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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우파도 좌파도 옳다

등록 2013-07-12 19:35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토요판/몸] 정민석의 해부하다 생긴 일
해부학 실습을 시작할 때 선생은 조를 짜서 학생한테 알린다. 각 조는 1구의 시신과 5명 내지 10명의 학생으로 이루어진다. 학생 수가 다른 것은 의과대학마다, 그리고 해마다 시신 기증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학생은 자기 조의 시신을 처음부터 끝까지 맡아서 해부해야 한다.

각 조에서는 학생들끼리 스스로 해부 역할을 나눈다. 많은 경우, 제비뽑기로 우파와 좌파를 나눈다. 우파는 시신의 오른쪽을 해부하는 학생이고, 좌파는 시신의 왼쪽을 해부하는 학생이다. 학생들끼리 뚱딴지처럼 이야기하는 것을 엿들을 때가 있다. “왜 우익과 좌익이라고 부르지 않지?” “우리가 날개를 해부하지는 않잖아? 사람은 천사가 아니잖아?”

사람 몸이 대칭이니까 우파와 좌파는 똑같은 것을 해부하게 되고, 따라서 공평하다. 그런데 나한테 해부학을 배우는 학생은 우파가 되고 싶어한다. 제비뽑기로 우파가 된 학생은 기뻐한다. “야호! 나는 오른쪽을 해부한다.”

오른쪽을 해부하고 싶은 것은 내가 강의하면서 칠판에 사람의 오른쪽을 그리기 때문이다. 팔도 오른쪽을, 다리도 오른쪽을, 몸통도 오른쪽을 그린다. 오른쪽과 왼쪽을 번갈아 그리면 헷갈리므로 한쪽만 그려야 한다. 그런데 왜 하필 오른쪽을 그릴까? 내가 진짜 우파, 다른 말로 보수적이기 때문일까? 거꾸로 진보적인 해부학 선생은 왼쪽을 그릴까? 아니다, 해부학 선생한테 보수와 진보는 아무 뜻이 없다.

오른쪽을 그리는 첫째 까닭은 병원에서 환자의 오른쪽을 먼저 보는 관습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왼쪽부터 본다. 가로쓰기가 아닌 세로쓰기로 펴낸 옛날 책은 거꾸로지만. 병원에서 의사는 대개 환자를 마주본다. 이때 의사의 왼쪽이 환자의 오른쪽이라서, 의사는 자연스럽게 환자의 오른쪽부터 보게 된다.

둘째 까닭은 서양과 동양에서 오른쪽을 존중하는 관습이 있기 때문이다. 악수할 때에도 오른손을 쓰고, 제사 지낼 때에도 오른손을 쓴다.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보다 많아서 생긴 관습으로 짐작된다. 왼손잡이가 억울해도 따를 수밖에 없다. 오른쪽을 존중하는 관습은 낱말에도 나타난다. 영어에서 ‘오른’도 right이고, ‘옳은’도 right이다. 우리말에서 ‘오른’과 ‘옳은’의 발음이 비슷한데,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역시 왼손잡이가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 하여튼 이런 관습 때문에 나는 사람의 오른쪽을 그려야 마음이 놓인다.

제비뽑기로 좌파가 된 학생은 한숨을 내쉰다. “공책 그림은 사람의 오른쪽인데, 내가 해부할 것은 시신의 왼쪽이다. 함께 보면 헷갈린다.” 마침내 엉뚱한 생각도 한다. “공책과 시신 중 하나를 거울에 비춰서 보자. 그러면 서로 들어맞으니까 헷갈리지 않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좌파가 해부할 때 헷갈리는 것을 부풀려서 썼다. 실제로 의과대학 학생은 좌우가 헷갈리는 것을 쉽게 이겨낸다. 이겨내지 못하면, 나중에 환자의 왼쪽을 어떻게 진료하겠는가?

우파와 좌파는 서로 다르게 해부해야 한다. 그래야 한 시신에서 많은 구조를 한꺼번에 볼 수 있다. 한쪽 다리는 엉덩관절, 무릎관절을 열어서 관절 속의 구조를 보게 만들고, 다른 쪽 다리는 관절을 열지 않아서 관절 밖의 근육을 보게 만든다.

그런데 우파도 좌파도 관절을 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만큼 더 시간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어느 쪽에서 관절을 열까? 밖에 있는 근육을 잘 해부하지 못한 쪽에서 관절을 연다. 좌파가 왼쪽 근육을 잘 해부했다고 치자. 그런데 왼쪽 관절을 열면 잘 해부한 왼쪽 근육을 망가뜨려야 하므로 아깝다. 따라서 우파가 오른쪽 관절을 열어야 한다. 공들여 해부한 좌파는 관절을 열지 않고 쉬니까 보상을 받는 셈이다.

이처럼 해부학 실습실에서는 우파와 좌파가 올바르게 겨루고, 그 결과를 따른다. 그리고 우파와 좌파가 다른 것을 마땅하게 여기고 서로를 인정한다. 유치하게 파벌 싸움을 하지 않는다. 우파도 옳고 좌파도 옳다.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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