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프리카 탄자니아 북부 올두바이에서 발견한 500만년 전의 발자국 화석을 복제한 모형. 일본국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토요판/몸] 라에톨리의 발자국
▶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 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문태준, ‘맨발’ 중) 맨마음, 맨살림을 말없이 지탱하는 두 발을, 혹시 낮고 천하다며 막연히 무시하지는 않았는지요. 그런데 그런 발이 우리를 인류로 만든 주인공이라면 어떨까요. 최초의 인류는 생각하기 전에 먼저 걷기부터 했으니까요.
붉은 흙 사이로 진한 녹색의 식물이 드문드문 드러났다. 색채의 대비가 아찔했다. 마치 화성에 지구의 식물이 실수로 몇 개 옮겨가 피어난 것 같았다. 오랜 세월 풍화를 견딘, 시루떡 같은 무늬가 선명한 지층이 마치 석상처럼 버티고 서서 강렬함을 더했다. “수백만년 시간이 여기에 박제돼 있다”고 주장하는 듯했다. 지난 1월15일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의 북부에 위치한 유명한 고인류학 유적지 올두바이 협곡이었다.
아프리카는 인류의 탄생지다. 초창기 친척 인류의 화석이 발견된 유적지는 아프리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올두바이는 특별하다. 영국의 고인류학자 가족인 리키 일가는 1950년대에 이곳에서, 당시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 전(180만년 전) 친척 인류인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당시 이름은 진잔트로푸스 보이세이)의 화석을 발굴했다. 거대한 턱뼈가 인상적인 화석이었다. 1960년대엔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또다른 친척 인류인 호모 하빌리스의 화석도 발견했다. 이후에도 올두바이에서는 화석과 석기 등이 연이어 쏟아져 나왔다.
그 가운데 ‘발자국’이 있다. 발견된 지명을 따 ‘라에톨리의 발자국’이라고 불리는 이 화석은 인골과 석기, 동물 뼈 등 중요해 보이는 다른 화석 틈에서 유독 주목을 받았다. 아마 닐 암스트롱이 달에 새긴 발자국 다음으로 유명한 발자국일 것이다. 이 발자국이 유명해진 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360만년 전이라는 아득한 시기에 찍혔다는 점, 그리고 어디에도 ‘앞발’의 흔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조주는 왜 더러운 신발을 머리에 이었을까
선불교의 공안집인 <벽암록>에는 고승이 고양이를 칼로 베어 살생을 한 이상한 이야기가 나온다. 둘로 나뉘어 있는 이야기를 간추리면 이렇다. 남전이 외출했다 돌아오니 제자들이 고양이 한 마리를 두고 서로 패를 갈라 다투고 있었다. 이에 남전이 고양이를 들고 칼로 겨눈 채 “한마디 진리를 말하면 살려주겠다”고 했지만, 아무도 대답을 못해 고양이를 죽였다. 그날 밤 애제자 조주가 외출에서 돌아왔다. 남전이 고양이 일을 말하며 같은 질문을 하자 조주는 신발을 머리에 이고 방을 나가버렸다. 남전은 탄식했다.
고인류학자 가족인 리키 일가가
탄자니아 올두바이 협곡에서
360만년 전 발자국을 발견했다
발자국의 주인은 뇌도 작았고
온몸이 털로 덮여 있었다 인류와 비슷한 특징이라고는
두 발로 걷는다는 것뿐이었다
가장 낮고 미천한 신체 기관이
가장 귀한 대접 받는 뇌 제치고
인류가 된 최초의 징표가 됐다 미시마 유키오는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소설 <금각사>에 인용했다. 그는 유미주의자답게 제자들이 편을 갈라 다툰 이유를 ‘고양이가 예뻤기 때문’이라고 참신하게 해석했다. 이 공안에서 중요한 것은 다툼이 아니라 조주의 수수께끼 같은 반응이다. 더러운 신발을 왜 머리에 이었을까. 그것도 하늘 같은 스승 앞에서. 신발은 발에 신는 것이다. 흙도 밟고 똥도 밟는다. 미천하고 낮은 대상이다. 그런 신발을 신체 부위 중 위치도 가장 높고, 실제로도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 머리 위에 올렸다. 머리는 ‘지혜로운’ 호모 사피엔스의 상징이다. 그런 머리 위에 발(신발)을 올렸다. 조주는 가치를 뒤집는 전복을 몸소 보인 것이다. 라에톨리에서, 인류는 또다른 전복을 발견했다. 인류의 가장 낮은 곳에서 그저 뛰고 달리고 지탱하는 데 묵묵히 복무하는 줄만 알았던 두 발은, 알고 보니 인류가 획득한 최초의 정체성이었다. 360만년 전 라에톨리의 발자국을 찍고 걸어간 주인공(친척 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로 추정된다)에게는 사실 인간다운 점이 거의 없었다. 몸은 털로 덮여 있었고 말도 못 했으며, 무엇보다 두뇌가 작았다. 인류학자들은 당황했다. 이상희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인류학과 교수는 “당시 고인류학자들은 오랫동안 ‘지혜로운 인간’ 호모 사피엔스의 조상은 무엇보다 두뇌 하나는 컸을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했다. 실제 발굴을 통해 알아낸 당시 인류의 두뇌 크기는 침팬지와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인류와 비슷한 특징이라고는 두 발로 걷는다는 사실뿐이었다. 가장 낮고 미천한 신체 기관이 인류가 된 최초의 징표라니, 두뇌가 발달한 뒤에야 다른 모든 인간적인 특징(도구, 두발 걷기, 털 없는 맨몸 등)이 나타났다고 믿던 사람에게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올두바이에서, 당시 리키 가족이 머물며 발굴을 했던 기지는 지금도 훤히 내려다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겨우 45㎞ 남쪽에 위치한 라에톨리에는 가볼 수 없었다. 세렝게티에 위치한 야생동물연구센터를 취재하기 위해 가던 길에 일행과 잠시 들른 길이라 시간이 많지 않았다. 더구나 라에톨리는 비공개 유적이라 불시에 방문할 수는 없었다. 아쉬우나마 올두바이에 친절하게 묘사돼 있는 설명을 읽고 사진을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직접 봤다 해도 별로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을 가능성도 높다. 발자국 화석은 뼈 화석보다 극적이지 않은 편이다. 훈련을 받은 고인류학자나 고생물학자가 아닌 이상, 알아보기도 쉽지 않다. 직립보행과 나무타기를 병행했다? 임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 천연기념물센터 학예연구관을 따라 경상남도 진주시의 공룡 발자국 화석 발굴 현장에 간 적이 있다. 임 연구관이 바로 앞에 화석이 잔뜩 널려 있다고 가르쳐 줬지만, 처음에는 한 개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귀한 발자국 화석을 밟고 있을까 봐 화들짝 놀라며 발을 떼기 일쑤였다. 해가 기울어 발자국 화석에 그림자를 드리운 늦은 오후에야,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육식공룡 수각류와 펑퍼짐한 초식공룡 용각류의 발자국이 눈에 익기 시작했다. 왼발, 오른발, 왼발…. 이렇게 걷거나 다급하게 뛴 발자국 화석이 시내버스 바닥만한 평평한 바위 위에 100여개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라에톨리의 발자국 역시 그럴 것이다. 이 발자국도 1970년대에 리키 가족이 발굴했다. 설명에는 발자국을 조심스레 손으로 쓸고 있는 여성 인류학자의 모습이 나와 있었다. 메리 리키 박사였다. 과학자들이 화석을 분석해 알아낸 발의 형태도 소개돼 있었는데, 놀라웠다. 우리 발처럼 엄지발가락이 길게 발 앞을 향해 뻗어 있었다. 침팬지나 고릴라는 엄지발가락이 가장 길지도 않고, 앞을 향해 있지도 않다. 엄지발가락이 굵고 길어진 것은 걸을 때 엄지발가락으로 힘을 받아 땅을 뒤로 밀치기 때문이다. 두발 걷기의 강력한 증거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2010년 데이비드 레이클린 미국 애리조나대 교수팀은 라에톨리의 발자국 화석에서 발가락 부분의 깊이와 뒤꿈치 부분의 깊이 비율이 오늘날 인류가 진흙에 남기는 발자국의 깊이 비율과 거의 같다고 밝혔다. 이 깊이 비율도 걸음걸이의 형태와 관련이 깊다. 뒤꿈치로 땅을 디딘 뒤 발 안쪽을 살짝 대고 다시 발가락(특히 엄지) 부분에 힘을 집중시키며 땅을 밀친다. 인류의 걸음걸이는 최소 360만년 전부터 이 방식을 거의 그대로 따랐다. 오늘날에는 라에톨리의 발자국의 주인공보다 오래된 종의 화석이 여럿 발견됐다. 2009년 이후 연구된 종들은 다시 논란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2009년 10월 과학전문지 <사이언스>가 한 호의 절반을 특집으로 할애해 연구 결과를 발표한 일명 ‘아르디’(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는 440만년 전에 살았는데, 엄지발가락이 침팬지처럼 옆으로 뻗어 있었다. 하지만 나무를 기어오르거나 매달리기 위해 침팬지가 진화시킨, 거의 손바닥같이 유연하게 구부러지는 발바닥과는 조금 달랐다. 아르디는 이 발로 불완전하게나마 걸었다. 두발 걸음의 역사는 최소 440만년 전까지 확장됐다. 물론 동시에 나무를 탔을 가능성도 높다. 직립보행 전문가인 대니얼 리버먼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아르디와 다른 화석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 2012년 <네이처>에 “인류는 340만년 전까지 직립보행과 나무타기를 병행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상희 교수는 “이 경우 인류가 숲이 아닌 초원에 적응해 직립보행을 진화시켰다는 이전까지의 가설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4월 <사이언스> 표지를 장식한 200만년 전 인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세디바 역시 논란이 많다. 제러미 드실바 미국 보스턴대 인류학과 교수팀의 연구 결과, 발을 처음 땅에 디딜 때부터 발가락 끝이 지면에서 떨어질 때까지 관절에 가해지는 힘의 방향이 지금의 인류와는 달랐다. 이는 당시에 인류가 걷던 방식이 한 가지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오늘날의 인류는 무수한 친척 인류가 멸종하고 난 뒤 살아남은 유일종이다. 발의 모양도, 걷는 방식도 함께 사라져 지금은 한 가지만 남아 있다. 조주가 머리에 인 신발이 어떤 발을 위한 신발일지 궁금해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런 믿음도 깨질지 모른다. 세디바의 발을 연구했던 드실바 교수가 올해 5월 현대인 398명의 걸음을 압력 측정과 비디오 분석으로 연구한 결과, 약 8%(32명)가 유인원처럼 나무타기에 좋은 ‘유연한’ 발을 가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가운데가 평평하고 심지어 살짝 위로 구부러지기까지 하는 발이었다. 어쩌면 우리의 발은 기억하고 있을지 모른다. 수백만년 전에 살던, 나무도 타고 초원도 의젓하게 걷던 초기 친척 인류의 흔적을. 그들이 갖고 있던, 우리를 인류로 만들어준 최초의 몸의 징표를 말이다. 윤신영 <과학동아> 기자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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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에톨리의 주인공으로 추정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모형.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코스모카샤 박물관에서 촬영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탄자니아 올두바이 협곡에서
360만년 전 발자국을 발견했다
발자국의 주인은 뇌도 작았고
온몸이 털로 덮여 있었다 인류와 비슷한 특징이라고는
두 발로 걷는다는 것뿐이었다
가장 낮고 미천한 신체 기관이
가장 귀한 대접 받는 뇌 제치고
인류가 된 최초의 징표가 됐다 미시마 유키오는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소설 <금각사>에 인용했다. 그는 유미주의자답게 제자들이 편을 갈라 다툰 이유를 ‘고양이가 예뻤기 때문’이라고 참신하게 해석했다. 이 공안에서 중요한 것은 다툼이 아니라 조주의 수수께끼 같은 반응이다. 더러운 신발을 왜 머리에 이었을까. 그것도 하늘 같은 스승 앞에서. 신발은 발에 신는 것이다. 흙도 밟고 똥도 밟는다. 미천하고 낮은 대상이다. 그런 신발을 신체 부위 중 위치도 가장 높고, 실제로도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 머리 위에 올렸다. 머리는 ‘지혜로운’ 호모 사피엔스의 상징이다. 그런 머리 위에 발(신발)을 올렸다. 조주는 가치를 뒤집는 전복을 몸소 보인 것이다. 라에톨리에서, 인류는 또다른 전복을 발견했다. 인류의 가장 낮은 곳에서 그저 뛰고 달리고 지탱하는 데 묵묵히 복무하는 줄만 알았던 두 발은, 알고 보니 인류가 획득한 최초의 정체성이었다. 360만년 전 라에톨리의 발자국을 찍고 걸어간 주인공(친척 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로 추정된다)에게는 사실 인간다운 점이 거의 없었다. 몸은 털로 덮여 있었고 말도 못 했으며, 무엇보다 두뇌가 작았다. 인류학자들은 당황했다. 이상희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인류학과 교수는 “당시 고인류학자들은 오랫동안 ‘지혜로운 인간’ 호모 사피엔스의 조상은 무엇보다 두뇌 하나는 컸을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했다. 실제 발굴을 통해 알아낸 당시 인류의 두뇌 크기는 침팬지와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인류와 비슷한 특징이라고는 두 발로 걷는다는 사실뿐이었다. 가장 낮고 미천한 신체 기관이 인류가 된 최초의 징표라니, 두뇌가 발달한 뒤에야 다른 모든 인간적인 특징(도구, 두발 걷기, 털 없는 맨몸 등)이 나타났다고 믿던 사람에게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올두바이에서, 당시 리키 가족이 머물며 발굴을 했던 기지는 지금도 훤히 내려다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겨우 45㎞ 남쪽에 위치한 라에톨리에는 가볼 수 없었다. 세렝게티에 위치한 야생동물연구센터를 취재하기 위해 가던 길에 일행과 잠시 들른 길이라 시간이 많지 않았다. 더구나 라에톨리는 비공개 유적이라 불시에 방문할 수는 없었다. 아쉬우나마 올두바이에 친절하게 묘사돼 있는 설명을 읽고 사진을 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직접 봤다 해도 별로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을 가능성도 높다. 발자국 화석은 뼈 화석보다 극적이지 않은 편이다. 훈련을 받은 고인류학자나 고생물학자가 아닌 이상, 알아보기도 쉽지 않다. 직립보행과 나무타기를 병행했다? 임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 천연기념물센터 학예연구관을 따라 경상남도 진주시의 공룡 발자국 화석 발굴 현장에 간 적이 있다. 임 연구관이 바로 앞에 화석이 잔뜩 널려 있다고 가르쳐 줬지만, 처음에는 한 개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귀한 발자국 화석을 밟고 있을까 봐 화들짝 놀라며 발을 떼기 일쑤였다. 해가 기울어 발자국 화석에 그림자를 드리운 늦은 오후에야,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육식공룡 수각류와 펑퍼짐한 초식공룡 용각류의 발자국이 눈에 익기 시작했다. 왼발, 오른발, 왼발…. 이렇게 걷거나 다급하게 뛴 발자국 화석이 시내버스 바닥만한 평평한 바위 위에 100여개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라에톨리의 발자국 역시 그럴 것이다. 이 발자국도 1970년대에 리키 가족이 발굴했다. 설명에는 발자국을 조심스레 손으로 쓸고 있는 여성 인류학자의 모습이 나와 있었다. 메리 리키 박사였다. 과학자들이 화석을 분석해 알아낸 발의 형태도 소개돼 있었는데, 놀라웠다. 우리 발처럼 엄지발가락이 길게 발 앞을 향해 뻗어 있었다. 침팬지나 고릴라는 엄지발가락이 가장 길지도 않고, 앞을 향해 있지도 않다. 엄지발가락이 굵고 길어진 것은 걸을 때 엄지발가락으로 힘을 받아 땅을 뒤로 밀치기 때문이다. 두발 걷기의 강력한 증거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2010년 데이비드 레이클린 미국 애리조나대 교수팀은 라에톨리의 발자국 화석에서 발가락 부분의 깊이와 뒤꿈치 부분의 깊이 비율이 오늘날 인류가 진흙에 남기는 발자국의 깊이 비율과 거의 같다고 밝혔다. 이 깊이 비율도 걸음걸이의 형태와 관련이 깊다. 뒤꿈치로 땅을 디딘 뒤 발 안쪽을 살짝 대고 다시 발가락(특히 엄지) 부분에 힘을 집중시키며 땅을 밀친다. 인류의 걸음걸이는 최소 360만년 전부터 이 방식을 거의 그대로 따랐다. 오늘날에는 라에톨리의 발자국의 주인공보다 오래된 종의 화석이 여럿 발견됐다. 2009년 이후 연구된 종들은 다시 논란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2009년 10월 과학전문지 <사이언스>가 한 호의 절반을 특집으로 할애해 연구 결과를 발표한 일명 ‘아르디’(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는 440만년 전에 살았는데, 엄지발가락이 침팬지처럼 옆으로 뻗어 있었다. 하지만 나무를 기어오르거나 매달리기 위해 침팬지가 진화시킨, 거의 손바닥같이 유연하게 구부러지는 발바닥과는 조금 달랐다. 아르디는 이 발로 불완전하게나마 걸었다. 두발 걸음의 역사는 최소 440만년 전까지 확장됐다. 물론 동시에 나무를 탔을 가능성도 높다. 직립보행 전문가인 대니얼 리버먼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아르디와 다른 화석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 2012년 <네이처>에 “인류는 340만년 전까지 직립보행과 나무타기를 병행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상희 교수는 “이 경우 인류가 숲이 아닌 초원에 적응해 직립보행을 진화시켰다는 이전까지의 가설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4월 <사이언스> 표지를 장식한 200만년 전 인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세디바 역시 논란이 많다. 제러미 드실바 미국 보스턴대 인류학과 교수팀의 연구 결과, 발을 처음 땅에 디딜 때부터 발가락 끝이 지면에서 떨어질 때까지 관절에 가해지는 힘의 방향이 지금의 인류와는 달랐다. 이는 당시에 인류가 걷던 방식이 한 가지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오늘날의 인류는 무수한 친척 인류가 멸종하고 난 뒤 살아남은 유일종이다. 발의 모양도, 걷는 방식도 함께 사라져 지금은 한 가지만 남아 있다. 조주가 머리에 인 신발이 어떤 발을 위한 신발일지 궁금해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런 믿음도 깨질지 모른다. 세디바의 발을 연구했던 드실바 교수가 올해 5월 현대인 398명의 걸음을 압력 측정과 비디오 분석으로 연구한 결과, 약 8%(32명)가 유인원처럼 나무타기에 좋은 ‘유연한’ 발을 가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가운데가 평평하고 심지어 살짝 위로 구부러지기까지 하는 발이었다. 어쩌면 우리의 발은 기억하고 있을지 모른다. 수백만년 전에 살던, 나무도 타고 초원도 의젓하게 걷던 초기 친척 인류의 흔적을. 그들이 갖고 있던, 우리를 인류로 만들어준 최초의 몸의 징표를 말이다. 윤신영 <과학동아> 기자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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