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자회사·손자회사인) 하청 초봉 높아지면 ‘차라리 아웃소싱(외주업체) 쓰는 게 훨씬 싸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해버리니까 하청 대표도 단가를 높이기 애매한 거죠.”(한 대형 포털 손자회사 소속 ㄱ노동자)

네이버, 카카오를 비롯한 게임업체 등 굴지의 정보통신(IT) 업체들이 자회사와 손자회사 및 하청회사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갑질을 한다는 증언이 나왔다. 직장갑질119가 이들 원청업체의 갑질을 제보한 노동자 9명을 면접 조사해 28일 <한겨레>에 제공한 ‘아이티(IT) 원하청 실태 보고서’를 보면, 정보통신 대기업 갑질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자회사와 손자회사 설립을 통한 노동 통제는 대표적인 유형이다. ㄱ씨는 “(외부업체 대신) 자회사에는 안정적으로 일을 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들 우리 안에 가둬 놓고 업무를 시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본사가 절대 지분을 가진 계열사이다 보니 변수 없이 통제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는 곧 본사의 횡포로 이어진다. 대형 모바일 게임업체의 손자회사 직원들은 최근 연봉 인상을 요구했다가 권고사직에 내몰렸다. 서버 개발 업무를 하는 ㄴ씨는 “실적 같은 걸로 쪼아 (손자회사) 사람들을 내보내는 건 본사 인력 내보내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라며 “(연봉 인상 요구 뒤) 월요일에 출근했더니 인사담당자가 바로 권고사직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ㄴ씨는 “(본사가) 상황에 비해 우리 회사 규모가 너무 큰 것 같으니 볼륨을 줄이라는 식으로 지시를 내렸다”며 “연봉 인상을 요구했던 고객팀장은 우리 내부 회의를 거쳐 얼마 전 권고사직으로 나갔다”고 덧붙였다.

정보보안 기술서비스를 제공하는 한 기업의 1차 하청업체에서 알고리즘 연구개발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 ㄷ씨는 “본사가 단가를 후려치니까 우리 회사 인건비가 낮아지고 개발자들한테 돌아가는 몫도 낮아진다”고 말했다. 반도체 대기업의 1차 하청업체에서 설계 업무를 하는 ㄹ씨는 “기한 안에 납품하려다 보면 주말을 전부 출근해 새벽 4시까지 일해 끝내야 한다”고 밝혔다.

직장갑질119는 “정보통신·게임업체들이 업무 일부를 하청업체에 도급하거나 개발·운영 조직을 분사해 자회사를 설립한 뒤 노동조건이나 복지 시스템을 결정하는 간접고용 구조로 사용자 책임은 회피하고 이윤은 극대화하고 있다”며 “개별법의 원청 사용자와 하청 노동자 사이의 사용종속 관계를 인정하거나 노동조합법 2조의 사용자 개념을 개정해 진짜 사용자가 권한 행사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고 짚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