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의료·건강

고래를 잡아야 남자가 된다는 신화

등록 2013-11-15 20:11수정 2013-11-16 18:09

신생아와 사춘기 전후의 남자아이들이 주로 받는 포경수술은 한국·미국·필리핀과 유대인·이슬람교도들 사이에서만 대중적이다. 사진은 미국의 한 병원에서 포경수술을 받는 한 신생아가 괴로워하는 모습이다.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제공
신생아와 사춘기 전후의 남자아이들이 주로 받는 포경수술은 한국·미국·필리핀과 유대인·이슬람교도들 사이에서만 대중적이다. 사진은 미국의 한 병원에서 포경수술을 받는 한 신생아가 괴로워하는 모습이다.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제공
[토요판] 몸 / 포경수술
▶ 겨울방학에 비뇨기과 앞을 엉거주춤한 자세로 힘겹게 걸어가는 남자아이들이 있다면 포경수술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에선 포경수술이 대중적인 시술이자, 사춘기 통과의례의 하나입니다. 수술을 안 하면 또래들 사이에서 놀림감이 되기도 하죠.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별 의심 없이 받은 포경수술, 과연 다른 나라는 어떨까요? 그곳에서도 우리처럼 성기에 칼을 들이대고 있을까요?

유럽평의회가 10월6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의학적인 필요에 의하지 않은 포경수술(circumcision)이 아이의 육체에 대한 폭력(violation of physical integrity)이라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47개 회원국을 둔 유럽평의회는 1949년에 설립된 유럽의 첫 통합기구로 유럽연합(EU)의 산파 구실을 한 단체다. 이 단체가 포경수술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며 회원국들에 관련 대책을 촉구하자, 한 국가의 정부가 정면 비판에 나섰다. 바로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은 7일 평의회 쪽에 시몬 페레스 대통령 명의의 항의서한을 보내 ‘이번 결정은 도덕적인 오점(moral stain)이며 유럽에서 인종주의적 증오를 키우게 될 것’이라며 결의안 폐기를 촉구했다. 평의회의 결의안 중에 이스라엘을 자극한 부분은 ‘종교적인 이유로 행해지는 포경수술의 위험성을 우려한다’였다. 유럽평의회의 ‘아동의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과 이스라엘의 ‘인종적 편견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는 셈이다.

비뇨기과 의사들이 포기하기 힘든 주 수입원

포경수술을 둘러싼 유럽평의회와 이스라엘 정부의 대립을 보면, 한국 사람들은 의아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선 포경수술이 상당히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포경수술은 ‘남성의 성기를 감싸고 있는 피부’(포피)의 일부를 잘라내 성기의 끝 부분인 귀두를 노출시키는 시술이다. 한자로 포경(包莖: 껍질에 싸여 있는 성기)이 고래잡이를 뜻하는 포경(捕鯨)과 음이 같기 때문에 이 수술을 은어로 ‘고래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해방 이후엔 신생아 때 포경수술이 많이 이뤄졌으나, 1980년대 이후엔 사춘기 직전인 10~13살에 주로 수술을 받고 있다. 포경수술에 대해선 ‘고래를 잡아야 남자가 된다’, ‘군대에 가면 마취를 안 하고 포경수술을 한다’는 괴소문부터, ‘성기 위생과 성기능 향상에 도움 된다’는 일부 의사들의 주장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다. 이런 얘기들이 오가는 나라는 얼마 되지 않는다. 전세계에서 종교적이지 않은 이유로 남성 인구의 절반 이상이 포경수술을 받는 나라는 다섯 손가락에 꼽힌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국가가 한국·미국·필리핀이다.

전세계에서 종교 외의 이유로
남성 절반 포경수술 받는 나라는
한국·미국·필리핀이 대표적이다
유럽평의회는 포경수술을
아이에 대한 폭력으로 규정했다 

청결 유지·성기능 개선효과 등
의학적 효과는 근거가 부족
또래 사이에서 놀림당하거나
남과 다르면 안 된다는 불안이
한국에서 포경수술 유행을 불러

김대식 서울대 교수(물리학)와 방명걸 중앙대 교수(동물자원과학)는 1999년 한국의 16~79살 남성 571명을 조사한 결과, 40살까진 포경수술을 받은 비율이 80%가 넘었으나 50대에선 69%, 60살 이상에선 50%로 비율이 낮아졌다고 밝혔다. 포경수술의 국내 실태를 보여주는 이 연구는 영국 비뇨기과학회지(BJU International)에 발표한 논문에 담겨 있다. 13일 오후 서울대 물리학과 연구실에서 만난 김 교수는 “어릴 때부터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이 포경수술을 받았을까 의심했다. 포경수술은 해방 이후의 풍습이자, 일부 국가에서만 대중적인 시술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포경수술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수술을 받고 있고, 이 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비뇨기과 의사들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 포경수술의 실태를 밝힌 김대식·방명걸 교수는 2000년 미국의 시민단체인 국제포경수술정보교육센터로부터 ‘인권상’을 받기도 했다.

실제로 비뇨기과 의사들은 포경수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대한비뇨기과의사회의 누리집을 보면, ‘포경수술이 꼭 필요한지에 대해 전문의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지만, 수술을 하면 성기를 깨끗이 관리하기 쉬워진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장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누리집은 또 “외국의 연구에서는 에이즈를 예방하는 방안으로 포경수술을 고려할 만하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의사회의 공보를 맡고 있는 문기혁씨는 “에이즈 예방 효과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인정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는 2006년 에이즈의 예방조치로 포경수술을 적극 권고했다. 세계보건기구와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소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조사한 결과, 포경수술을 한 남성이 그렇지 않은 남성보다 에이즈 감염 확률이 65% 더 낮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포경수술을 받은 성기가 공기와 접하는 면적이 넓기 때문에 공기에 노출된 환경에서 오래 살지 못하는 에이즈 바이러스의 전염 확률이 낮아진다고 밝혔다. 물론 이견도 있다.

국내에서 ‘포경수술 바로알기 연구회’(포바연)를 조직한 마취통증학 전문의 노석씨는 “에이즈는 체액과 혈액에 의해 전염된다. 포경수술에 의한 예방효과는 부풀려진 측면이 있고, 오히려 이로 인해 콘돔 사용 등을 소홀히 하면 더 위험하다”고 말했다.

에이즈를 제외한 청결 유지, 성기능 개선 효과에 대해 비뇨기과 의사들은 어떤 입장일까. 대부분은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히기 부담스러워했다. 한 대학병원 비뇨기과에 재직중인 김아무개씨는 “포경수술이 비뇨기과의 주된 수입원이기 때문에 이름을 걸고 비판 의견을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위생과 조루 예방 등의 효과는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포경수술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병원마다 수술비용을 자율적으로 책정할 수 있다. 김씨는 “대략 20만~35만원 사이로 수술비용이 책정된다”고 말했다. 다른 전문의는 “포경수술을 하면 성기의 민감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고, 이 때문에 조루를 예방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성기 피부의 민감도는 나이와 성관계 빈도에 따라서 달라지고, 민감도가 떨어지면 오히려 성감이 줄기 때문에 순기능만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유대인 영향으로 포경수술 전도사 된 미국

반드시 포경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성인이 되어도 포피의 겉껍질이 성기와 분리되지 않아 자연포경 상태(귀두 전체가 노출되는 상태)가 되지 않거나, 포피가 성기를 조여 혈액순환을 방해할 땐 ‘의료적 목적’으로 포경수술이 필요하다. 포바연의 노석씨는 “남성이나 여성이나 성기에 있어선 의료적 목적의 시술만 하면 된다. 대부분의 남성 아동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포경수술은 여성 할례와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산물”이라고 말했다.

종교적이지 않은 이유로 포경수술이 대중화된 한국과 필리핀은 미국의 영향이 크다. 두 국가는 한때 미군이 통치를 했던 국가였다. 독일과 일본에서도 미군정이 실시됐지만 포경수술이 퍼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노석씨는 “두 국가의 의료와 교육 수준이 높았기 때문에 의학적 효과에 대한 근거가 부족한 시술이 퍼지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미국 의료계가 포경수술의 전도사가 된 것은 막강한 유대인 커뮤니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애초 포경수술은 유대인과 이슬람교도의 종교·문화적 풍습이었다. 이들이 공유하는 구약성서 창세기 17장엔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포경수술)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다’라고 적혀 있다. 유대인들은 성경에 따라 할례를 받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족쇄가 되어 박해와 색출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서기 132년께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할례 금지령’을 내려 유대인을 탄압했고,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나치정권은 유대인을 색출하기 위해 할례 여부를 확인했다. 1998년 독일에서 제작된 영화 <유로파 유로파>에선 독일인 행세를 하고 다니는 유대인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이 유대인은 학교에서 알몸 신체검사를 피하기 위해 억지로 생니를 뽑기도 했고, 연인 사이가 된 독일 여자에게 ‘남자 구실을 못한다’는 면박을 들으면서도 옷을 벗지 못했다. 옷을 벗는 순간 유일하게 할례를 한 자신이 유대인인 것이 들통나기 때문이었다. 노씨는 “할례로 인해 색출되고 학살당한 트라우마가 있는 유대인들이 오늘날엔 포경수술의 주된 옹호자”라고 밝혔다.

한국에서는 포경수술을 하지 않은 아동이 또래 사이에서 놀림을 당하기도 한다. 대한비뇨기과의사회는 누리집에 공개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또래들과 동질감을 갖기 위한 성장기 통과의례처럼 자리잡아 굳이 아이들에게 포경수술을 하지 않아 스트레스를 줄 필요가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적고 있다. 남과 다르면 이상하게 받아들이는 한국의 문화가 전세계에서 이례적으로 높은 포경수술의 비율을 만들었다는 지적도 있다. 노씨는 “포경수술을 안 한 지인은 어렸을 적부터 공중목욕탕 출입을 꺼렸다. 의학적인 논란이 분분한 시술이 대중적으로 된 배경엔 남들과 다르면 안 된다는 불안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