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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열 나는데 사장님이 그냥 약 먹으래요”…방역 사각 내몰린 미등록 이주노동자

등록 2021-03-04 04:59수정 2021-03-04 16:37

잇단 집단감염 실태 짚어보니

3밀 작업장·기숙사서 온종일 생활
감염 취약한데 검사 여의치 않아
지난 2일 경기도 동두천시 중앙도심공원 임시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위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최근 동두천시에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선제검사에서 2일까지 96명의 확진자가 나온 바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일 경기도 동두천시 중앙도심공원 임시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위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최근 동두천시에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선제검사에서 2일까지 96명의 확진자가 나온 바 있다. 연합뉴스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ㅅ(40)씨는 최근까지 경기도의 한 플라스틱 재활용 공장에서 일했다. 컨테이너 기숙사 한 곳에 3명이 모여 살았는데, 밥 먹을 때도 다닥다닥 붙어서 먹어야 했다. 사장은 이주노동자들에게 밖에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하루에 짐 나르는 차가 30대 왔다갔다 했다”고, ㅅ씨는 말했다. 일터와 생활 공간을 선택할 수 없는 이들에게 코로나19 감염 공포는 점점 커졌지만, 병원에도 갈 수 없었다. “병원에서 검사받고 싶다고 해도 안 보내줘요. ‘밖에 나가지 말고 그냥 약국 약 먹어’라고 했어요.”

3일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코로나19 국내 확진자가 426명 늘었다고 밝혔다. 나흘만에 다시 400명대를 나타낸 것이다. 특히 최근의 집단감염은 이주노동자들이 많은 제조업 사업장 중심으로 전국 여러 곳에서 발생하고 있어 이들이 처한 열악한 환경과 방역대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기 동두천시에서 이뤄진 외국인에 대한 코로나19 선제검사에서는 전날 81명에 이어 이날 15명의 외국인 확진자가 새로 발생했다. 경기 연천군 청산산업단지에서도 이날 섬유가공업체와 관련 있는 24명이 새로 확진됐는데, 이 가운데 13명이 이주노동자였다.

이날 <한겨레>가 이주노동자 당사자들과 지원단체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니, 이들은 이주노동자들이 포함된 집단감염 사태의 주된 원인으로 밀집·밀접·밀폐의 ‘3밀’ 환경을 먼저 꼽았다. 하루 12시간씩 2교대로 장시간 일하는 등 온종일 같은 작업장과 기숙사에서 집단으로 함께 생활하다 보니, 일단 감염이 시작되면 집단감염으로 번지기 좋은 환경이다. 네팔에서 온 ㅍ(40)씨는 “빌라로 된 기숙사 한 집에 10명씩 살았다. 엄청 큰 식당에서 100명가량이 같이 밥을 먹는다”고 했다.

불법적으로 지은 공장기숙사나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감염에 취약하게 만드는 요소다. 김달성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환기 시설이 없고 화장실은 야외에 있는 등 사람이 살아서는 안 되는 열악한 불법가건물에 살다 보니 감염병에 취약하다”고 말했다. 사업장에서 마스크 착용 등 방역수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경기 김포의 한 공장에서 일하는 필리핀 출신 ㄹ(32)씨는 “일할 때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쓴 건 아니었다. 숨쉬기가 어려워서 계속 쓰고 있지 못했다”고 말했다.

임시선별검사소와 자가격리 시설 등 방역 관련 시설들을 제대로 이용하기 어렵다는 점도 이주노동자를 방역 사각지대로 내몬다. 집단생활을 하느라 자가격리는 불가능하다. 격리하는 동안 일이 끊길 수도 있는데 마땅한 생활비를 지원받기도 어렵다. 강도 높은 노동에 내몰린 이주노동자들이 나서서 검사를 받기도 어렵다. 한 경기도 외국인 지원센터 관계자는 “경기 남양주시 평내호평역에 진료소가 만들어졌는데, 외국인 노동자들은 평일에 갈 수가 없었다”며 “외국인들이 쉽게 와서 진료받을 수 있는 곳까지 진료소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등록 외국인 신분일 경우엔 더더욱 방역 사각지대에 내몰린다. 신분 노출 우려 때문에 의심 증상이 있어도 병원에 가거나 검사받기를 꺼리는 탓이다. 차민다 대구성서공단노조 부위원장은 “정부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도 검사를 무료로 해주고 단속도 안 한다고 했지만, 그런 정보조차도 제대로 제공받지 못해서 검사를 받으러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코로나19 유행으로 항공편 등이 끊기면서 미등록 신분이 되는 외국인의 숫자도 점점 늘고 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의 통계연보를 보면, 지난해 국내 미등록 외국인 규모는 39만2196명, 전체 체류 외국인 중 비율은 19.3%로 역대 가장 높은 수준이다. 코로나19 유행 전이었던 2019년에는 39만281명으로 비율이 15.5% 수준이었다. 우삼열 아산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소장은 “동두천 외국인 집단감염은 터질 게 터진 것이다. 운 좋게 안 터지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며 “40만명 규모의 미등록 외국인들을 일시적으로 양성화·합법화해서 적극적으로 검사도 받고 백신 접종도 하고 근무·주거 환경도 개선해서 우리 사회 전체가 안전해질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 커뮤니티 등이 집단감염의 고리가 될 수 있다는 일각에 우려에 대해서도 김달성 대표는 “오히려 사업주들이 노동자들을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등 강하게 단속한다”며 쉽게 감염되기 쉬운 상태로 내몰려 있는 이들의 환경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는 전날 ‘외국인 고용사업장 방역관리 특별점검 계획’을 발표하고, 전국 5인 이상 외국인이 근무하는 사업장 중 기숙사를 보유한 1만1천여개 제조업체를 전수 점검하기로 한 상태다. 고용노동부는 “마스크 착용이나 기숙사 방역관리가 불량한 사업장은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 선제검사 참여를 독려하고, 미등록 외국인이 검사를 받아도 불이익이 없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안내하겠다”고 밝혔다.

김지훈 서혜미 박준용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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