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국회에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노동이사제)에 대한 표결이 이뤄지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열린 새해 첫 본회의에서 노동자 대표가 공공기관 이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공공부문 노동이사제)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공공기관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노동계의 기대와 재계의 노사갈등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제도 도입을 지속적으로 요구한 한국노총 공공부문 노동조합협의회는 11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그간 노동자에게 금기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경영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잘못된 경영에 견제와 감시의 기능을 수행하는 시작점으로써 의미가 깊다” 고 평가했다. 한국노총은 과거 이명박 정부가 해외자원개발을 추진할 당시 공기업이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자본잠식에 이른 선례가 있다며 “이러한 폐해와 부작용을 방지하고 공공기관 경영의 투명성과 공익성을 확보하는 첫 걸음이 노동이사제 ”라고 밝혔다.
공공기관은 예산과 인력에 관한 사항을 기획재정부가 결정하는 구조라, 이사회가 사실상 제 역할을 못하고 정부 정책에 좌지우지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를 도입한다고 해서 당장 이런 구조가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노동이사가 직접 이사회에 참여하면 정부가 주도해 결정한 사안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의사결정의 불투명성을 대외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고 노동계는 기대한다.
반면 경영계는 노동이사제가 민간으로 확대돼 노사갈등으로 번질 것을 우려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성명을 내어 “이사회가 노사갈등의 장으로 변질돼 신속한 의사결정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수차례에 걸쳐 재검토를 요청했음에도 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깊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동이사가 임기 중 노조에서 탈퇴하도록 하는 등 관련 시행령 제정 시 제도적 보완이 이뤄져야 하고 향후 민간 기업 확대 입법으로 이어지지 않아야 한다”고 우려의 뜻을 밝혔다.
노동이사가 이사회 구성원 가운데 1∼2명에 불과한 만큼 전체 의사결정을 지연시킬 정도로 영향력은 크지 않다. 다만 이사회 논의가 각 사업장 노사 이해관계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않도록 논의 범위를 산업별 교섭으로 확대할 필요성은 있다. 윤정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산업별이 아닌 기업별 교섭을 하는 대다수 사업장이 자기 이해관계에 상당히 매몰되는 방식으로 교섭했던 것은 사실”이라며 “이를 넘어 공공기관의 바람직한 운영 방향을 논의하려면 산업별 교섭 체계로 전환해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산하에 노동조합과 정부, 공공기관 경영진이 마주 앉는 교섭 체제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관련 주제를 오래 연구한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도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유럽과 달리 한국은 기업별 노사관계에 특화돼 있어 노동조합 대표와 노동이사의 권한이 중첩되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단체교섭을 개별 사업장 밖으로 빼서 연구기관은 연구기관끼리 하는 식으로 유사한 일을 하는 노사가 함께 교섭할 수 있는 산업별 체제로 가는 방안도 있다”고 말했다.
노동이사제가 단순한 제도 도입에 그치지 않고, 공공기관 운영을 효율화 하는 방향으로 지배구조 개선 논의를 앞당기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상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공공기관이 정책 집행의 미세혈관 같은 역할을 하다 보니 매번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이를 장악하고자 하는 유혹이 있었다”며 “공공기관 지배구조 개선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노동이사제가 ‘거수기’ 역할을 크게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신다은 김영배 기자
down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