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촌 ‘원이비인후과’
1976년 집 근처에 병원 문열어
색바랜 의사자격증·뻐꾸기시계
“그냥 하던대로 할 뿐이죠”
1976년 집 근처에 병원 문열어
색바랜 의사자격증·뻐꾸기시계
“그냥 하던대로 할 뿐이죠”
경복궁 서쪽인 서울 종로구 누하동과 옥인동 일대는 아기자기한 카페와 갤러리가 늘어나면서 최근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곳이 됐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이곳 서촌을 38년 동안 지키는 ‘할머니 의사 선생님’이 있다.
원이비인후과 원종숙(76) 원장의 병원은 네모반듯하게 각이 잡힌 거울과 유행이 지난 뻐꾸기시계, 새하얀 선반장까지 옛날 느낌이 난다. 색 바랜 의사자격증은 벽 높은 쪽에 걸려 있다. 원씨는 1974년 의사 자격을 얻었고 이듬해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됐다. 국내에 의사는 1만명, 이비인후과 전문의는 350명뿐이던 시절이었다. 이후 1년 반 만에 집 근처인 이곳에 병원 문을 열어 그 이후로 줄곧 환자들을 만나고 있다. 안과 진료도 한다. 예전에 서촌은 주민이 적어 ‘병원 할 자리가 아니다’라고들 했지만, 자하문 터널이 뚫린 뒤 터널 너머에 사는 주민들도 많이 찾는다고 했다.
“코에 뿌리는 약이 도움이 되니?”
“코 나오는 거 닦지 마. 상처가 헐어서 안 돼.”
1월28일 원씨가 병원에 온 10살 꼬마에게 조심할 것들을 교장 선생님이 훈화하듯 일러줬다. 원씨는 “예전만큼 귀가 잘 들리진 않지만 환자들과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는 손만 대면 밝게 불이 켜지는 최신형 조명기구가 병원에 있는데도 손때 묻고 금이 간 반사경이 더 편해 자주 머리에 쓴다며 겸연쩍어했다.
“병원은 한자리에 자리잡으면 오래 합니다. 저 말고도 나이 많은 의사가 많이 있어요. 나이 들어서 그냥 있을 뿐이고 그냥 하던 대로 할 뿐인데 가끔은 이렇게 한자리에서만 계속 하는 게 미련한 일이란 생각도 들어요.”
원씨는 요즘 찾아오는 환자가 예전만큼 많지는 않다고 했다. 그래도 건강이 허락하고 환자가 찾아온다면 계속 문을 열 생각이다. 종로구 의사회에 소속된 70대 이상인 현직 의사는 23명, 80대 이상은 6명이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