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과 간장, 허파와 신장, 비장 등 중요한 장기와 연결된 다섯가지 소리를 내면서 건강을 다지는 전통 건강술 영가무도의 전수자 이애주씨가 자신의 과천 무용연구소에서 ‘영가’ 시범(아래 사진)을 보인 뒤, 춤추고 뛰는 다양한 모습으로 ‘무도’를 선보이고 있다.
[건강과 삶] 무용가 이애주의 ‘영가무도’
한동안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던 이애주(66)씨는 조금씩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처음 소리는 ‘음~음’이다. 마치 갓난아이가 엄마의 자궁에서 생명의 존재감을 나타내기 위해 내는 소리 같다. 태초의 신비를 품은 작은 소리는 점차 주파수를 높이며 커진다. 이제 입을 조금 더 벌리며 ‘아~’ 소리를 낸다. 엄마 자궁을 벗어난 갓난아이가 세상의 밝은 빛을 부담스러워하며 내는 소리 같기도 하다. 인간이 하늘을 향해 부르짖는 절절한 호소 같기도 하다. 어느덧 ‘아’는 ’어’로 바뀐다. 아이가 처음 부르는 ‘엄마’의 첫 음절 시작이다. ‘어’는 굳게 다문 치아 사이로 빠져나오는 소리인 ‘이’로 다시 바뀐다. ‘이’에는 천지를 호령하듯 기운찬 힘이 실려 있다. 어느덧 ‘이’는 낮은 주파수의 ‘우’로 변신한다. 아랫배에 강한 힘을 주고 모든 소리를 한꺼번에 모아 내는 소리이다. 몸 깊은 곳에서 강한 울림을 거쳐 나오는 소리는 자연의 기운을 휘감아 버린다.
잠시 정적이 흐른다.
다시 소리를 내기 시작한 이씨는 조금씩 몸을 움직인다. 이리저리 방향을 틀다가 양손을 번갈아가며 허리와 옆구리 등을 두들긴다. 무릎을 서서히 펴며 일어선 이씨는 천지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깊은 호흡을 계속한다. ‘묵은 것은 토해내고, 새것을 받아들인다(토고납신·吐故納新)’는 전통의 도인호흡법을 그대로 보여준다. 작은 북소리가 몸의 움직임에 탄력을 더해준다.
점차 몸의 동작은 빨라진다. 3보 나갔다가 3보 후퇴하는가 하면 좌우로 몸을 틀다가 공중으로 뛰어오른다. 두 팔을 어깨 높이로 올렸다가 내리는 ‘너울너울’ 동작이 계속되다가 마치 나뭇잎이 바람에 맞서다가 제쳐지는 모습의 ‘엎고 제치기’ 동작이 이어진다.
입에서는 계속 ‘음, 아, 어. 이, 우’의 다섯 모음이 낮았다가 높은 음을 내뿜고 있고, 평생을 춤으로 이어 온 육체는 다양한 동작을 연출한다. 마침내 소리가 잦아지며 대지가 좁다는 듯 기운차게 뛰어다니던 육체도 ‘벌러덩’ 뒤로 눕는다. 다시 정적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몸을 일으켜 옷을 추스른 이씨는 두 눈을 감고 깊은 명상에 빠져든다. 유리컵에 담겨 있던 누런 흙탕물이 조용한 가운데 흙가루는 바닥에 가라앉고 맑은 물로 변하는 ‘입정’(入靜)의 단계이다.
드디어 감겼던 눈이 떠진다. 깊은 평화가 사방에 퍼진다.
1980년대 암울했던 시절, 독재에 항거하다가 귀한 목숨을 빼앗긴 젊은이의 넋을 광화문 한복판에서 무명옷을 입고 온몸으로 달래주었던 ‘시국 춤꾼’ 이씨가 이제는 살아있는 자들의 건강을 보듬어주기 위해 ‘영가무도’를 전수하고 있다.
오행소리춤인 영가무도(詠歌舞蹈)는 간단한 다섯 가지 소리를 내며 지체를 움직여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전통의 건강술이다. 워낙 소수의 사람들에게 이어지는 건강술이라 대중적으로 인지도는 적다.
다섯 가지 소리는 건강을 관장하는 인체 내부 장기의 건강과 직결돼 있다고 한다.
‘음’은 비장(지라), ‘아’는 폐, ‘어’는 간장, ‘이’는 심장. ‘우’는 신장에서 비롯되는 소리로, 이런 음을 길고 깊게 내뿜으며 해당 부위를 단련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가 단군시대 이전부터 한민족에게 전해왔다는 영가무도를 접한 것은 30여년전이다. 승무 전수자로 전통춤 동작의 뿌리를 찾아 고구려 고분 벽화와 삼국시대 문헌을 찾아 헤매던 이 교수는 우연한 자리에서 박상화 옹을 만났다. 그는 구한말 정역사상을 창시한 대선사인 김항과 그를 이은 김창부로부터 영가무도를 전수받은 학자이다.
‘아’는 폐, ‘어’는 간장, ‘이’는 심장…
5가지 소리 내며 몸과 마음 수련
30년 전 전통춤 뿌리 찾던 중 접해
정년퇴직 후 제자들에게 전수중 “승무처럼 소우주 안고 있는 느낌
기와 혈 잘 돌게 해 활력 살아나” 이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영가무도를 집대성한 것으로 알려진 김항은 무아의 경지에 이르는 독특한 방법으로 소리를 내는 ‘영가’의 길을 택했고, 무아의 경지에 빠져 흥을 이기지 못하게 되면 스스로 춤을 추고 뛰게 된다는 ‘무도’의 경지를 개척했다. 박옹은 3살 때 어머니를 여읜 뒤 늘 쇠약했고, 전국 각처를 얻어먹으며 돌아다녔다고 한다. 28세 되던 해 스승 김창부를 만나 정역과 영가무도를 배운 뒤, 신선한 솔잎과 산야초로 생식하며 영가무도를 보급하는 데 집중했다. 중국에서도 남북조시대부터 6개 글자를 발음(쉬, 쓰, 허, 추이, 후, 시)하며 동작을 하는 ‘육자결’이라는 심신단련 공법이 있으나 영가무도와는 발음과 동작이 다르다. 그런 박옹으로부터 직접 영가무도를 배우고 홀로 단련해 온 이씨는 그동안 많은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영가무도를 하면 온몸의 기와 혈이 잘 돌아요. 눈도 맑아지고, 물론 정신도 깨끗해져요. 기분도 좋아지면서 정신 집중의 효과로 심신의 활력이 금방 살아나요.” 이씨는 유치원 때부터 춤에 소질을 보여 무대에 섰다. 신교육을 받았던 어머니 함숙영씨는 딸을 예술인으로 키우기로 하고, 당시 국립국악원 무용담당이던 김보남(작고)씨에게 딸을 맡겼다. 일곱살 때부터 승무에서부터 검무까지 몸에 익힌 이씨는 학창시절 각종 무용대회에서 입상하며 춤꾼으로 기초를 다졌다. 그리고 1969년 승무 예능 보유자인 고 한영숙씨를 만나며 춤꾼 인생의 결정적 계기를 맞는다. 승무 예능 보유자였던 한성준의 손녀인 한씨는 이씨를 승무 이수자로 결정하며 완판 승무를 가르친 것이다. 아주 느린 염불 장단으로 시작되는 한성준 승무는 허튼 타령, 잦은 타령, 굿거리, 법고 등으로 이어지는 독특한 춤사위와 무악을 지니고 있다. 이씨는 “승무의 염불은 마치 태아가 자궁에서 움직이는 태초의 동작부터 삶의 격정적인 내용까지 표현하고 있어 소우주를 안고 있는 느낌인데,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영가무도와 한 맥으로 만난다”고 말한다. 올해 초 서울대를 정년퇴직한 이 씨는 과천 숲속에 자리잡은 자신의 무용연구소에서 매주 일요일 제자들에게 영가무도를 전수하고 있다. “전통 무술의 동작은 물론 온갖 몸놀림과 춤 동작이 다 스며들어 있는 것이 영가무도입니다. 5가지 음을 내뿜으면 심연의 깊은 곳에서 온갖 고통과 맺힌 것을 다 긁어낼 수 있어요. 근질근질한 것, 막힌 것들이 다 풀어집니다. 그리곤 몸과 마음이 확 비워집니다.” 마치 명창처럼 시원하게 소리를 내지르는 이 씨의 모습에서 시대의 아픔을 피하지 않고 극복해 나가려는 강한 의지가 그대로 묻어난다. 과천/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영가’ 시범
5가지 소리 내며 몸과 마음 수련
30년 전 전통춤 뿌리 찾던 중 접해
정년퇴직 후 제자들에게 전수중 “승무처럼 소우주 안고 있는 느낌
기와 혈 잘 돌게 해 활력 살아나” 이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영가무도를 집대성한 것으로 알려진 김항은 무아의 경지에 이르는 독특한 방법으로 소리를 내는 ‘영가’의 길을 택했고, 무아의 경지에 빠져 흥을 이기지 못하게 되면 스스로 춤을 추고 뛰게 된다는 ‘무도’의 경지를 개척했다. 박옹은 3살 때 어머니를 여읜 뒤 늘 쇠약했고, 전국 각처를 얻어먹으며 돌아다녔다고 한다. 28세 되던 해 스승 김창부를 만나 정역과 영가무도를 배운 뒤, 신선한 솔잎과 산야초로 생식하며 영가무도를 보급하는 데 집중했다. 중국에서도 남북조시대부터 6개 글자를 발음(쉬, 쓰, 허, 추이, 후, 시)하며 동작을 하는 ‘육자결’이라는 심신단련 공법이 있으나 영가무도와는 발음과 동작이 다르다. 그런 박옹으로부터 직접 영가무도를 배우고 홀로 단련해 온 이씨는 그동안 많은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영가무도를 하면 온몸의 기와 혈이 잘 돌아요. 눈도 맑아지고, 물론 정신도 깨끗해져요. 기분도 좋아지면서 정신 집중의 효과로 심신의 활력이 금방 살아나요.” 이씨는 유치원 때부터 춤에 소질을 보여 무대에 섰다. 신교육을 받았던 어머니 함숙영씨는 딸을 예술인으로 키우기로 하고, 당시 국립국악원 무용담당이던 김보남(작고)씨에게 딸을 맡겼다. 일곱살 때부터 승무에서부터 검무까지 몸에 익힌 이씨는 학창시절 각종 무용대회에서 입상하며 춤꾼으로 기초를 다졌다. 그리고 1969년 승무 예능 보유자인 고 한영숙씨를 만나며 춤꾼 인생의 결정적 계기를 맞는다. 승무 예능 보유자였던 한성준의 손녀인 한씨는 이씨를 승무 이수자로 결정하며 완판 승무를 가르친 것이다. 아주 느린 염불 장단으로 시작되는 한성준 승무는 허튼 타령, 잦은 타령, 굿거리, 법고 등으로 이어지는 독특한 춤사위와 무악을 지니고 있다. 이씨는 “승무의 염불은 마치 태아가 자궁에서 움직이는 태초의 동작부터 삶의 격정적인 내용까지 표현하고 있어 소우주를 안고 있는 느낌인데,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영가무도와 한 맥으로 만난다”고 말한다. 올해 초 서울대를 정년퇴직한 이 씨는 과천 숲속에 자리잡은 자신의 무용연구소에서 매주 일요일 제자들에게 영가무도를 전수하고 있다. “전통 무술의 동작은 물론 온갖 몸놀림과 춤 동작이 다 스며들어 있는 것이 영가무도입니다. 5가지 음을 내뿜으면 심연의 깊은 곳에서 온갖 고통과 맺힌 것을 다 긁어낼 수 있어요. 근질근질한 것, 막힌 것들이 다 풀어집니다. 그리곤 몸과 마음이 확 비워집니다.” 마치 명창처럼 시원하게 소리를 내지르는 이 씨의 모습에서 시대의 아픔을 피하지 않고 극복해 나가려는 강한 의지가 그대로 묻어난다. 과천/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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