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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약대 6년제’의·약 다툼에 ‘국민’은 없다

등록 2005-11-14 17:35수정 2005-11-14 17:40

‘약대 6년제’를 둘러싼 의·약업계 줄다리기
“약사의 불법 진료 행위가 늘어날 것이다. 약사의 위상이 높아지면 무면허 진료와 임의·대체 조제가 기승을 부릴 것이 뻔하다.” (대한의사협회)

“약대 교육과정으로는 환자에 대한 충분한 조제서비스를 제공하기에 부족할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5년제 또는 6년제를 시행하고 있다.” (대한약사회)

약학대학 6년제를 둘러싼 의·약업계의 줄다리기에 국민 건강권이 위협받고 있다.

2009년 약대 6년제 전환이 공식화하고 의사협회가 이에 강하게 항의하며 집단휴진 불사를 외치고 있다. 의사협회는 집단휴진을 의결했지만, 돌입시기는 일단 연기해 놓은 상태다.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어 분쟁의 불씨는 당분간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약대 6년제 개편안이 확정, 2009년부터 실시될 예정이지만 1차 진료권 박탈을 우려한 의사들의 집단대응이 현실화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의사들의 집단 휴진은 11월초 투표를 통해 찬성을 얻어 언제든 가능하다. 이미 의협은 약대 6년제 학제 개편을 두고 잇따라 실력행사를 해왔다. 지난 6월17일 약대 6년데 공청회를 무산시킨 데 이어 7월5일 교육부주최 공청회도 파행으로 내몰았다.


약학계는 약대 6년제가 세계적 추세라며 6년제 시행을 요구해 왔다. 미국은 약대 6년제 학제 졸업생에 한해 미국 약사시험 자격을 부여키로 해 우리 약사의 미국 진출과 세계화를 위해서도 학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의사협회는 약대 6년제가 도입될 경우 약사의 불법 진료와 임의 조제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의사의 처방권이 침해될 우려에서 반대하고 있다. 또 영국과 캐나다 등은 4년제를 택하고 있고 졸업 후 실무 능력을 위해 연수교육을 실시할 뿐이라며 약사회의 주장을 반박한다.

약대생들이 전문화를 위해 2년 더 공부를 하겠다는데, 의사들은 왜 집단 휴진까지 하려 할까. 양쪽의 이해관계가 대립되고 있는 약대 6년제 시행, 논쟁의 핵심을 살펴본다.

약대 6년제, 2009년부터 시행

교육인적자원부는 2009학년도부터 약학대학 수업연한을 6년으로 연장하고, 구체적 학제로 2+4체제를 도입한다고 지난 8월19일 발표했다. 2+4체제는 약학대학이 아닌 다른 학부(학과)로 입학해 2년 이상의 기초·교양교육을 이수한 후 일정한 선발 절차를 거쳐 약학전공 교육과정에 입문해 4년의 전공교육 및 실무교육과정을 이수하는 교육체제를 말한다.

이번에 발표된 약학대학 학제 개편 방안은 2004년 6월 보건복지부에서 교육인적자원부에 약학대학 6년제를 위한 관계 법령 개정을 요청함에 따라 교육학·약학·의학·보건행정 등 관계 전문가 6명으로 구성된 ‘약사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과정 및 학제 개선 방안 연구’ 정책연구진이 건의한 기본모형을 토대로 공청회, 관계 부·처 협의 등을 거쳐 확정했다.

교육부는 약학대학 학제 개편 배경을 “국민보건 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 약사양성 교육체제 구축”, “폭넓은 교양과 전문지식을 겸비한 전문인력 양성”, “국제적 기준에 상응하는 국제 수준의 학제 마련”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현재 약사 면허 취득자의 70% 이상이 개국약사로 진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약사 양성교육을 강화할 수 있고, 의약분업 이후 취급 의약품 수가 대폭 증가하는 상황에서 약대 6년제 시행은 필연적이라는 게 교육부와 약사회의 주장이다. 또 의약분업 실시에 따른 약사직무의 변화에 대처할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약대 6년제 시행은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외국의 추세로 보아 6년의 교육연한이 국제 통용의 교육제도로 정착될 전망이어서 국가간 상호 인정 기반을 마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는 것이다.

“약대생 2년 더 배우면 불법진료가 더 기승할 것”

약대 학제가 2년 늘어나면 예비 약사들은 그 기간만큼 임상실습을 하게 된다. 대한약사회는 “그동안 약사들은 임상 경험이 없어 환자들에게 적절한 복약 지도를 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학제를 늘리면 약사가 처방전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환자들에게 정확한 복약 지도와 상담을 할 수 있어 국민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약사회 홍보팀 정찬웅씨는 “6년제 개편으로 한국의 약학 표준을 세계 표준에 부합시킬 수 있고, 국민이 요구하는 수준으로 약사의 전문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며 “현행 교과과정은 이론에 치우쳐 있는데, 임상경험을 거치면 약과 관련된 과실을 대폭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2년간 현장실습을 통해 약사의 전문성을 높여 국민건강 증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협의 생각은 이것과 다르다. 의사들은 약대 6년제 개편이 ‘약사들이 약을 조제만 하지 않고 처방까지 하겠다’는 의도로 보고 있다. 2년 더 배운만큼 “약사들의 불법진료가 기승을 부릴 것”이며, 결국 의사들의 ‘밥그릇’을 뺏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단순히 교육기간의 확대가 문제가 아니라 이를 통해 나타날 수 있는 약사의 권한 확대를 우려하고 있다.

의협은 “임상약학이 명분이지만, 약사들의 불법진료만 부추길 수 있다”며 “약국의 불법진료를 근절할 수 있는 법률적 토대가 먼저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권용진 의협 대변인은 “6년제 개편의 경우 4+2방안(제약쪽 진출자는 4년만 배우고, 약국 개원 희망자는 2년 더 배우는)도 있다”며 “더구나 전문의약품보다 일반의약품 사고가 많은 현실을 볼 때, 약사들이 2년 더 배워서 약화사고가 준다고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현재도 불법진료가 성행하고 있는데, 앞으로 더 할 것이라는 것은 불보듯 뻔하다”며 “현재 약사가 갖고 있는 일반의약품의 선택권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하며, 슈퍼에서도 구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약사회는 “약사나 의사는 면허로 보장되는 것이며, 약사는 약사일 뿐”이라며 “약사가 의사의 영역을 침범할 것이라는 의사들의 주장은 생떼 쓰는 것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약대 학제개편은 학문의 문제일 뿐 직능과는 무관한 일이며, 2년 더 배운다고 약사가 의사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논리다.

의사-약사의 싸움 속 멍드는 ‘국민 건강권’

약사 교육이 강화되면, 약사들이 급증하는 신약이나 약효의 변화 등에 대한 지식을 더 익힐 것은 분명하다. 보건복지부는 “생명공학 분야의 연구 능력이 향상되고 국내 약사들의 외국 진출이 늘어나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렇다고 “불법 진료, 임의·대체 조제가 늘어날 것”이라는 의사들의 주장 또한 ‘쓸데없는 걱정’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질 높은 서비스를 위해 더 배우겠다”는 약사회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약대 6년제 개편으로 국민건강이 얼마나·어떻게 나아지는 것인가, 약사와 약국의 서비스가 얼마나 좋아지는가 등 핵심적인 부분이 빠져 있다는 점에서 의사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의사들이 “국민을 위해 나섰다”고 하지만 분노의 본질에는 ‘국민’보다 ‘영역 침해에 대한 불쾌함’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국민들은 2000년 의사 파업을 통해, 의사들이 국민건강 증진을 앞세우나 실제로는 자신들의 이익 수호 투쟁에만 국민 건강권을 볼모로 삼은 경험을 간직하고 있다. 의사들의 논리를 따르자면, 의사들은 앞서 의대의 4+4학제 개편도 문제이다. 의협은 의대 학제 개편으로 국민건강이 얼마나 나아지는지를 구체적으로 명시했어야 옳다.

때문에 의사와 약사 두 집단의 주장 모두 겉으로 드러난 명분만큼 석연치 않고, 국민에게 설득력도 얻지 못하고 있다. 양쪽 다 ‘국민건강’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이들의 싸움 속에는 ‘국민’ 이 없기 때문이다. 약대 6년제뿐 아니라 전문성 강화라는 이유로 추진되는 의대의 4+4제, 전문 치의제 등이 국민의 합의를 걸쳐 동의를 얻는 과정을 거치기보다는 의·약간 이해 조정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이들은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창보 사무국장은 “약대 6년제 시행이 약사들에게 얼마만큼의 이익을 가져다주는지, 또 의사들이 얼마나 피해를 입는지 뚜렷하게 제시된 자료는 없다”며 “양쪽 다 국민건강이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사실상 이 싸움 안에 정작 국민의 건강을 염려하는 생각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의사와 약사들의 싸움에 국민의 등만 터지는 꼴이라는 것이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인도주의 실천 의사협의회, 참의료 실현 청년 한의사회 등이 소속돼 있는 보건의료단체연합 변혜진 기획부장도 “의사와 약사의 전문성 강화 차원에서 추진되는 4+4학제나 4+2학제가 국민건강권 강화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전혀 검증되지 않았다”며 “국민을 포함한, 보건의료 학제 개편에 대한 총체적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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