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케이블 채널 <시엔엔>(CNN)은 지난 2월2일 놀라운 뉴스를 발표했다. ‘시엔엔 월드와이드’ 사장 제프 저커가 사임한다는 소식이었다. ‘팩트 퍼스트’(Facts First)를 내걸고 도널드 트럼프의 가짜뉴스와 맹렬히 싸우던 그를 자리에서 끌어내린 건 트럼프 극렬 지지자도 아니고 건강 문제도 아니었다. 부사장 겸 최고마케팅책임자인 앨리슨 골러스트와 사귄다는 걸 회사에 알리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저커는 직원들한테 보낸 전자우편에서 “나는 ‘합의된 관계’가 시작됐을 때 공개할 것을 요구받았지만, 하지 않았다. 내가 잘못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자유를 상징하는 나라지만, 회사가 사내연애를 통제하는 경향이 뜻밖에 강하다. 맥도널드의 경우 ‘인사운용 가이드라인’에 데이팅 항목을 따로 둔다. 직간접적인 보고 관계에 있는 사원들끼리는 데이트하거나 성관계 맺는 것을 금지한다. 회사 정책에 반하는 관계를 맺을라치면 인사부서나 상급자한테 즉시 조언을 구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해고당할 수도 있다. 실제로 맥도널드 최고경영자 스티브 이스터브룩이 이 가이드라인을 어겼다는 이유로 2019년 11월 이사회에서 해고됐다. 메타(옛 페이스북)는 사내연애를 금지하진 않는다. 하지만 직원 핸드북엔 데이트 신청을 했다 실패한 동료한테 다시 데이트를 신청하는 것을 금지한다.
매우 사적인 영역인 사내연애를 회사가 통제하는 배경엔 특정 관계가 승진이나 업적 등에 영향을 끼쳐 다른 동료와의 신뢰관계가 깨지고 조직의 화합을 해칠 수 있다는 판단이 있다. 무엇보다 권력이 작동하는 위아래 관계에선 사내연애가 성적 착취로 연결될 위험도 있다는 게 이들의 핵심 논리다. 반면 지나친 사생활 침해이며 사내연애를 하는 이들을 더 숨어들게 만드는 탓에 효과적이지도 않다는 반론 또한 만만찮다. 자칫 이성 동료를 관계에서 배제하는 ‘펜스 룰’처럼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2017년 미국 배우 얼리사 밀라노가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희롱을 폭로하며 ‘미투’의 거대한 흐름이 시작된 이후, 미국에선 사내연애 통제론이 더 힘을 얻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터 안팎에서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 잇달아 폭로되며 종종 ‘연애’라는 이름에 가려진 권력관계의 문제가 뚜렷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난 15일은 밀라노의 미투 선언 5년이 되는 날이었다.
전종휘 사회정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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