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씨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대표가 지난 2월10일 김용균씨 사망사고에 대한 선고 공판이 끝난 뒤 대전지법 서산지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산업재해를 낸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 국회가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을 개정하고, 법원이 양형기준을 강화했음에도 실제 형량은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주가 안전보건조치를 하지 않아 노동자가 숨졌어도 기소된 이들의 절반은 벌금형에 그쳤고, 나머지는 평균 7개월 남짓의 징역형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형도 극히 드물었다. 산재 사망사고에 대한 ‘엄벌 여론’이 법원까지 가 닿지 않은 셈이다.
20일 고용노동부 연구용역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범죄에 대한 판례분석’ 보고서(연구책임자 이진국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보면, 법 개정과 양형기준 강화 이후 선고된 형량이 종전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2020년 1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선고된 산안법 위반 사건 1심 판결문 496건(2020년 304건·2021년 192건)을 바탕으로 작성됐다. 2020년 1월16일부터 개정 산안법(이른바 ‘김용균법’)이 시행돼, 원청 사업주가 안전보건조치의무를 위반해 하청노동자가 숨지면 하청사업주와 똑같이 처벌(의무위반치사·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하도록 했다. 이어 지난해 7월부터 대법원의 산안법 위반 범죄 양형기준이 강화됐는데, 산안법 개정과 대법원 양형기준 강화가 형량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것이다.
산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람’(법인 제외)에게 징역·금고(집행유예 포함)형이 선고된 비율은 2020년 49.4%(445명 중 220명), 2021년 48.9%(278명 중 136명)로 절반 수준이었다. 징역·금고형의 평균 형량은 7개월 남짓에 불과했다. 분석대상 판결 중 기소된 723명 가운데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불과 15명으로 전체의 2.1%에 지나지 않았다. 징역·금고형을 받지 않은 사람이 낸 평균 벌금액은 2020년 423여만원, 지난해 488만여원에 불과했다. 법인도 많은 벌금을 낸 것은 아니었다. 2020년 평균 515만여원, 2021년엔 599만여원에 그쳤다.
분석대상 판결 가운데 개정 전 산안법을 적용받아 기소된 사람은 495명인데, 이들 중 징역·금고형이 선고된 비율은 48.3%(293명)이었다. 개정 후 산안법으로 징역·금고형이 선고된 비율은 51.7%(234명 가운데 121명)로 다소 늘었다. 징역·금고형을 선고받은 이들의 평균 형량도 각각 7.94월·7.43월로, 개정전 산안법을 적용받은 이들의 7.23월·7.47월보다 조금 늘었다. 특히 의무위반치사 평균 선고형량도 개정 전 평균 7.21월에서, 개정 뒤 8.02월(금고 10월 1건)로 다소 늘었다. 보고서는 “의무위반치사죄는 안전보건조치의무위반죄와 업무상과실치사죄의 형을 더한 것보다 더 무겁게 처벌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된 법임에도 실제 법 적용에서는 입법취지가 제대로 반영되고 있지 않다”고 적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산업안전보건범죄 양형기준을 새로 만들어 2021년 7월부터 적용했다. 의무위반치사죄의 ‘기본구간’ 양형기준은 ‘6월~1년6월’에서 ‘1년~2년6월’로 변경됐다. ‘감경’할 요인이 있을 때는 ‘6월~1년6월’, ‘가중’할 요인이 있을 때는 ‘2년~5년’이다. 그러나 양형기준 변경 이후 선고된 평균형량은 7.26월(금고형 1건 10월)로 예전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양형기준 변경 이후 평균적으로 1년 이상의 형이 선고돼야 하지만, 실제 형량은 이에 훨씬 못 미치는 셈이다. 대신 벌금형은 2021년 7월 이전에 평균 593만원이었던 것이 838만여원으로 늘어났다. 보고서는 “산안법 위반 범죄에 대해 징역·금고형에 관한 양형기준이 강화·수정됐지만, 실제 양형에서 이러한 취지의 반영은 오히려 양형기준과 관련이 없는 벌금형을 선고할 때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보고서는 안전보건조치의무위반에 대해 양형기준이 기본 4월~10월의 징역형을 권고하고 있음에도, 법원이 인명사고가 없으면 벌금형을 선고하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한편, 피해자와의 합의를 ‘절대적’ 감형 사유로 삼고 있음을 들어 “산안법 위반범죄에 대한 법원의 온정주의가 여전히 재판 실무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법원이 이러한 태도를 유지한다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사건에서도 ‘엄벌’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중대재해법은 사업주·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종사자가 1명 이상 숨지는 경우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돼있다. 박다혜 민주노총 금속노조법률원 변호사는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위반 범죄에 대한 법원의 양형 관행을 보면, 강화되고 있는 법정형이나 양형기준과는 동떨어진 채 피고인에 대한 온정주의가 작용한다고 볼 여지가 많다”며 “중대재해 또는 안전보건 범죄를 바라보는 법원의 시각에서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중대재해법이 적용되더라도 단순한 법정형의 상향으로 법원의 양형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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