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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

재택근무, 어쩐지 일 잘되더라…협업 3배나 늘었다

등록 2022-05-18 04:59수정 2022-05-18 10:52

포스트코로나, ‘뉴노멀’ 재택근무①
‘업무지식 공유’ 재택 때 56%
사무실 근무보다 3배 늘어
생산성도 사업체 45% 긍정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국내 정보기술(IT) 대기업의 서비스운영 담당자인 ㄱ(30)씨는 코로나19 유행 초기인 2020년 하반기부터 지금까지 사무실로 출근한 날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다. 회사가 재택근무를 원칙으로, 희망자에 한해서만 사옥 출근을 허용하는 원격근무제를 최근까지 유지하고 있어서다. 이 회사는 팬데믹 이전 일주일에 열차례 이상 대면 회의를 했고, 외부 미팅도 잦았다. 부서 막내들은 회의실을 찾느라 매일 업무시간을 허비했다.

재택근무 도입 이후에도 비슷한 횟수로 비대면 회의를 하지만, 회의 시간은 물론 관리자들의 ‘업무 질책’ 시간도 눈에 띄게 줄었다. 업무 효율과 분위기가 모두 좋아졌지만, 그보다 더 눈에 띄는 재택근무의 효과는 업무의 문서화와 매뉴얼화다. ㄱ씨 부서에선 서비스 오류나 고객관리 민원 등 돌발상황이 잦았고, 담당자가 ‘알음알음’ 처리한 뒤 관리자에게 ‘구두’로 보고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렇게 각자 쌓은 노하우를 한데 모아 소통하기가 어려웠고, 업무 인수인계가 어려울 때도 있었다. 비대면 근무의 도입으로 대면 보고가 불가능해지자, 직원들은 업무 진행 상황을 업무용 협업툴에 기록하고 공유해야 했다. ㄱ씨는 17일 <한겨레>에 “비대면으로 떨어져 일하면서 오히려 업무체계가 더 잘 잡혀 신기했다”고 말했다. 

재택근무 중인 현대모비스 직원이 화상회의 플랫폼을 통해 팀원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 현대모비스 제공
재택근무 중인 현대모비스 직원이 화상회의 플랫폼을 통해 팀원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 현대모비스 제공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2년 동안 집(재택근무) 등 사무실이 아닌 곳(원격근무)에서, 대면하지 않고 일하는(비대면 근무) 직장인이 늘었다. 코로나19 초기만 하더라도 ‘비대면·원격·재택근무’의 생산성과 효율성에 대해 의심을 품었지만, <한겨레>가 재택근무를 경험한 노동자들을 만나 보니, 업무 만족도가 높을 뿐 아니라 뜻밖에 ‘협업’이 수월해졌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글로벌 제조업체 ㄴ사에서는 회의에 들어갔던 관리자가 회의 내용을 ‘구두’로 전해주면 이에 따라 일을 진행해왔다. 이 회사 인사 담당자는 “재택근무 이후 비대면 회의 참석 범위가 늘어 어떤 취지로 업무 지시가 내려졌는지 잘 알게 돼 효율성이 높아졌다”고 했다. 재벌 계열사인 ㄷ사에서는 여느 회사처럼 종이 보고서를 만들어 대면으로 보고하는 체계였다. 재택근무가 정착된 지금은 업무용 협업툴에 의견을 붙여 비대면 보고를 한다. 이 회사 구매 담당자는 “전자우편 등으로 일하다 보니 모든 게 정제되는 느낌”이라며 “문구 하나를 쓸 때도 글로 근거가 다 남으니까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드러나는 노동자들의 주관적인 평가는 통계적으로도 뒷받침된다. <한겨레>가 입수한 ‘비대면 시대 일하는 방식의 변화와 일·생활균형’(연구책임자 손연정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보고서를 보면, 재택근무를 하면 협업이 어렵다는 선입관과 달리 협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응답이 많았다. 연구팀은 지난해 7~9월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는 사업체 620곳과 노동자 3000명을 대상으로 국내 첫 대규모 실태조사를 벌였고, 최근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를 보면, 특히 ‘업무 관련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는 의향’이 사무실에서는 18.7%였지만, 재택근무에서는 56.6%로 3배나 높았다. ‘업무 중 상사·동료·부하직원과의 의견 공유 정도’도 사무실 49.9%, 재택근무 54.6%였다.

재택근무가 업무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인식도 ‘기우’에 가까운 것으로 조사됐다. 재택근무로 인한 생산성 향상을 묻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31.2%, ‘보통’은 39.2%로 나타났다. ‘그렇지 않다’는 답변은 29.3%에 그쳤다. 사업체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응답한 곳이 45.5%로, 노동자 대상 조사보다 오히려 높게 나타났다. ‘보통’ 49.4%, ‘그렇지 않다’는 5.1%였다. 미디어 플랫폼업체에서 일하는 성아무개(39)씨는 <한겨레>에 “사무실에 나가면 쓸데없는 회의를 너무 많이 했지만, 재택근무를 하면서 그런 데서 낭비되는 체력을 업무에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재택근무 할 때는 하루 업무 계획·성과를 아침저녁으로 보고하는데, 계획대로 완수하는 경향이 더 강해졌다”고 했다.

자동차부품을 만드는 전통 제조업체인 현대모비스는 2020년 11월부터 재택근무를 아예 인사제도의 하나로 ‘공식화’했다. 현대모비스는 재택근무 시행 전인 2019년과 시행 이후인 2021년을 기준으로 재택근무 활용률이 높은 집단과 낮은 집단의 인사평가 결과와 성과를 통계학적으로 분석했는데, 두 집단 사이의 차이나 전체 직원 평균과의 유의미한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다.

이 회사에서 부품 구매 업무를 하는 문지영(35) 매니저의 사례를 보면, 재택근무로도 생산성이 유지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매일 선적·통관·입고 현황을 검토하고, 사내 다른 부서나 해외협력사와 소통하는 문 매니저는 정기적으로 해야 하는 데이터 분석 등의 업무는 주 2~3회 재택근무 때 몰아서 한다. 문 매니저는 “예전엔 사무실에 남아 야근하며 처리했지만, 이제는 일부러 재택근무 날에 맞춰 일정을 잡고 있다”며 “사무실에서는 소음도 있고 집중력이 분산될 가능성이 있지만 집은 오롯이 내 일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 매니저는 코로나19 유행이 한창일 때 이사한 탓에, 집에 일할 수 있는 공간도 별도로 만들었다. 남편과 같이 재택근무를 하는 날에도 서로 다른 방에서 일하면서 메신저로 대화하고 쉬는 시간도 따로 정해놓는다. 그는 “재택근무가 ‘쉬는 것’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굉장히 노력하는 편”이라고 했다.

다만 기업들은 ‘비대면 소통’이 갖는 근본적인 약점을 해결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특히 새로 입사한 직원들의 적응 문제나, 직원들끼리 잠깐씩 대화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드는 ‘스몰토크’의 강점을 재택근무 환경에서 어떻게 구현해낼지가 관건이다. 네이버는 노동자에게 ‘완전 재택근무’와 ‘주 3일 이상 사무실 근무’를 선택지로 줬다. 이 회사는 신입(경력)사원이 사무실로 출근하는 날, 다른 직원이 함께 출근해 멘토링을 진행하고 있다.

재택근무가 채용시장에서 주된 ‘노동조건’으로 여겨질 정도로 만족도가 높고, 실제 생산성·효율성에서도 큰 차이가 없는데, 코로나19가 ‘엔데믹’(풍토병) 단계에 접어들자 기업들이 기다렸다는 듯 ‘올드 노멀’로 돌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손연정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조직문화의 영향이거나, 재택근무를 공식화했을 때 발생하는 인사평가제도 수립의 어려움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손 부연구위원은 “초기에는 여러 부작용과 혼란이 있었지만 기업과 노동자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생산성·효율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있는 만큼, 재택근무의 제도적인 확산을 위한 노력들이 더욱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태우 천호성 신다은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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