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의 한 요양원 내부.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도저히 안 되겠어요. 집에서 생활이 어렵네요. 요양병원에 가야겠어요.”
70대 상훈(가명
)님은 희귀질환인 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다. 근육이 서서히 퇴화되는 질환이라 거동이 완전치 않다. 복지관 소개로 주기적으로 건강관리를 돕고 있었다. 그는 벽을 붙잡고 겨우 일어서는 정도지만 꿋꿋하게 일상생활을 유지했다. 평소엔 독서를 주로 하고 외국어 공부를 하며 시간을 보내신다. 식견이 뛰어나 끊이지 않는 대화로 방문할 때마다 즐거웠다. 의대생들이 방문 진료를 경험하려고 왔을 때도 상훈님을 찾았다. 희귀질환을 가지고 살아온 삶을 잘 전해줄 분이라 생각해 특별히 부탁드린 것이다. 건강관리도 잘해 진료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에게 긴급하게 연락이 왔다. 일어나질 못하겠다는 것이다. 근육이 서서히 약해지고 있지만 충분히 주위 사물을 이용해 걷고 전동 휠체어를 타고 외출도 할 정도였는데, 갑자기 일어날 수 없어 당황한 것이다. 이 상황이 병이 진행된 것인지 일시적인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다른 증상이 없으니 병이 진행되는 것이라고 짐작만 했다. 마침 기증받은 전동 리프트를 전해드리고 바닥에서 침대에 올라갈 수 있도록 도와드렸다. 하지만 며칠 지나 다시 연락이 왔다. 요양병원에 가보겠다고 한다. 속으로 시설로 가기에 아직은 일상생활 능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훈님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재활하고 꼭 돌아오라 했다. 얼마 뒤 상훈님이 요양병원을 거처 요양원에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요양병원이라면 몰라도, 요양원에 갔다는 소식을 듣고는 다시 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선생님, 저 집으로 돌아가려고요. 리프트는 제가 계속 써도 될까요?”
한달쯤 지난 어느 날
이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상훈님을 다시 만났다.
“제가 너무 빨리 포기한 거 같아요. 그때 못 일어나니 겁이 나더라고요. 그런데 요양원에선 도저히 못 지내겠어요. 말씀 못하는 어르신들이 주로 있는데 대화 상대가 없으니 있을 곳이 아니더군요. 죽어도 여기서 죽어야겠어요. 어떻게 하든 이제 선생님만 붙잡고 가야죠.”
“그래도 좋은 경험 하고 오셨다고 생각합시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조금씩 노력하면 익숙해지고 요령이 생기지 않겠어요?”
돌아왔다는 소식에 기쁘기도 슬프기도 한 묘한 감정을 느꼈다. 애초 더 설득해보지 않은 것이 후회도 됐다. 상실감에 빠진 상훈님에게 용기를 줄 뚜렷한 방도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 이전의 생활을 조금은 회복해 안심이었지만, 여전히 상훈님이 집에서 살아가기에는 큰 걸림돌이 많다.
상훈님이 뜻대로 “집에서 죽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곁에서 안부를 전하는 이웃, 조금 넉넉한 돌봄 시간, 아니 충분한 활동지원 시간이 중요하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를 통한 평일 하루 3시간 돌봄 지원은 상훈님과 같은 중증장애인이 집에서 살아가기에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일상을 돌볼 의료인과 배우고 싶은 것들을 돕는 여가 서비스까지 있으면 더 좋겠다. 우리가 집에서 즐겁게 살다 죽어가기 위한 조건들이 엄청난 욕심은 아닐 텐데. 소수의 가진 이들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함으로 변해가는 현실이 씁쓸하다.
모든 것이 화상으로 가능한 시대지만, 곁에서 느끼는 인간의 흔적이 없다면 너무 쓸쓸할 것 같다. 장애로 디지털 기기를 조작하기 어려운 분들에게는 기술의 진보도 그림의 떡이다. 선진 디지털 감시체계로 케이(K)-방역이 성공했다고 떠들썩한 지금 케이-돌봄은 어떤 상태인지 묻고 싶다. 생산력이 없다고 여겨지는 계층에게 마지못해 찔끔찔끔 돌봄과 복지를 제공해 서서히 죽어가도록 배려하다가 죽음이 가까이 오면 시설에 가두는 사회는 과연 괜찮은 걸까? 청년들은 이런 사회에서라면 새 생명을 살게 하지 않는 길을 선택한다. 노인들은 아예 자신을 버린 사회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하기도 한다. 나를 붙잡고 가겠다는 상훈님. 이제 어떻게 하겠는가. 건강관리를 돕는 친구 같은 이웃으로 내 나름 최선을 다해보는 수밖에.
홍종원 찾아가는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