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간에 30㎏ 넘게 감량한 개그우먼 이희경씨는 요요현상이 걱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요요현상이 와도 자신을 미워하지 않고 다시 뺄 것”이라고 말했다. 7월 31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코믹한 자세를 취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몸]
나의 몸 <6> 개그우먼 이희경의 살
나의 몸 <6> 개그우먼 이희경의 살
▶ 옷이 얇아지는 여름은 여성이라면 한번쯤 다이어트를 고민하는 계절입니다. 다이어트는 쉽지 않습니다. 독하게 마음먹고 시작한 다이어트가, 많은 경우 자신의 식욕을 확인하며 초라하게 끝납니다. 개그우먼 이희경(29)씨는 <개그콘서트> ‘헬스걸’ 코너를 통해 5개월 만에 32㎏을 감량했고, 2년 동안 ‘요요 현상’ 없이 몸매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시절 이후로 뚱뚱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던 이씨를 만나 그에게 살과 다이어트의 의미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2010년 11월 서울 강동경찰서에 황당한 폭행사건이 접수됐다. 택시기사가 20대 여성에게 “그런 뚱뚱한 몸으로 미니스커트를 입느냐. 팬티가 다 보이겠다”고 말했고, 이에 항의하는 여성을 폭행한 사건이었다. 이 택시기사는 경찰 조사에서도 “뚱뚱한 여자들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니는 게 그냥 보기 싫었다”고 진술했다.
우리 사회에서 뚱뚱한 여자로 사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2011년 7월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인 ‘헬스걸’에선 이런 장면이 나온다. 뚱뚱한 여자 두 명이 잡지를 뒤적거리며 무슨 다이어트를 할지 고민하다가, 키스 다이어트의 효능에 이끌린다. 그 순간 트레이너 남자가 나타나 말한다.
“과연 이들이 키스를 할 수 있을까. (방청석을 둘러보며) 여기 오신 분들 중에서 이들의 키스 다이어트를 도와줄 분이 있으면 손을 들어달라. 방법은 쉽다. 나와서 5분만 키스를 해주면 된다. 정말 아무도 없나.”
50여가지 다이어트 도전했다 실패했던 과거
웃기려고 한 말이지만, 뚱뚱한 여성의 처지에서 보면 씁쓸한 맛이 남는 개그다. 국내 최초의 플러스 사이즈 모델인 김지양(27)씨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뚱뚱한 여자로 사는 것은 거리 한복판에서 발가벗고 있는 느낌이다.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체념한 채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왜곡된 시선의 피해자는 뚱뚱한 여성들만이 아니다. 의학적인 기준에서 적정 체중인 여성들도 비정상적으로 마른 몸을 욕망한다. 기준은 대개 모델이나 여성 연예인이다. 이런 몸을 추구하다 보면 병이 찾아오기도 한다. 먹는 것을 참다가 결국 음식 자체를 거부하게 되는 ‘거식증’이나, 지나치게 절제하다가 식욕이 터지는 ‘폭식증’에 걸리기도 한다. 이는 통계로도 나타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를 보면, 지난해 거식증, 폭식증 등 섭식장애로 병원을 찾은 20대 여성은 같은 연령대 남성에 비해 8.8배가 많았다. 전체 연령대로 확대해도 섭식장애의 80%는 여성이었다.
이제 군살이 없는 ‘마른 몸’은 단순히 미의 기준이 아니다. 많은 여성들에게 욕망의 대상이고, 이 궤도에서 벗어나는 여성들에겐 사회적 압박의 기준이다.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자존감을 결정짓는 요인이기도 하다.
개콘 ‘헬스걸’에 출연해
5개월간 무려 32㎏ 감량
2년 뒤에도 체중 거의 유지
무작정 굶는 다이어트 피하고
소식과 운동으로 건강 지켜 “제 허벅지 굵어졌단 기사에
다시 굶기 시작한 적 있어요
무작정 식욕을 억제하다 보니
어느날 욕망이 터져버렸어요
먹고 싶은 걸 마구 먹었지요
무의식과 욕망 무시한 결과죠”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였던 ‘헬스걸’에 출연해 5개월 동안 32㎏을 감량한 이희경(29)씨를 7월31일 정오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헬스걸은 다이어트와 체중감량을 유머의 소재로 삼으며 매주 목표 체중을 설정했다. 결국 이 코너에 출연한 이희경씨와 권미진씨는 30~40㎏ 체중 감량에 성공했다. 이씨는 이 코너를 통해 86.5㎏의 체중을 55㎏ 미만으로 줄였지만, 자신의 몸에 대해 ‘말랐다’고 표현하지 않았다. “제가 살을 많이 뺐지만, 제 몸이 말랐다고 말하진 않아요. 사실 예전에 비해 많이 말랐죠. 그렇지만 사회적으로 ‘말랐다’고 인정되는 몸은 훨씬 날씬하잖아요. 제가 말랐다고 하면 듣는 분들이 이상하게 볼까봐, 그냥 건강한 몸매가 됐다고 해요.” 이씨는 2010년 케이비에스 공채 25기 개그맨으로 선발돼 첫해 <개그콘서트>의 ‘슈퍼스타케이비에스’ 코너에서 찬송가를 부르는 ‘권사님’ 역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씨는 당시 핑크색 투피스를 입고 나이 지긋한 교회 권사님 역을 능청스럽게 소화해냈다. 그가 통통한 체형이 아니었으면 쉽게 소화해낼 수 없는 역이었다. 이듬해 7월, 이씨를 유명하게 만든 코너 ‘헬스걸’이 시작됐다. “사실 ‘헬스걸’은 같이 출연했던 이종훈 선배의 아이템이에요. 처음부터 이 코너에 욕심이 났어요. 저는 어릴 적부터 비만이었거든요. 유치원 때 잠시 말랐고, 그 이후로 늘 뚱뚱했어요. 치마와 원피스를 입고 다녔던 것도 유치원 때가 마지막이에요. 수십가지의 다이어트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죠. 여자 20대에 한번쯤은 날씬하고 싶었어요.” 이씨가 그동안 해온 다이어트 종류만 해도 50가지가 넘는다. 이 중에 하나의 음식만 먹으며 시도하는 ‘원푸드 다이어트’만 10여가지라고 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다이어트를 시도했지만, 실패할 때마다 드는 생각은 비슷했다. “고기만 먹는 다이어트, 과일만 먹거나 한약만 먹는 다이어트 등 안 해본 다이어트가 없어요. 침으로 살을 빼는 방법이 있다고 해서 온몸에 고슴도치처럼 침을 맞은 적도 있었어요. 그럴 땐 속으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죠. 별의별 시도를 다 하면서도 매번 실패하니까 자괴감이 들었어요.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또 먹고 싶은 나는 도대체 뭐냐. 정말 음식이 뭐라고. 나 자신이 너무 싫다. ‘에라 모르겠다. 다시 먹자’는 식으로 다시 폭식을 하곤 했죠.” 이렇게 숱한 실패를 겪으며 자기 자신을 미워했던 이씨는 오히려 “다이어트에 실패했다고 자기 자신을 미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저는 성격이 긍정적인 편이라, 뚱뚱해도 즐겁게 살려고 했어요. 그렇지만 20대 중반이 넘어서자 사회적인 시선이 부담스러웠고, 다이어트는 번번이 실패했죠. 점점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마음을 걸어 잠그게 되더라구요. 자괴감에 빠지면 작은 실패도 더 크게 느껴지고, 삶이 불행해질 뿐만 아니라 다이어트도 더 어려워졌어요.”
김밥 살 때의 주문 “단무지는 빼주세요”
이씨는 ‘헬스걸’에 출연하면서 매주 1~2㎏의 감량 목표를 세워 체계적인 관리를 받으며 운동하고 식이요법을 했다. 평생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살빼기에 성공한 비결로 그는 “방송에 나와 많은 사람들에게 약속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매주 방송에 나와 체중계 위에 올라가야 했다. 이를 위해 이씨는 매일 4시간씩 운동하고, 채소와 단백질 식품 위주로 골라 먹었다. 한번은 이씨가 너무 힘들어 떡볶이와 순대를 먹으러 분식집을 찾았더니, 주변 사람들이 ‘헬스걸의 이희경 아니냐’고 수군거렸다. 이씨는 먹지도 못하고 분식집 문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5개월 동안 32㎏을 뺐다고 하니 사람들이 저보고 의지가 대단하다고 해요. 전 의지가 강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랬으면 ‘헬스걸’에 나오기 전에 이미 살을 뺐겠죠. 매일매일 너무 힘들어 울었고, 아침에 눈을 뜨면 일어나기 힘들 정도로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어요. 수백만명의 시청자들이 응원해주고, 때론 감시자가 돼줬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어요. 방송이 아니라 선후배들이 모여 살을 빼기로 약속했다면 전 분명 중간에 포기했을 거예요. 저는 아주 특별한 운이 따랐을 뿐이에요. 살빼기는 실패하는 게 당연해요. 그러니까 실패했다고 쉽게 실망하지 않았으면 해요.”
단기간에 30㎏ 넘게 감량한 이씨는 ‘요요현상’이 우려되지 않는다고 했다. 만일 요요현상이 온다고 해도 “자기 자신을 미워하지 않고 다시 뺄 것”이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그 이전에 다시 살찌지 않는 비결을 터득했다고 밝혔다.
“솔직히 다시 살찌는 게 두렵죠. 한번은 제 허벅지가 다시 굵어졌다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었어요. 이런 것도 기사가 되나, 정말 사람들이 내 몸에 관심이 많구나 생각했죠. 다시 예민해져서 굶기 시작했고, 무작정 식욕을 억제하다 보니 어느 날 욕망이 터졌어요. 먹고 싶은 음식을 무절제하게 먹었죠. 다음날 러닝머신 위에서 미친 듯이 뛰면서 깨달은 것이 있어요. 그 깨달음은 바로 ‘내 무의식이라는 게 정말 무서운 존재구나’였죠. 무의식과 욕망을 무시하고 무작정 절제하면 언젠가 그 욕망은 터져 나와요. 과도한 절제가 과도한 욕망을 낳는 거죠.”
이씨는 기자에게 먹다 남은 김밥 한줄을 내보였다. 종이로 된 네모난 상자에 김밥이 네 개쯤 남아 있었다. 이씨는 “배가 고파서 김밥을 먹다가도 나중에 또 먹으면 되니까 일부러 조금만 먹는다”고 말했다. 이씨는 ‘헬스걸’이 종영한 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체중을 거의 비슷하게 유지하는 비결로 ‘소식하는 습관’을 꼽았다. 예전처럼 운동을 하진 못하지만, 적게 먹고 건강하게 먹는 습관을 들여 체중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이젠 무작정 굶거나 하나의 음식만 먹는 다이어트는 하지 않아요.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먹되 적게 섭취하죠. 조금 많이 먹으면 활동량을 늘리구요. 김밥을 살 때 단무지를 빼달라고 하는 등 짠 음식을 적게 먹어요. 사소하고도 작은 습관들을 통해 적정한 체중을 유지하는 거죠.”
이씨는 뚱뚱한 시절에도 낙천적인 성격이었다. 쾌활하고 유머가 있어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중고등학교 땐 총학생회장을 맡았고, 경희대 국제학과에서 과대표를 지냈다. 하지만 사회적인 시선을 완전히 무시할 순 없었다.
“전 제가 뚱뚱하지만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어요. 몸에 대한 사회적인 기준에 동의할 수 없었고,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도 몰랐었죠. 전 그 굴레 안에서 자유롭고 싶은데 그렇지 않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죠. 사람들이 가끔 내게 ‘너 요즘 살쪘다’고 하면 화장실에서 거울 볼 때 자꾸 의식하는 저를 발견했어요. 점점 뚱뚱한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선도 느끼게 됐구요.”
체형으로 성품을 판단하는 편견에 관하여
이씨는 뚱뚱한 사람에 대한 편견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뚱뚱한 사람 중에 부지런한 사람을 정말 많이 봤고, 마른 사람 중에도 게으른 사람이 많아요. 원푸드 다이어트를 할 때 느꼈지만, 자주 굶으며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고 굉장히 예민해져요. 사람들에게 신경질을 내기도 쉽죠. 엔지오 단체에서 간사를 맡고 있는 지인이 있는데요. 그분은 좀 뚱뚱하지만, 굉장히 부지런하고 성품도 훌륭해요. 사람을 좋아해서 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기 좋아하고, 특별히 다이어트를 하지 않죠. 체형으로 성품을 판단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봐요.”
살이 빠지면서 옷을 고르는 행태도 달라졌다. 기성복 매장에서 여성복을 고를 수 없었던 이씨는 이태원에서 파는 큰 사이즈의 옷만을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고르던 옷의 사이즈는 99, 100, 110이었지만, 지금은 기성복 매장에서 파는 일반 여성복 사이즈(44, 55, 66)의 옷을 구매하고 있다. 이씨는 이전에 입지 못했던 옷을 고르는 것이 여자로서 처음 느끼는 행복이었다고 하면서도, 여성의 몸에 대한 획일적인 잣대에 여전히 불편해한다.
“간혹 통통한 여자들이 거리를 지날 때 뒷말하는 친구들을 볼 때가 있어요. 그럴 땐 굉장히 기분이 나빠요. 속으로 ‘내가 뚱뚱했을 때도 누군가가 그랬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구요. 그 여자분에게 감정이입이 되니까 너무 속상하고 화나죠.”
마지막 질문으로 ‘뚱뚱한 여성을 볼 때 어떤 감정이 드느냐’고 물었다.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느냐, 아니냐에 따라 기준이 달라져요. 뚱뚱하다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고 행복하면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요. 하지만 어떨 땐 누가 봐도 날씬한데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분들이 있어요. 요즘 살이 좀 찐 것 같다며 우물쭈물하며 걷는 게 느껴지는 분들이 있죠. 전 뚱뚱하더라도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다만 건강만 제대로 유지한다면 말이죠.”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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