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곤 하나, 이주노동자들은 그동안 사용자 귀책사유를 인정받기 어려웠다.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 변경 횟수 제한이 사실상 강제 노동으로 작동한다며, 횟수 제한을 풀어달라고 요구해왔다.

장인숙 한국노총 정책부본부장은 “준숙련 노동자가 되려면 사업장 변경이 더 어려워지게 됐다”며 “정부 방안으론 숙련노동자가 되려는 이주노동자 인권이 더 제한될 것으로 보여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종필 노동부 기획조정실장은 “현재 노사로 구성된 티에프(TF)를 구성해 논의 중으로, 결과가 나오는대로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10년 이상 이주노동자의 장기 체류를 유도하는 정책을 펴면서도 이들 노동자의 ‘가족결합권’에 대한 내용이 빠진 것도 비인도적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현행 고용허가제에서 가장 많은 인력한테 주는 비전문인력 비자(E-9)를 받는 노동자는 국내에 들어와 최장 9년8개월(4년10개월+4년10개월) 동안 일해도 가족을 동반할 수 있는 비자는 내어주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가족을 보려 출국하려 해도 사용자 눈치가 보여 힘들고 가족들이 관광 비자 등으로 들어오는 수밖에 없다.

유엔이나 국제노동기구(ILO)는 이주노동자의 가족결합권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라고 권고한다. 정영섭 이주노동자평등연대 집행위원은 “이주노동자들이 가족을 단기간이라도 초청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 장기 체류를 허용하면 이에 따른 기본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짚었다.

노동부는 준숙련 인력 활용 관련 10년 이상 체류 방안, 유학생 특례 신설, 3개월 미만 파견 허용 등 관련해선 내년 상반기 중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과 ‘출입국관리법’,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 개정에 나설 방침이다. 도축된 가축 상·하차 등 직종에 이주노동자를 확대하는 방안 등은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으로도 가능하다는 게 노동부 설명이다.

정부의 고용허가제 개편방안을 ‘유연화’의 관점에서 비판하는 노동계와 달리 산업계는 대체로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손성원 중소기업중앙회 외국인력지원부장은 “준숙련제도 도입이 이미 고령화된 뿌리산업 쪽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삼호중공업 협력사 유일의 유인숙 대표도 “(이주노동자가 본국에) 나갔다 6개월 뒤 다시 들어오기 쉽지 않은 탓에 그동안 우리가 계속 요구한 사안이라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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