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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단독] “중대재해법, 형사처벌 아예 삭제” 기재부, 법 무력화 나섰다

등록 2022-10-16 16:03수정 2022-10-17 14:14

노동부에 낸 법령 개정방안 의견…월권 논란
9월26일 오전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대전점 주차장에서 불이 나 7명이 숨진 가운데 27일 경찰 등 현장 감식반이 감식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 적용을 검토 중이다. 연합뉴스
9월26일 오전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대전점 주차장에서 불이 나 7명이 숨진 가운데 27일 경찰 등 현장 감식반이 감식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 적용을 검토 중이다. 연합뉴스

기획재정부가 중대재해처벌법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에 지난 8월 법·시행령 개정 관련 의견을 전달한 사실이 밝혀져 ‘월권’ 논란이 인 가운데 그 구체적인 내용이 확인됐다. 주로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의 폭과 수위를 크게 낮추자는 내용으로, 기재부가 나서 기업 요구대로 중대재해법을 무력화하려 한다는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우원식 의원이 노동부에서 제출받아 16일 공개한 ‘기재부가 보낸 중대재해법령 개정방안에 대한 노동부 입장’ 문건을 보면, 기재부는 종사자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해 중대산업재해를 발생시킨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대폭 완화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노동부에 제안했다. 우선 종사자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 현행법 처벌규정에 대해 기재부는 “고의 또는 반복적으로 의무를 위반하는 경우에만 경영책임자를 처벌”하거나 “형사처벌 규정을 삭제”하자고 제안했다. 형사처벌 대신 “경제벌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기재부는 대표이사가 아닌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를 경영책임자로 보자고 한 내용 역시 법률 개정방안에 포함했다. 그동안 경영계는 기업 오너 등 최고경영자(CEO)가 처벌되지 않기 위해 안전보건최고책임자도 경영책임자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주장을 그대로 옮긴 셈이다. 아울러, 중대재해법에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중대산업재해·중대시민재해가 발생한 경우 손해액의 5배까지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조항도 있는데, 기재부는 중대산업재해를 징벌적 손해배상에서 제외하자고 제안했다.

기재부는 시행령도 10개 항목에 걸쳐 개정방안을 제시했다. 눈에 띄는 것은 기업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위한 경영책임자의 의무 ‘완화’다. 경영책임자가 사업장 유해·위험 요인을 확인·개선하는 △절차를 마련하고 △개선 여부를 점검한 뒤 △필요한 조치를 이행할 의무를 부과하는 현재 시행령을 “유해·위험요인을 확인·개선할 의무” 수준으로 뭉뚱그리자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종사자 안전·보건 확보를 위해 종사자의 의견을 청취할 △절차를 마련하고 △이에 따른 개선 여부를 점검하며 △필요한 조치를 이행해야 하는 의무 역시 “의견 청취 이행 의무” 수준으로 완화하자는 게 기재부 제안이다. 노동부는 이에 대해 “점검과 필요한 조치는 안전보건관리체계가 제대로 운영되고 안착하도록 하는 핵심 사항”이라며 반대 뜻을 명확히 했다.

공인 기관의 안전경영체계 인증을 받으면 중대재해법의 안전보건관리체계에 관한 업무절차 마련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간주하자는 내용도 기재부 개정방안에 포함됐다. 이에 대해서도 노동부는 “인증과 사고 발생 시점 간 의무이행 여부 판단 시점이 상이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예전에 받은 인증을 받았다고 해서 사고가 발생 시점에 중대재해법의 의무를 이행했다고 보기엔 어렵다는 뜻이다.

중대재해법 시행령은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를 경영책임자한테 의무로 지우는데, 기재부는 ‘관계 법령’에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등 6개만 해당하는 것으로 시행령을 개정하자고 제안했다. 노동부는 10개 법령을 넣을 계획으로, 노동계는 소방법 등을 포함해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우원식 의원은 “그동안 기재부는 ‘부처 간 정책 협의’라거나 ‘연구용역 내용 일부를 전달한 것’에 불과하다고 해명해왔지만, 중대재해법령을 기업이 요구하는 대로 뜯어고치려는 의도가 명확해졌다”며 “기재부는 중대재해법에서 손을 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중대재해법 완화 뜻을 밝혀온 상황이어서, 정부가 시행된 지 1년이 채 안 된 이 법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초미의 관심사다. 노동부는 법률 개정보다는 불확실하고 모호한 시행령 조항을 개정한다는 태도를 밝혀왔는데, 기재부가 이 과정에서 자체 시행한 연구용역을 바탕으로 노동부에 법령 개정방안을 전달한 사실이 알려져 크게 논란이 된 바 있다. 기재부는 “노사·관계부처 간 이견이 첨예한 정책 사안에 대한 ‘노사관계 정책의 협의·조정’ 업무도 담당하고 있어, 연구자가 제시한 시행령 개정 제안을 (노동부에) 공유해 정책 결정에 참고하도록 한 것”이라면서도, 기재부가 노동부에 전달한 개정방안이나 개정방안의 근거가 되는 연구용역도 공개하지 않아 논란은 더욱 확산됐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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