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법인 여시재와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공동주최한 ‘미래의료로 실현하는 1차 의료 역량 강화’ 토론회가 지난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기차나 자동차 또는 지하철 등을 타고 대형병원을 찾아 한두 시간씩 기다리고도 고작 3~5분 정도의 진료에 만족하거나,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황급히 엠아르아이(MRI·자기공명영상촬영)와 같은 고가의 검사부터 받아야 한다거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모습은 우리 의료 현실의 한 단면이다.
만일 각 가정에 장착된 여러 바이오센서로 의료 정보를 모으고 영상통화 등의 방식으로 의사와 상담하거나, 필요한 경우 의사 등 의료진이 직접 가정을 방문해 진료해준다면 어떨까? 환자들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 구애받지 않고 현재보다는 훨씬 편리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평소 혈압이나 혈당, 몸무게 등을 관리하려는 이들도 관련 수치를 쉽게 모으고 변화 양상에 따라 필요한 운동이나 식사 조절과 같은 처방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미래의료의 청사진으로 ‘메디컬 홈’이나 ‘의료 플랫폼’이라 일컫는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차츰 높아지고 있는 건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여러 질병을 앓는 노인 인구 비중이 크게 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가정에서 또는 지역사회에 마련된 지역센터에서 이런 서비스를 활용할 필요성은 더욱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대형병원 중심…의료 소외층 늘어
현대 의학 탄생 뒤 의료기술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을 거듭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많은 나라가 헬스케어 산업을 차세대 산업으로 육성하고자 애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시간적 또는 물리적 제약이나 경제적 여건 탓에 현재도 의료 서비스를 제때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빠르다. 2019년 현재 우리나라 65살 이상 노인 인구는 전체 인구의 14.9%인데, 2025년이면 그 비중이 20%를 차지할 전망이다. 바야흐로 초고령사회가 열리는 셈이다. 이뿐 아니다. 비록 질병에 걸리진 않았으나 ‘허약 노인’의 비중도 전체의 17~18%를 차지하고 있다. 비중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여러모로 의료 서비스 이용량이 많이 늘어나는 건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문제는 현재 우리나라 의료 공급 체계에선 환자들이 주로 수도권의 대형병원으로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의료인력이나 병상 등 의료자원이 효율적으로 활용되지 못하는 셈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의사나 간호사 인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에 속하지만, 엠아르아이나 시티(CT·컴퓨터단층촬영)와 같은 고가 장비 보유는 상위권 수준이다. 많은 환자가 의료인력의 도움을 받지 못할뿐더러 막상 병원을 찾아선 값비싼 검사에만 의존한다는 얘기다.
약 10년 동안 삼성서울병원장을 지내고 현재는 창원시보건소에서 일하는 이종철 보건소장은 “우리나라는 인구당 의사인력이 오이시디 최하위 수준”이라며 “지방에서는 더더욱 의사를 구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노인, 장애인 등 이외에 지방 주민들의 의료 소외 현상도 심각한 문제라는 뜻이다.
■ ‘메디컬 홈’ 통한 일상의 건강관리
과연 해법은 없을까? 지난 4일 재단법인 여시재와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그리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공동주최한 ‘미래의료로 실현하는 1차 의료 역량 강화’ 토론회도 그 해답을 찾아가는 소중한 자리였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일상의 건강관리 체계를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우리 몸에서 나오는 각종 신체 신호를 원격으로라도 항상 측정하고, 이를 통해 질병 관리 및 건강 증진에 도움을 주는 의료체계를 서둘러 만들자는 뜻이다. 병원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나 경제적 비용 등을 아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질병 등이 악화하기 전에 평소에 진단과 관리에 힘쓸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일 수 있어서다. 노인과 장애인뿐 아니라 지방 주민 등 의료 소외 계층을 끌어안을 수 있는 건 물론이다.
메디컬 홈 세상을 활짝 열어줄 관련 기술은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다. 즉 평소 혈압이나 혈당은 물론 인체 내부의 상태를 평가하고 생활 환경을 모니터링한 뒤 통신 서비스를 활용해 의료진에게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의료진에게 환자들의 정보가 모이면 혈압이나 혈당 관리 등에 필요한 의약품뿐만 아니라 운동이나 식사 습관 조절 등 생활습관 개선 등도 한결 쉬워진다. 지금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예방과 치료가 이뤄지는 셈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한 홍윤철 서울대 의대 교수는 “의료 정보 기술 및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활용해, 질병 치료가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의 의료를 실현할 수 있다”며 “이런 기술을 지역사회 병·의원을 중심으로 사용한다면 의료 격차를 줄이고 의료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메디컬 홈의 혜택은 적지 않다. 각종 인체 신호에다 개인의 질병, 생활습관, 유전 정보 등 건강 관련 정보를 모아 결합하면 개인의 특성에 가장 적합한 맞춤형 의료의 가능성이 커진다. 설령 메디컬 홈을 설치하기 힘든 환경이라 해도 대안은 있다. 홈 헬스케어를 갖춘 아파트나 공용검진센터(도시) 혹은 마을회관이나 주민센터 등(농어촌 지역)을 활용하면 된다.
높은 비용과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은 메디컬 홈이 1차 미래의료 체계로 자리잡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사진은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 모습.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 만성질환 관리에 이미 활용돼
다만 메디컬 홈이 흔히 알려진 ‘원격의료’와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메디컬 홈이란 단지 네트워크상의 비대면 의료뿐 아니라, 필요한 경우엔 환자의 거주지 혹은 직장에서 직접 대면 의료 서비스가 가능한 체계를 일컫는다. 단순히 원격 통신 기술을 활용해 먼 거리에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원격의료를 넘어서는 개념인 셈이다.
만성질환 환자 관리에 메디컬 홈 체계를 선보인 사례는 지역사회 현장에 여럿 있다. 서울 은평구의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일하는 추혜인 원장은 요즘 일주일에 엿새 일하면서 이틀은 방문진료에 나선다. 그가 방문진료하는 환자 중엔 15년 전 뇌출혈로 쓰러진 70대 중반 여성도 있다. 이 여성이 살고 있는 집은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 4층. 추 원장이 방문진료를 하기 전엔 병원을 찾기 위해 구급차를 불러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요양시설이나 요양병원에 입원한 적도 많다. 하지만 그곳에선 의사의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해 오히려 폐렴에 걸리는 등 합병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추 원장은 간호사는 물론이고, 필요한 경우엔 협동조합에서 일하는 운동처방사, 영양처방사, 사회복지사 등과 함께 환자의 삶 전반에서 건강관리를 맡는다. 현재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는 고혈압이나 당뇨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 약 150명이 등록돼 있다.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철저한 혈당 관리가 필요한 환자들 가운데에는 진료를 앞두고 2~3일만 약물, 식사량 조절 및 운동 등을 통해 정상 범위로 수치를 맞춰 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환자들의 평소 혈당을 의사가 알 수 있어야 정확한 처방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개인정보 보호 등 과제도 많아
하지만 메디컬 홈이 미래의료 체계로 굳건히 자리잡으려면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기존의 대면 진료 방식보다 의학적인 효과가 높다는 점을 증명해야 할 뿐 아니라, 높은 비용과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의 장애물도 넘어서야 한다. 경우에 따라선 의료 정보기술의 활용이 오히려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을 더욱 악화시킬 우려도 있다.
당장 비용 문제가 관건이다. 혈압이나 혈당 등을 재고 호흡 수, 체온 등 신체의 여러 정보를 모으는 바이오센서를 설치하는 데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해당 정보를 의료진에게 보내는 통신기술 관련 비용도 무시하기 힘들다. 자칫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의료 정보기술에 막대한 돈을 낭비해 국민 의료비 부담만 높일 가능성도 무시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보건의료 관련 시민단체들은 개인정보가 민간기관의 영리행위에 무방비로 활용될 것이란 우려도 내놓는다. 의료정보회사나 민간보험회사 등의 손에 민감한 개인 질병 정보 등이 고스란히 들어간다면 오히려 의료 소외 등의 문제를 악화시킬 수도 있어서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