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충남 천안시 서북구 실내테니스장에 마련된 예방접종센터에서 실시된 지역 예방접종센터 모의훈련에서 접종대상자가 백신을 접종받는 훈련을 하고 있다. 천안/사진공동취재단
유럽 일부 국가들이 접종 뒤 혈전 반응을 이유로 코로나19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접종을 일시 중단한 가운데, 국내에서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뒤 사망 신고된 사람에게서 혈전이 발견된 사례가 보고돼 백신의 안전성 문제가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한겨레>는 17일 방역당국의 발표와 함께 전문가 6명의 조언, 접종 뒤 이상반응 조사결과를 토대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불신이 과연 근거가 있는지 꼼꼼히 따져봤다.
전문가들은 실제 접종에서 나타난 이상반응 조사결과를 봤을 때 혈전 관련 질환이 백신과 관련 있을 가능성은 작다고 입을 모은다. 영국 의약품건강관리제품규제청(MHRA) 자료를 보면, 지난달 28일까지 백신 접종 뒤 이상반응을 종합한 결과 혈전증과 관련된 질환(폐동맥 색전증, 심부정맥 혈전증)은 화이자 백신을 접종한 1070만명 가운데 23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한 970만명 가운데 27건으로 보고됐다. 100만명당 화이자 백신에서는 2.15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서는 2.78건 발생한 것으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는 없다. 그럼에도 유독 아스트라제네카에 대해서만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 수치는 백신을 맞지 않은 일반인 중에서 혈전증이 발생하는 비율에 견줘봐도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17일 질병관리청은 2016년 미국에서의 연구를 근거로 “인구 100만명당 1000명꼴, 60대의 경우 5000명꼴로 혈전증이 나타난다”고 밝혔다. 2018년 홍준식 서울대 의대 부교수 등이 과학저널 <플로스원>에 게재한 논문을 보면, 국내에선 2013년 기준으로 인구 10만명당 폐동맥 색전증은 16.6명, 심부정맥 혈전증은 12.7명, 정맥 혈전색전증은 29.2명꼴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교수(감염내과)는 “통계적으로 보면 오히려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혈전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는 수치”라고 말했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교수(예방의학)도 “영국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고령자에게 훨씬 더 많이 사용한 것을 고려하면 두 백신 간 차이는 없어 보인다. 전체적으로 백신과 혈전의 인과관계가 높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여태 57만여명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했지만 혈전 관련 질환이 이상반응으로 신고된 사례는 아직 없다. 이날 국내에서 발견됐다고 하는 요양병원 입원자 60대의 혈전증 사례 역시, 방역당국이 피해조사를 벌인 결과 백신 접종이 아닌 다른 원인으로 인한 사망 사례로 결론을 내렸던 것으로 나타났다. 김중곤 예방접종피해조사반장(서울의료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은 “혈전은 생활 속에서 흔히 생기는 질환으로, 연령이 높을수록, 장시간 앉아 있거나 누워 있을수록 잘 생긴다”고 말했다. 김우주 고대 구로병원 교수(감염내과) 역시 “특히 요양병원에서 누워 있는 시간이 길면 하지에 혈전이 잘 생기기 때문에, 60대 요양병원 사망자가 백신 때문에 혈전이 생겨서 사망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유럽의약품청·세계보건기구 등도 “계속 접종” 권고
유럽의약품청(EMA)과 세계보건기구(WHO) 등도 “백신 접종과 혈전증 사이에 연관성이 부족하다”며 접종을 중단하지 말고 계속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럽의약청은 조사결과 이번 사태의 시발점이 된 오스트리아에서 발생한 2건의 혈전증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과 관련 있다는 근거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지난 11일 기준으로 유럽경제지역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한 500만명 가운데 혈전색전증이 보고된 사례는 30건에 그친다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는 앞서 14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으로 인해 혈전이 발생했다는 징후가 없다”며 공포 때문에 접종을 중단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국제혈전지혈학회도 지난 12일 “혈전은 일반 인구에서 흔히 나타나는 질환이며, 혈액 응고 이력이 있는 환자에게도 백신 접종의 이점이 크다”는 권고문을 냈다.
전문가들 역시 이번 사태와 관련해 유럽의약품청이 18일 열 예정인 회의에서도 결론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 본다. 오명돈 서울대 의대 교수(감염내과)는 “유럽의약품청이 소집한 전문가들도 혈전의 자연발생률과 백신 접종자 중 발생률을 주요하게 따져볼 것이기 때문에, 기존 결론과 다르지 않은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만약 연관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면 유럽 국가들도 하나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재개할 가능성이 크고, 이에 따라 우려의 목소리가 잦아들 수도 있다.
■ “코로나19 관련 유럽은 계속 실패하는 중”
다만 국내 전문가들은 백신과 혈전 사이에 별다른 인과관계가 발견되지 않더라도, 이번 사태 자체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안전성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당장 정부는 요양병원 등에서 백신 접종 동의를 구하고 있는데, 만약 이번 사태의 영향을 받아 동의율이 낮게 나오면 “백신 접종으로 11월 집단면역을 형성한다”는 목표 달성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백신에 대한 선택지가 넓은 유럽 국가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아스트라제네카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교수(감염내과)는 “유럽 국가들은 (안전성 확보를 위해) 유럽의약품청 회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일시 중단한 곳들이 대부분인데, 가용 백신이 적은 우리나라의 경우 접종 자체를 중단하면 접종률 자체가 많이 낮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유럽 국가들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중단한다고 반드시 한국도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이재갑 교수는 “지금 유럽 국가들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중단은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결정이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며 벌인 갈등과 아스트라제네카가 유럽 내 공급을 줄인 데 대한 정치적 보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며 “방역당국이 흔들리지 말고 현재 계획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교수(감염내과)는 “‘유럽 국가는 선진국이니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이다’란 선입견을 가져선 안 된다. 유럽에선 유행도 억제하지 못해 감염자가 엄청나게 많이 발생하는 등 코로나19와 관련해서 유럽은 계속 실패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단지 “인과관계가 없다”고 강조만 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구체적인 자료를 기반으로 삼아 백신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성을 높이는 데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정재훈 교수는 “국민들이 수용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근거만 가지고 설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원석 교수는 “백신 접종군과 그렇지 않은 군에서 우려되는 상황의 발생 빈도에 차이가 있는지 등 아주 구체적인 근거자료를 만들고 적극적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우주 교수는 “국내에서 모더나나 화이자 백신을 생산하겠다고 협상을 하는 등 백신 구매에서도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김지훈 최하얀 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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