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전 대구시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근무를 마친 의료진이 휴게실로 돌아가고 있다. 연합뉴스
“15일째 연속 근무인데, 지금 정신을 못 차리겠어요. 연차가 낮은 간호사 선생님들은 안쓰러워서 웬만하면 추가 근무를 안 시키려고 하는데…. 집에선 머리만 닿으면 정신없이 잔다니까요.”
2일 대구의 한 선별진료소에서 일하는 간호사 김주현(가명·48)씨는 “문의전화가 폭주해 연결이 안 되니 선별진료소로 아예 직접 찾아오거나, 입원 병상을 배치받지 못하는 환자들을 보는 게 안타깝다”며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 대응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힘든 현장에서 일하지만 늘 초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탓인지, “사태가 진정되면 번아웃(탈진)이 올 것 같다”고 했다.
지난달 18일 신천지 대구교회에서 시작된 ‘슈퍼전파’ 사건으로 대구·경북 지역에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한 지 2주 가까이 지나면서, 이 지역 의료진의 피로 누적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신천지 대구교회 신도 전수조사를 진행하는 선별진료소는 물론, 일반병동에 견줘 업무량이 갑절인 격리병동 근무 간호사들도 의료진 1명이 돌봐야 하는 환자 수가 크게 늘면서 탈진 직전 상태를 호소한다.
확진환자 90여명이 입원한 대구가톨릭대병원 격리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윤주영(가명·33)씨는 1일 낮 병원에 출근해 자정 무렵 퇴근 때까지 밥 먹는 시간을 빼곤 잠시도 앉아 있지 못했다. 지난달 26일 코로나19 환자 입원을 위해 병원이 병상 100개를 추가로 열면서, 격리병동 간호사 1명이 돌봐야 하는 환자 수는 6명에서 10명으로 늘었다. 그는 감염 예방을 위해 “걷기만 해도 땀이 주룩주룩 흐르는” 레벨D 전신방호복을 입고, 보호자와 간병인 대신 환자들의 식사는 물론 고령환자의 기저귀 교환까지 도맡고 있다. 윤씨는 “레벨D를 입으면 움직임이 둔해져 평소보다 일의 속도도 떨어지는데 불안해하는 환자들이 계속 호출벨을 누른다. 일부 보호자들은 환자 접촉을 최소화한 회진 방식에 불만을 품고 폭언을 하기도 한다”며 “지친 동료들이 ‘너무 힘들다’ ‘못 하겠다’고 토로하지만, 자신이 그만두면 남아 있는 동료들이 더 힘들어지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의료 장비마저 고갈돼가는 상황은 의료진을 더욱 지치게 만들고 있다. 윤씨는 “휴식을 취하고 다시 병동에 들어갈 땐 새 방호복으로 갈아입어야 하는데, 부족한 레벨D를 아껴 사용하다 보니 병실을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며 “교대근무자가 입을 방호복이 없어 다른 병원에서 구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일도 있었다”고 전했다.
의료진의 고된 상황이 전해지면서 정부는 뒤늦게나마 지원대책을 내놓고 있다.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1총괄조정관은 2일 “의료진의 육체적·정신적 피로도가 높은 상황이라 추가 의료인력을 확보해, 현장 의료진의 휴식시간만이라도 보장하는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일단 정부는 국가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된 국군대구병원에 군 의료인력을 중심으로 의사와 간호사 111명을 추가로 투입하기로 했다. 국방부는 또 올해 신규 임용 예정인 공중보건의 750명의 4주 군사훈련을 연기하고, 5일부터 현장에 보낼 방침이다. 이에 더해 야전부대를 제외한 군병원 의료인력 327명도 코로나19 대응에 투입하기로 했다.
보건당국은 대한간호협회 등과 함께 대구·경북 의료현장에서 일할 의료진을 모집하고 있다. 대한간호협회에 대구·경북행을 지원한 간호사가 1일 하루에만 510명으로 집계되는 등 지금까지 이 지역에서 환자를 돌보겠다는 뜻을 밝힌 간호사는 모두 1300명가량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대구시의사회는 현재 의사 300여명이 대구·경북 지역에서 코로나19 환자를 상대로 의료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대구·경북 이외 지역에서 온 이는 10% 정도로 알려졌다.
선담은 박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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