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뉴딜] 서민경제 살리기 긴급제안 - ⑥ 어느 가정의 ‘병원비 파산’
서민들에게 질병은 삶을 뿌리째 뒤흔드는 암초다. 암 등 난치병에 걸리면 온 가족이 하루아침에 빈곤이란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건강보험이 치료비의 절반 이상을 해결해 주지만, 저소득층이 부담해야 할 ‘나머지’는 중산층의 그것과는 무게가 다르다. 경제난으로 소득이 줄거나 직장이라도 잃는다면 질병은 그야말로 재앙이다. 불황일수록 국가가 공보험의 범위를 넓혀 서민들의 예고 없는 몰락을 막아야 하는 이유다. 한현자(55)씨는 간암에 걸린 남편(60)을 5년째 돌보고 있다. 수술과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한씨의 가계는 지금 파산 직전이다. 한씨의 간병기는 파산기나 다름없었다. 한씨의 독백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5년째 남편 간암수술로 부인이 생계 책임져
간병·생활비 겹시름…MRI는 보험적용 안돼
통장 잔고 100만원 · 지인들 도움도 이젠 끝 ---------------------------------
2008년 12월: 입원 12일째, 병원비 16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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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1일. 남편이 또 쓰러졌다. 언제나 그렇듯 남편은 수술받았던 병원의 응급실로 실려갔다. 겨우 몸 하나 뉠 만한 간이침대에서 남편은 온몸을 쥐어짜듯 신음하며 꼬박 하룻밤을 기다렸다. ‘병실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다음날, 병원은 원했던 ‘다인실’이 아닌, 2인실을 배정했다. 매번 이렇다. 하루에 14만7천원씩 하는 병실에서 엿새를 보낸 뒤에야 5인실로 옮겼다. 여긴 하루에 1만4천원이다.
23일. 입원한 지 열이틀째다. 남편은 두 시간 정도 걸리는 간동맥화학색전술을 받았다. 수술을 또 할 수 없기에 입원할 때마다 받는 치료다. 보통 한 번 입원하면 닷새에서 일주일 정도 치료를 받고 퇴원한다. 걱정스러운 건 올 들어서는 입원 횟수가 잦고, 입원 기간도 더 길어지고 있는 점이다. 이미 열흘이 훌쩍 넘었지만 이번엔 언제 퇴원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가장 애가 타는 건 늘 그렇듯 병원비다. 어제 병원에서 계산서를 중간정산해 병실로 가져왔다. 총액은 464만3천원이다. 이 중 남편과 내가 부담해야 할 몫은 162만원이다. 그나마 치료비의 35%만 내는 걸 감사해야 하나. 내용을 뜯어보니, 환자 부담 몫 가운데 가장 큰 게 입원비(73만5천원)와 자기공명영상촬영(MRI) 비용(66만1천원)이다. 자기공명영상촬영 검사비는 보험이 안 되냐고 물었더니, 병원에선 “질환과 직접 관련이 없어서 해당이 안 된다”고 답했다. 의사가 찍으라고 한 건데 왜 질환과 관련이 없다고 하는 건지 도통 이해하기 어렵다. 소변을 빨리 봐야 한다는 간호사의 조언에, 빨대로 물을 홀짝이던 남편을 데리고 화장실로 향했다. 배에 물이 차 허리를 굽히는 게 불편한 남편은 병실 안의 좌변기를 쓰지 못했다. 남편을 부축해 복도 화장실 소변기에 다다랐다. 화장실만 혼자 다닐 수 있게 돼도 내가 일을 나갈 수 있을 텐데 …. ---------------------------------
2003년 12월: 간암 진단에 집 팔기로
--------------------------------- 2003년 12월, 그러고 보니 딱 5년 전이다. 택배일을 하던 남편이 간암 진단을 받았다. 일찌감치 고향인 전남 함평에서 상경해 지금껏 나쁜 짓 안 하고 일만 했던 남편이었다. 그런 이에게 이토록 가혹한 벌을 주는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진단 일주일 만에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남편이 따로 들어놓은 보험이 있어 2천만원을 받았다. 큰 도움이 되긴 했지만, 단 한 번 주는 보험료는 그때뿐이고 계속 들어가는 치료비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집을 팔기로 했다. 다른 수가 없었다. 남편과 내가 평생 모은 유일한 재산을 내놓을 때의 기분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부동산 중개소에 다녀온 날 저녁 남몰래 펑펑 울었다. 급매로 내놓은 경기도 하남의 단독주택은 1억9천만원에 팔렸다. 집에 묶인 대출금과 우리 집에 세들어 살았던 사람들의 전세보증금을 빼주고, 나머지 치료비마저 계산하고 나니 손에 남은 돈은 8천만원이 전부였다. 이 돈으로 4천만원짜리 전세를 얻어 이사를 갔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딸아이의 충격은 오죽했을까. -----------------------------------------
간병과 생활전선: 수입 끊기고 생활비는 두 배
----------------------------------------- 남편이 아프기 전에는 택배일을 하면서 한 달에 200만원 정도를 벌어왔다. 내가 일을 안 해도 우리 세 식구가 먹고사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다 남편의 수입이 끊기면서 내가 일을 나가야 했다. 젊어서 봉제공장에 다녔던 기술이 있어, 조그만 공장에서 재단일을 맡았다. 하지만 130만~140만원 정도의 월급으로 딸아이 학교 보내고 남편을 간병하기엔 어림도 없었다. 게다가 1년에 두세 차례씩 입원해 치료받는 남편을 간병하자면 출근을 못 하는 날이 잦았고, 한 번 입원할 때마다 나오는 80만~100만원의 병원비마저 겹치면 고통은 두배가 됐다. 퇴원을 하더라도 들어가는 돈이 줄지는 않았다. 안 해본 사람들은 절대 이해 못할 테지만, 환자가 있으면 60만원 쓸 생활비가 120만원이 되는 법이다. 약값은 물론이고 입맛 없는 남편에게 우리가 먹는 걸 먹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여름에도 비 오는 날이면 추위를 타는 남편을 위해 난방을 했다. 올해엔 딸아이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지난 학기 등록금만 430만원을 냈다.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자기 용돈 쓰고 나면 등록금에 보태봐야 큰돈은 안 된다. 다음 학기 등록금을 내야 할 때가 오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한가한 걱정을 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
2009년 1월: 의료파산 직전에 선 가족
--------------------------------- 남편이 이번에 퇴원하면,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하나. 우리 집엔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 집 팔아 전세 얻고 남은 돈 4천만원으로 지난 5년을 용케 버텨왔지만, 이제 통장엔 100만원도 남지 않았다. 이리저리 친척들이 조금씩 도와주던 것도 끊긴 지 오래다. 지난해부터 의료비 차상위 경감 대상으로 지정됐다. 병원비가 100만원 나올 게 75만~80만원 정도로 줄었지만, 나라의 혜택에 고맙다고 좋아할 형편도 못 된다. 바깥세상이 불황이라 내가 다니는 공장의 일감이 줄어들고 있다. 공장에 못 나간 게 벌써 보름이 되어간다. 경기가 좋을 때야 남편 간병하는 내 사정을 봐줬지만, 공장에서 앞으로도 계속 이런 나를 써줄지 몰라 불안하다. 형편이 더 나빠지면 결국엔 남은 전세금마저 빼서 월세로 돌리는 수밖에 없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불쌍한 우리 남편의 치료는 중단할 수 없다. 지난 5년이, 그전에 살았던 50년 세월보다 훨씬 길게 느껴진다. 남편이 아프지만 않았다면, 아프지만 않았다면 …. 글·사진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한겨레 주요기사]
▶ ‘최태원 사단’ 전진배치 SKT, KT와 ‘맞장’
▶ 나만의 IPTV 채널목록 만들고 할인혜택 챙겨라
▶ 철거 세입자 주거이전비 ‘떼먹은’ 서울시
▶ 청와대 “국회의장 정치 쇼” 불만 폭발
▶ 두근두근 삼각관계 드디어 시작인 거야!
간병·생활비 겹시름…MRI는 보험적용 안돼
통장 잔고 100만원 · 지인들 도움도 이젠 끝 ---------------------------------
2008년 12월: 입원 12일째, 병원비 16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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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현자씨가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간암으로 투병 중인 남편 이상훈(60)씨를 돌보고 있다. 5년 전 간암에 걸린 남편이 해마다 두세 차례 입·퇴원을 반복하는 동안 한씨의 가계는 파산 직전의 위기에 몰려 있다.
23일. 입원한 지 열이틀째다. 남편은 두 시간 정도 걸리는 간동맥화학색전술을 받았다. 수술을 또 할 수 없기에 입원할 때마다 받는 치료다. 보통 한 번 입원하면 닷새에서 일주일 정도 치료를 받고 퇴원한다. 걱정스러운 건 올 들어서는 입원 횟수가 잦고, 입원 기간도 더 길어지고 있는 점이다. 이미 열흘이 훌쩍 넘었지만 이번엔 언제 퇴원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가장 애가 타는 건 늘 그렇듯 병원비다. 어제 병원에서 계산서를 중간정산해 병실로 가져왔다. 총액은 464만3천원이다. 이 중 남편과 내가 부담해야 할 몫은 162만원이다. 그나마 치료비의 35%만 내는 걸 감사해야 하나. 내용을 뜯어보니, 환자 부담 몫 가운데 가장 큰 게 입원비(73만5천원)와 자기공명영상촬영(MRI) 비용(66만1천원)이다. 자기공명영상촬영 검사비는 보험이 안 되냐고 물었더니, 병원에선 “질환과 직접 관련이 없어서 해당이 안 된다”고 답했다. 의사가 찍으라고 한 건데 왜 질환과 관련이 없다고 하는 건지 도통 이해하기 어렵다. 소변을 빨리 봐야 한다는 간호사의 조언에, 빨대로 물을 홀짝이던 남편을 데리고 화장실로 향했다. 배에 물이 차 허리를 굽히는 게 불편한 남편은 병실 안의 좌변기를 쓰지 못했다. 남편을 부축해 복도 화장실 소변기에 다다랐다. 화장실만 혼자 다닐 수 있게 돼도 내가 일을 나갈 수 있을 텐데 …. ---------------------------------
2003년 12월: 간암 진단에 집 팔기로
--------------------------------- 2003년 12월, 그러고 보니 딱 5년 전이다. 택배일을 하던 남편이 간암 진단을 받았다. 일찌감치 고향인 전남 함평에서 상경해 지금껏 나쁜 짓 안 하고 일만 했던 남편이었다. 그런 이에게 이토록 가혹한 벌을 주는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진단 일주일 만에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남편이 따로 들어놓은 보험이 있어 2천만원을 받았다. 큰 도움이 되긴 했지만, 단 한 번 주는 보험료는 그때뿐이고 계속 들어가는 치료비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집을 팔기로 했다. 다른 수가 없었다. 남편과 내가 평생 모은 유일한 재산을 내놓을 때의 기분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부동산 중개소에 다녀온 날 저녁 남몰래 펑펑 울었다. 급매로 내놓은 경기도 하남의 단독주택은 1억9천만원에 팔렸다. 집에 묶인 대출금과 우리 집에 세들어 살았던 사람들의 전세보증금을 빼주고, 나머지 치료비마저 계산하고 나니 손에 남은 돈은 8천만원이 전부였다. 이 돈으로 4천만원짜리 전세를 얻어 이사를 갔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딸아이의 충격은 오죽했을까. -----------------------------------------
간병과 생활전선: 수입 끊기고 생활비는 두 배
----------------------------------------- 남편이 아프기 전에는 택배일을 하면서 한 달에 200만원 정도를 벌어왔다. 내가 일을 안 해도 우리 세 식구가 먹고사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다 남편의 수입이 끊기면서 내가 일을 나가야 했다. 젊어서 봉제공장에 다녔던 기술이 있어, 조그만 공장에서 재단일을 맡았다. 하지만 130만~140만원 정도의 월급으로 딸아이 학교 보내고 남편을 간병하기엔 어림도 없었다. 게다가 1년에 두세 차례씩 입원해 치료받는 남편을 간병하자면 출근을 못 하는 날이 잦았고, 한 번 입원할 때마다 나오는 80만~100만원의 병원비마저 겹치면 고통은 두배가 됐다. 퇴원을 하더라도 들어가는 돈이 줄지는 않았다. 안 해본 사람들은 절대 이해 못할 테지만, 환자가 있으면 60만원 쓸 생활비가 120만원이 되는 법이다. 약값은 물론이고 입맛 없는 남편에게 우리가 먹는 걸 먹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여름에도 비 오는 날이면 추위를 타는 남편을 위해 난방을 했다. 올해엔 딸아이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지난 학기 등록금만 430만원을 냈다.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자기 용돈 쓰고 나면 등록금에 보태봐야 큰돈은 안 된다. 다음 학기 등록금을 내야 할 때가 오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한가한 걱정을 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
2009년 1월: 의료파산 직전에 선 가족
--------------------------------- 남편이 이번에 퇴원하면,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하나. 우리 집엔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 집 팔아 전세 얻고 남은 돈 4천만원으로 지난 5년을 용케 버텨왔지만, 이제 통장엔 100만원도 남지 않았다. 이리저리 친척들이 조금씩 도와주던 것도 끊긴 지 오래다. 지난해부터 의료비 차상위 경감 대상으로 지정됐다. 병원비가 100만원 나올 게 75만~80만원 정도로 줄었지만, 나라의 혜택에 고맙다고 좋아할 형편도 못 된다. 바깥세상이 불황이라 내가 다니는 공장의 일감이 줄어들고 있다. 공장에 못 나간 게 벌써 보름이 되어간다. 경기가 좋을 때야 남편 간병하는 내 사정을 봐줬지만, 공장에서 앞으로도 계속 이런 나를 써줄지 몰라 불안하다. 형편이 더 나빠지면 결국엔 남은 전세금마저 빼서 월세로 돌리는 수밖에 없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불쌍한 우리 남편의 치료는 중단할 수 없다. 지난 5년이, 그전에 살았던 50년 세월보다 훨씬 길게 느껴진다. 남편이 아프지만 않았다면, 아프지만 않았다면 …. 글·사진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한겨레 주요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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