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서울시 종로구 한 카페에서 윤재관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이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신형철 기자
“남북 정상이 도보다리를 거닐던 게 엊그제 같습니다. 최악으로 변해버린 남북관계…압박만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윤재관 전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은 문 대통령이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판문점 도보다리를 건넜던 당시를 회상하며 이처럼 말했다. 그는 남과 북이 조금씩 양보해 당시의 장면이 만들어졌다면서 “북한도 용기를 낸 것이었다. 남쪽이 고민하고 엄선해서 만든 일정인데 동참하지 않는다면 남북 모두 손해를 볼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윤 전 비서관은 지난 2018년 4월 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의전비서관실 행정관으로서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도보다리 독대’라는 역사적인 장면을 기획하는데 역할을 했다. 이어 민정수석비서관실 선임행정관, 부대변인, 국정홍보비서관 등을 거치며 5년간 문 대통령을 보좌했다.
2018년 1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도보다리 역사적 장면 기획에 역할
평창올림픽 계기로 남북관계 풀어
“윤정부는 현 국면 타개할 복안 있나”
문 전 대통령의 협치 의지·노력 대단
임기 말 야당 내각참여 권유는 충격
“야당에 손 내미는 건 여당의 숙명”
윤 전 비서관이 지난달 펴낸 ‘나의 청와대 일기’(한길사)에는 청와대 사람들의 출퇴근부터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실생활 이야기, 문 대통령의 인간적 매력과 엄격함, 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시키기 위한 치밀한 물밑 작업, 세월을 돌려 되돌리고 싶은 후회의 순간 등 그의 5년간 청와대 생활이 고스란히 담겼다. 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그와 만나 책을 펴낸 이유 등에 관해 이야기 들었다.
“저만 알고 있기는 아까운 기록이었어요. 청와대에서 듣고 기록한 것은 제 경험이기도 하지만, 역사적 기록이기도 합니다. 정치적 영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리는 것이 그곳에서 일했던 사람으로서의 소명이기도 하고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고려 시대보다 조선시대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 것은,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역사적 기록물이 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청와대라는 공간은 특성상 그 자체가 역사에요. 개인의 기록이라기보다는 역사의 한 장면을 전달한다는 책무감에 이 책을 썼습니다.”
그는 야당을 경쟁자가 아닌 적으로 보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태도를 보면 아쉬울 때가 많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 1년을 넘겼지만, 아직 야당 대표와 회동한 적이 없다. 청와대 시절 문 대통령은 야당과의 소통을 항상 강조했고, 이 때문에 주변과 갈등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특히, 문 대통령이 임기 말 야당 인사를 내각에 참여하도록 권유했을 때 주변의 충격이 상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협력통치 노력에도 여야 간 갈등은 다시 예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그는 야당에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여당이 해야 할 숙명 중 하나라고 말했다.
윤재관 전 비서관이 최근 펴낸 ‘나의 청와대 일기’
“무엇보다도 문 대통령은 협력통치를 위한 노력을 많이 했어요. 문 대통령 임기 초반 20대 국회는 지금처럼 여소야대였지만, 당시 정치가 실종됐다는 평가는 없었습니다. 정치가 살아있던 시절이었어요. 대표적인 것이 임기 첫날 야당 당사를 방문하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야당 대표를 참석시킨 것이죠. 야당과 협치를 할 때 말로만 해서는 안 되고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북핵위기라는 국가 위기에서 여야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어요. 임기 말 야당 인사에게 내각에 입각하길 권유하기도 했습니다.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협치를 위한 노력의 정점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는 평창동계올림픽이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 수 있었던 돌파구였다고 말한다. 평창동계올림픽이 치러지기 전, 남북관계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험악했다. 북한은 연일 탄도미사일을 쏘아댔고, 핵실험도 진행했다. 남북 간에 날 선 말다툼이 오가기도 했다. 그러나 평창동계올림픽에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오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풀릴 것 같지 않던 남북관계의 숨통이 트이는 순간이었다.
“물론 대북제재와 압박도 해야죠. 하지만 그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요?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게 남북 대화를 풀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그 계기는 평창동계올림픽이었어요. 남과 북 모두 평화올림픽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고, 적극적으로 대화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졌죠. 윤 정부에게 묻고 싶은 것은 남북 경색 국면을 타개할 복안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어떤 계기라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 책을 통해 문 대통령을 홍보하고 싶은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다만,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과거에는 또 다른 성격의 리더십이 있었다는 걸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시민들이 정치권의 리더를 결정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자료로 쓰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신형철 기자
newri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