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특별한 신념이 있으신 거 같아요?”
“성격이 모나서 그래요. 하하.”
“선생님은 제가 만나본 의사 선생님 중에서 가장 서민적이신 거 같아요. 호호.”
방문을 다니다 보면 때때로 곁에 있는 이가 전혀 없는 분을 만나기도 한다. 보호자가 있더라도 잠시 있고, 긴 시간을 홀로 계신 분도 있다. 급한 연락을 받으면 어쩔 수 없이 약국에 들러 약을 전달해드리기도 한다. 그렇게 가까운 약국 이곳저곳 들러 필요한 약을 여쭙기도 한다.
김 약사님은 그런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시고 신경 써주신다. 여느 의원처럼 처방전이 수십, 수백장씩 쏟아지지 않음에도 챙겨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아주 귀찮은 고객일 뿐일 텐데. 방문 진료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약사님께서 해주신 말이 기억에 남았다. “선생님은 다른 원장님들이 보지 못하는 지역의 깊은 사정을 보실 거 같아요.” 사실 당시에는 방문 진료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허둥지둥하던 차였다. 그런데 오히려 그 말이 기억에 남아 항상 다른 시선으로 환자분의 상태와 건강의 의미를 찾으려 노력했다.
사실 약사님이야말로 지역의 산증인이다. 한자리에서 30년 가까이 주민들의 건강을 돌보셨다. 약사님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많다. 환자의 상황에 맞게 안내를 해주신다. 동네 환자들이 흔하게 복용하지 않는 약들을 구해주시려 애써주시니 감사하다. 김 약사님뿐 아니라 모든 약사님들께 참 감사하다. 때로 처방을 하며 실수를 하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헤아려 이해해주신다.
왕진은 의사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 지역사회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종합 선물세트라고 생각한다. 약사님뿐 아니라 요양보호사님, 사회복지사님, 간호사님 이웃들 덕분에 나도 움직이고 있다. 동네 슈퍼, 약국, 미용실, 정육점, 떡집, 분식집 등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곳들은 굉장히 중요한 마을 공동체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에서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이 때론 지겹지만, 익숙한 관계가 지겨운 일상을 견디게 하는 힘을 주기도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으로 굳어져 머지않은 시기에 일상의 사람들이 키오스크, 무인계산기, 에이아이(AI)로 대체된다면 마을의 모습은 크게 바뀔 것이다.
미래의 약국은 어떤 모습일까? 새벽 배송으로 집 앞까지 약이 배송된다면 매우 편하겠지만 건강을 지키는 과정은 다소 생략된다. 의사 선생님의 한결같은 진료, 약사님의 복약지도, 약을 기다리며 듣는 이웃 소식, 동네를 오며 가며 느끼는 계절의 변화, 모두가 정확히 약속하지는 않았지만, 이 모두는 꽤 잘 짜인 건강관리 프로그램과 같다. 대면 관계가 주는 일상 챙김은 우리가 건강을 지키는 데 꽤 큰 요소이다. 최근에 동네 노래방이 1인 스터디카페로 바뀌는 것을 보았다. 노래방이 주는 건강의 이득과 스터디카페를 통한 지적 충만을 홀로 비교해본다. 분명히 노래방에서 홀로든 모여서든 노래를 부르며 해소되는 스트레스가 있었을 텐데, 노래방이 사라져간다면 조금 슬플 거 같다.
이래저래 쓸데없는 생각들이 많아진다. 돌아보니 무인 가게도 부쩍 늘어간다. 움직이면서 생각해볼 따름이다. 편의를 제공하는 원격 서비스, 배송 서비스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건강한 삶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분석해볼 필요는 있다. 건강의 본질은 함께 울고, 웃고, 부대껴 살아가는 과정에 있다는 생각도 한다. 조금 불편해도 함께 느리게 가야만 소외된 이들과 함께 갈 수 있다. 불편함 속에 건강의 비밀이 있는지도. 약사님의 복약지도를 보태서 가는 길엔 발걸음은 더 무겁지만, 마음은 두 배로 든든하다. 약사님 덕분에 움직일 힘을 얻는다. 좀 더 움직여야겠지?
찾아가는 의사 홍종원
▶ 남의 집을 제집 드나들듯이 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꿈도 계획도 없다. 내 집도 남이 드나들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방문을 허락하는 이들이 고맙고, 그 고마운 이들과 오랫동안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