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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휘모리장단 치듯 휙휙 말 달리며 온몸 담금질

등록 2013-06-11 20:12수정 2013-06-12 15:48

승마를 통해 온몸의 질병을 이긴 가야금 병창 강정숙 명인이 신갈승마클럽에서 애마 ‘영포’를 타고 달린 뒤, 감정을 나누고 있다.
승마를 통해 온몸의 질병을 이긴 가야금 병창 강정숙 명인이 신갈승마클럽에서 애마 ‘영포’를 타고 달린 뒤, 감정을 나누고 있다.
[건강과 삶] ‘가야금 병창·산조’ 무형문화재 강정숙 교수
가야금의 명인 강정숙 교수는 병든 몸에서 탈출하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말 등에 올라탔다. 처음엔 너무 힘들었지만, 차츰 말을 ‘타는’ 것과 가야금을 ‘타는’ 행위는 서로 통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부드럽게 고삐를 당긴다. “따각, 따각” 서서히 움직인다. 안쪽 허벅지에 힘을 준다. 말의 탄탄한 근육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움직임이 잔잔하게 전달된다. 살짝 뒤꿈치로 말의 옆구리를 자극한다. 말굽으로부터 위로 전달되는 지면의 요철이 생생히 느껴진다. 땅의 부드러움과 모래의 사각거림, 스치는 들풀의 향기로움에 온몸의 세포는 활발하게 살아난다. 항상 느낀다. 말을 ‘타는’ 것과 가야금을 ‘타는’ 행위는 서로 통한다는 것을.

[건강과 삶] 가야금병창 강정숙의 승마

진양조의 느림에 가락을 시동하고, 점차 빨라지는 중모리와 중중모리는 온몸의 감각을 일깨우는 말발굽 소리의 자극과 같다. 주변의 광경이 ‘휙휙’ 지나칠 정도로 속도를 내면 말과 나의 정신과 육체는 하나가 된다. 흘리는 땀과 요동치는 근육은 가야금의 휘모리장단에서 최고조로 치닫는다.

벌써 15년째다. 중요무형문화재 23호 가야금 병창 및 산조 보유자인 강정숙(61) 용인대 교수(국악)가 승마에 빠진 지가.

어릴 때부터 강 교수는 욕심이 많았다. 남들은 하나 하기도 버거워했지만, 한국무용과 판소리, 가야금 병창과 산조, 그리고 창극까지 그는 최고가 되기 위해 애썼다. 인간문화재급의 당대 최고 스승을 찾아가 배움을 요청했다. 스승인 향사 박귀희는 “한 포기 고귀한 난처럼 곧은 듯 부드럽고 섬세한 음률의 소유자”라고 제자를 치켜세웠다.

현재 가야금병창보존회를 이끌고 있는 강 교수는 뜯고 튕기고 긁고 목이 갈라지도록 소리를 지르며 실력을 키웠다. 명주실을 감아 만든 가야금 줄은 철사보다 강했다. 손끝이 갈라지고 다시 아무는 과정이 반복됐다.

어릴 때 남원에 이사간 강 교수는 집 근처 광한루에서 흘러나오는 판소리 <춘향가> 가락에 빠졌다. 언니 강문숙(작고)씨는 당시 판소리를 배웠고, 강 교수는 한국무용을 배웠다. 이후 국창이었던 만정 김소희에게 판소리를, 박귀희에게 가야금 병창을, 이매방에게 춤을, 그리고 공철 서달종에게 가야금 산조를 배웠다. 다들 국악계의 거목들이었다.

국립창극단에 입단해 1년 만에 <춘향가>, <수궁가>, <심청가> 등 당시 국립창극단에서 하는 모든 창극의 주인공은 그의 몫이었다. 단아한 외모와 부드러운 몸놀림, 구슬 같은 목소리가 강 교수를 국악계의 프리마돈나로 만들었다. 체력은 어릴 때부터 약했다. 초등학교 때 소풍 가다가 체력이 떨어져 뒤로 처지는 바람에 도중에 집에 돌아올 정도였다. 가야금과 판소리, 창극 등에 몰두하며 몸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몸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4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눈에 띄게 체력은 떨어졌다.

집 뒤의 산을 올라보니 10분도 안 돼 눈앞이 노래졌다. 가야금을 타면서 무릎관절과 고관절, 손가락 마디마디에는 통증이 항상 자리잡고 있었다. 허리와 목에 디스크 증세도 왔다. 목에 염증이 생겨 병원에 가니 의사는 “목에 물혹이 생겼으니 소리를 포기하라”고 경고했다. 수술 후유증으로 음악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체력관리에 힘썼다. 다행히 목에 생긴 혹은 사라졌다. 이번엔 복부에 가스가 차 꺼지지 않았다. 약을 먹으며 공연을 계속했다.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배에 통증이 심해졌고, 끝내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다. 장폐색이었다. 언니의 유방암 사망 등 여러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 의사는 “10분만 늦었어도 위험했다”고 말했다.

서울 방배동의 가야금병창보존회에서 후계자를 키우고 있는 강정숙 명인이 가야금 연주를 하고 있다.
서울 방배동의 가야금병창보존회에서 후계자를 키우고 있는 강정숙 명인이 가야금 연주를 하고 있다.

의사는 강 교수에게 승마를 권유했다. 지치고 병든 몸에서 탈출하기 위해 벼랑에 매달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말 등에 올라탔다. 처음엔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조금씩 몸이 좋아졌다. 말을 타는 동안 온몸에 전달되는 강한 진동이 내장을 흔들며 강 교수의 몸을 변화시켰다. 신기하게 온몸 곳곳에 스멀스멀 자리잡았던 통증이 사라졌다.

말에 익숙해진 강 교수는 제주도 서귀포에서 ‘외승’을 즐겼다. 실내나 트랙을 도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자연에서 말을 타는 것이다. 그곳에서는 말에 올라 바닷가를 질주할 수 있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바다 내음에 취한 채 말과 한 몸이 되는 느낌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제주오름의 험악한 지형도 말을 타고 달렸다.

말은 섬세하다. 떨어지는 낙엽 소리에도 놀란다. 달리다가 밟힌 비닐봉지의 바삭거림에도 요동친다. 자신의 주인에 대한 충성심도 대단하다. 주인의 목소리는 물론 냄새에도 익숙하다. 커다란 눈망울을 껌벅이며 주인의 손가락을 자근자근 물어주는 애교도 피울 줄 안다.

강 교수는 승마뿐 아니라 각종 스포츠에도 열심이다. 스키를 타러 가서 남들은 잠깐이면 터득하는 에이(A)자 슬라이딩을 무려 한달간 계속했다. 그렇게 익힌 기초 덕분에 시간이 지나면 같이 시작한 이들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을 보인다. 가야금과 판소리를 배우듯 운동을 하는 것이다. 등산 뒤 막걸리를 벌컥벌컥 들이켜는 여유도 갖고 있다. 아침엔 일어나 스트레칭과 등산을 한다. 집 주변 호숫가를 1시간 이상 산책한다. 시간이 없으면 아파트 주변이라도 몇 바퀴 돈다.

휴대할 수 있는 크기의 두꺼운 고무매트는 강 교수 건강의 비밀 병기이다. 강 교수는 고무매트를 깔아놓고 제자리에서 ‘통통’ 뛴다. 아침저녁으로 30분씩 매트 운동을 하면 손쉽게 필요한 양의 운동을 할 수 있다.

또 한가지 강 교수의 젊음을 지키는 비결은 ‘물’이다. 하루 마시는 생수의 양은 평균 1.8ℓ짜리 큰 생수병 두개이다. 항상 책상 위에는 생수병이 있고, 틈나는 대로 들이켠다.

강 교수는 “건강을 타고나지 않았다. 오히려 남들보다 약했다. 그러나 나이에 비해 건강하다. 건강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들이 스스로를 고독한 가마에 가두고 담금질해 얻은 열매가 예술”이라고 말하는 강 교수는 가야금 치듯이 자신의 건강을 담금질한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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