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서울소재 병원들 폐기물
수도권 외곽·지방에서 처리
비용 적게 드는 업체선정 탓인듯
‘당일 소각·이동 최소화’
정부 지침 내렸지만 무시
전문가 “감염위험 커 거리 제한을”
수도권 외곽·지방에서 처리
비용 적게 드는 업체선정 탓인듯
‘당일 소각·이동 최소화’
정부 지침 내렸지만 무시
전문가 “감염위험 커 거리 제한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치료·진단 등에 사용된 의료폐기물이 길게는 300㎞ 넘게 지역 간 이동을 한 뒤 소각처리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환경부가 ‘이동거리 최소화’에 이어 최근 ‘당일 소각’ 지침까지 내렸지만, 처리업체들은 소각 용량의 한계로 인해 이를 지키기 어렵다고 한다. 보건의료·환경 단체들은 장거리 이동 과정에서 ‘지역 감염’이 일어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병원들이 최저가 경쟁입찰로 처리업체를 선정하는 관행이 있어, 자칫 감염 관리에 구멍이 생길 가능성도 제기된다.
15일 <한겨레>가 확인해 보니, 메르스 확진 환자 중 절반 가까운 72명이 발생해 전날 부분폐쇄까지 이뤄진 삼성서울병원(서울 강남구 일원동)의 의료폐기물은 338㎞ 떨어진 경북 경주의 한 의료폐기물 처리업체에서 소각된다. 이 의료폐기물에는 메르스 치료 격리병동에서 나온 폐기물들도 포함돼 있다. 메르스 환자 1명을 확진 판정한 서울성모병원도 275㎞ 떨어진 경북 고령의 처리업체로 의료폐기물을 실어 나른다.
‘메르스 안심병원’인 서울대병원(서울 종로구 연건동)은 삼성서울병원과 동일한 경북 경주의 업체(349㎞)에서, 세브란스병원(서울 서대문구 신촌동)은 서울성모병원이 이용하는 경북 고령의 업체(293㎞)에서 의료폐기물을 처리한다. ‘빅 5’ 병원 가운데 4곳이 300㎞ 안팎 떨어진 곳으로 의료폐기물을 옮겨 처리하는 것이다. 2012년 기준으로 △삼성서울병원은 3713t △서울대병원은 2828t △서울성모병원은 2681t △세브란스병원은 2436t의 의료폐기물을 배출했다.
메르스 환자 격리·치료 거점병원인 국립중앙의료원(서울 중구 을지로6가)에서 발생한 의료폐기물은 비교적 짧은 82㎞ 거리에 있는 경기도 연천의 업체에서 처리된다. 국립의료원 감염관리실 관계자는 “주황색 밀봉비닐에 담은 뒤 다시 격리박스에 넣은 다음 박스 외부를 소독해 배출한다”고 했다. 이 병원에서는 요즘 30ℓ 용량 밀봉박스가 하루 30~50개씩 발생한다고 한다.
의료폐기물 처리업체는 전국에 16곳이 있다. 경기 용인·연천·포천, 충남 천안·논산, 충북 진천, 울산 울주, 경남 진주, 부산 기장, 광주, 전남 장흥, 경북 경산(2)·고령(2)·경주 등 운영비가 적게 드는 수도권 외곽이나 지역 대도시 외곽에 자리잡고 있다.
서울 대형병원들이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업체에 의료폐기물 처리를 맡기는 것은 비용 때문으로 보인다. 병원들은 보통 1~2년마다 입찰을 통해 업체를 선정한다. 한 처리업체 관계자는 “병원에서 처리능력 심사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낮은 가격”이라고 했다. 삼성서울병원도 2012년에는 연천의 처리업체에 폐기물을 맡긴 바 있다.
‘싼값’은 처리 과정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한 의료폐기물 수집·운반업체 대표는 “기름값과 인건비 등을 줄이려고 한번에 많은 양을 옮긴다. 중간 지역에 창고를 따로 두고 보관했다가 큰 차로 옮겨 싣고 간다. 메르스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나서 환경부가 ‘당일 소각’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도 이런 현실을 알고 부랴부랴 한 것”이라고 했다.
지난 4일 환경부가 내린 ‘메르스 의료폐기물 처리지침’에는 평소에 들어 있던 ‘이동 최소화, 밀폐 후 소독, 운반 시 영상 4도 이하 유지’에 ‘당일 소각’만 새로 추가됐다고 한다. 하지만 한 처리업체 직원은 “최대한 빨리 소각하려 해도 합성수지 밀봉박스를 한번에 태우면 대기오염 농도 기준을 넘어서게 된다. 또 밤늦게 들어온 폐기물은 당일 소각이 어렵다”고 했다.
보건의료·환경 단체들은 감염성 질병이 발생한 상황에서 의료폐기물을 멀리 이동해 처리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이번 기회에 아예 일반 의료폐기물도 장거리 이동을 제한하고 ‘권역별 처리’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이세걸 서울환경연합 사무처장은 “(장거리 이동 탓에) 폐기물 처리 운반 차량이나 처리업체 직원 등도 감염 위험에 노출돼 있다. 지금 방식으로는 수도권에서 발생하는 많은 양의 의료폐기물 처리를 비용이 싼 지역에서 가져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안상윤 건양대학교 병원경영학과 교수는 “가격이 저렴한 처리업체만 찾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의료기관과 정부 모두 간과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감염성 폐기물의 발생지 인근 처리’ 원칙을 두고 장거리 이동 가능성을 제한한다”고 했다.
반면 환경부는 ‘의료폐기물 권역별 처리’는 수용하기 어렵다고 한다. 외국과 달리 4~5시간이면 전국 어디든 이동이 가능하고, 수도권에 밀집한 의료기관들에서 나오는 폐기물을 인근에서만 처리하라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