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서울 통의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경제6단체장을 만나 오찬회동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노동조합보다 노사협의회와 미조직 사업장의 근로자대표제를 설정해 노동조합의 영향력 강화를 경계하고 있다.”
30일 오후 민주노총·지식인선언네트워크 주최로 열린 ‘윤석열 정부 출범 정책진단 토론회’에서 조돈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대표(노회찬재단 이사장)가 “윤 당선자의 자본편향 관점과 민주노총 죽이기”를 우려하면서 짚은 대목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공약집 ‘노동개혁’ 파트에선 ‘근로시간에 대한 노동자의 선택권’ ‘세대 상생형 임금체계’ ‘대화와 타협을 통한 상생의 노사관계’를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단순히 노동시간 유연화·임금체계 개편뿐만 아니라, 조 대표의 우려처럼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의 ‘집단적 이익대변체계’와 ‘집단적 노동조건 결정구조’에 큰 손질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조건 결정 주체를 사업장 전체 대표에서 ‘부문 대표’로 쪼개고, 노사협의회를 강화하겠다는 취지여서 ‘노동조합 힘빼기’에 따른 논란도 예상된다.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연맹 조합원들이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윤석열 정부 인수위 규탄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 대통령당선인의 반노동정책과 노동개악 등을 규탄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윤 후보의 공약집을 보면, 노동시간 유연화의 수단으로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기간을 현행 1∼3개월에서 1년 이내로 확대하면서, 도입에 필요한 ‘노사합의 주체’를 부서별·직무별로 하겠다는 언급이 나온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선택·탄력근로제 등 유연근로제를 시행하려면 ‘과반수노조’나 ‘노동자의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가 필수다. 그런데 공약은 서면합의의 주체를 전체 노동자를 대표하는 이들이 아니라, 직무·부서로 쪼개 과반수노조나 근로자대표의 권한을 분산시키겠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의 ‘근로자대표’는 유연근로제 도입 뿐만 아니라, 초과근로수당 대신 지급되는 보상휴가제 합의, 경영상해고 전 협의주체, 퇴직연금제도 운영,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운영 등 다양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법에 근로자대표의 선출절차와 임기, 보호방안 등에 대한 아무런 규정이 없어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수년째 계속됐다. 실제로 2020년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제도개선에 관한 합의안을 내놓았으나 입법에 이르지는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부문 대표’ 제도 도입이 추진될 경우 또다른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부문대표’는 임금체계 관련 공약에도 등장한다. “직무·직군·직급별로 부문 근로자대표와 서면합의로 임금체계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임금체계는 사업장 취업규칙에 정리돼 있고,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기 위해서는 과반수노조 또는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만약 직무·직군·직급별로 취업규칙을 바꿀 수 있게 한다면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통해 취업규칙을 변경하게 한 제도 자체가 흔들리게 될 뿐만 아니라, 근로자대표와 마찬가지로 동의 주체가 쪼개진다.
취업규칙의 손쉬운 변경은 기업들의 오랜 ‘숙원’이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러한 요구가 반영돼 노동개혁 명목으로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 제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공기관에 성과연봉제 도입을 추진했다가 거센 반발을 샀을 뿐만 아니라, 지침에 사용된 법리가 법원에서 모조리 부정되기도 했다. 해당 지침은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폐기됐다.
헌법이 노동3권을 보장하고, 근로기준법이 근로자대표·노동자과반수 제도를 두고 있는 것은 노동조건 결정 과정에 상대적으로 힘의 ‘열위’에 놓여있는 노동자들에게 ‘집단적’인 권리를 행사하게 하기 위함이다. ‘뭉치면 강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부문별로 쪼개는 것은 결국 노조, 특히 과반수노조 힘빼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부서와 직무별 대표를 뽑아 권한을 부여한다는 것은 사실상 사용자 마음대로 하겠다는 얘기와 다름이 없다”며 “노동조건의 집단적 결정 과정에서 노조를 배제하고,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때 동의절차 자체를 무력화시킬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무노조 경영’을 해왔던 삼성은 노사협의회를 ‘전략적 육성’ 대상으로 삼았다. 사진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의 ‘2013년 노사안정화대책’ 문건 일부.
노조 힘빼기는 노사협의회 관련 공약에도 드러난다. 노사협의회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은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을 선출할 때, 과반수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과반수노조가 위원을 위촉하게 하고, 없다면 노동자들이 직접·비밀·무기명 투표로 선출하게 돼있다. 윤 당선자의 공약은 과반수노조가 있는 사업장의 노조 근로자대표 위촉권을 없애겠다는 내용이다.
게다가 공약집 전반에 노사협의회 운영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는 점 역시 노조 힘빼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노사협의회는 사용자위원과 근로자위원이 노동조건에 관한 사항을 ‘협의’할 수는 있지만, 헌법이 보장하는 노조의 단체교섭권이나 단체협약체결권보다는 이행력과 구속력이 떨어진다.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들은 교섭과정에서 이행사항 관철을 위한 단체행동도 할 수 없다. 대표적으로 삼성이 노사협의회 위원 선출을 회사 쪽이 ‘관리’하면서 노동자들의 불만을 통제해 노조설립을 막고, 노조가 설립되면 ‘친사노조’로 전환하기 위해 사용했던 것이 노사협의회다. 현재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 계열사에 조직된 노조들이 회사 쪽과 임금교섭을 하고 있지만, 삼성은 여전히 노사협의회를 통해 임금·노동조건에 관한 사항을 결정하고 있어 노조들이 이를 비판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공약 내용 전반을 살펴보면, 근로자대표·노동자과반수제도를 손질하고 노사협의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노동조합, 특히 과반수노동조합을 무력화하려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윤 당선자와 안철수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이 쏟아왔던 발언이나, 기업들이 ‘노조 때문에 기업하기 어렵다’고 했던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조돈문 대표는 이날 토론회에서 “미조직 노동자들의 이해관계 대변을 위해 노사협의회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노조의 영향력을 억제하기 위해 노사협의회를 활용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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