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맥혈 검사가 나왔다. ‘산도 6.8, 젖산 수치 18’ 숨이 턱 막혔다.
“이거 혹시 잘못된 거 아니죠?”
호흡치료사는 검사지를 건네며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보통 살아 있는 사람의 산도는 7.4인데, 아기의 산도는 6.8, 죽었거나 죽어가는 이의 산도였다. 정상적인 혈중 젖산 농도는 보통 1 이하다. 처음 보는 제일 높은 젖산 농도였다. 무슨 연유인지 아기의 상태는 곧 죽을 듯 좋지 않았다. 삶의 징후라고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아기가 내 앞에 놓여 있었다.
■ 청진기에서 흥미로운 심장 소리가 들렸다
“지금 곧바로 신생아중환자실로 데리고 갈게요.”
나처럼 이 병원에서 수련을 마친 응급의학과 교수에게 내 의견을 전했다. 순간 그의 얼굴이 환해지며 안도감이 돌았다. 나도 한때 지었던 표정을 그의 얼굴에서 보았다. 응급실에서 이런 상태의 환자는 거의 백프로 죽는다. 내 부족함으로 환자가 죽을까 걱정했던 마음이 누군가의 손길이 닿았을 때의 안도감이란….
태어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아기는 지난밤부터 잘 먹지 않고 잠만 내리 잤다. 무언가 잘못됐음을 본능으로 알아챈 부모는 아기를 응급실로 데리고 왔다. 얼마 되지 않아 산소포화도가 뚝뚝 떨어지고 혈압이 잡히지 않았다. 상황의 심각함을 인지한 간호사는 응급의학과 의사를 호출했다. 그는 최선을 다했지만 아기는 점점 심각한 상태로 빠져들었다. 어차피 필요한 입원을 조금 앞당겨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신생아중환자실로 뛰다시피 걸었다. 일분일초가 아까운 상황이라 최대한 빨리 직접 라인을
잡았다. 보통 펠로(전임의)에게 시술을 맡기지만 아기 상태가 끔찍했다. 워낙 위중한 상황이라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한 모든 테스트와 치료를 쏟아부었다. 몸에 필요한 혈류나 산소 공급이 잘 되지 않는데, 청진기에서는 흥미로운 심장 소리가 들렸다.
선천성 심장병을 의심해 심초음파 검사를 했다. 초음파 기사는 심각할 정도의 심장병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폐혈관의 압력이 조금 높을 뿐 다른 큰 이상은 보이지 않는다는 그의 말에, 나는 다시 바빠졌다. 고심에 고심을 더해 할 수 있는 모든 치료약과 테스트를 지시했다. 내 지극정성에도 아기는 아직도 생사의 경계를 떠날 줄 몰랐다.
■ 한 번도 본 적 없는 진단명, 대동맥폐동맥창
달리는 차 앞에 갑자기 나타난 수사슴처럼 죽음의 신은 나약한 아기를 어둠의 바리케이드로 친 것 같았다. 왜 죽어가는 아기는 살려고 하지 않을까, 내 절박함을 알아주지 않을까. 마땅히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신이 데려가려는 건 아닐까. 나는 그 뜻을 거스르는 죄인이 되는 것 같았다. 어차피 이 아기는 데려가지 않을 거라, ‘나’라는 사람은 단지 아기를 살리는 도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신만이 아는 일을 미천한 인간이 어찌 알겠는가. 다만 지금 내 눈앞에 선 어둠을 없애서 아기를 살려야겠다는 생각만이 나를 지배했다.
깜깜한 밤이 조금 밝아질 때쯤 병원 밖의 태양도 잊지 않고 떠올랐다. 생명의 원천, 태양의 빛과 내 간절한 정성이 합쳐져 아기 상태가 나아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산도가 7.2까지 올랐다. 동맥 젖산 농도도 12까지 떨어졌다. 한시름 놓았다.
다급함이 조금이나마 원만해진 상황을 만나자 온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겨우 인수인계를 마치고 동료 의사의 격려와 칭찬을 들으며 병원 문을 나섰다. 얼마 되지 않아 지난밤에 확인한 심장초음파를 다시 살펴본 심장내과 의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상당히 드문 심장질환이 의심된다며 다시 한번 심장초음파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대동맥폐동맥창(Aortopulmonary Window)이라는 진단명이 내려졌다. 심장이 힘차게 뿜는 피는 대동맥을 통해 온몸으로 나아가고 다시 돌아온 피는 폐동맥을 통해 신선한 산소를 공급해줄 폐로 향한다. 그 사이에 없어야 할 창문이 존재해 아기 몸을 쇼크 상태로 이끈 것이다. 그 흔치 않은 병명은 몇몇 심장내과의의 눈을 거쳐 드디어 물 위로 나왔다. 그 뒤의 치료는 순조로웠다. 이미 갖가지 치료로 나아진 아기는 간단한 수술로 희귀한 심장 결함을 고칠 수 있었다.
■ 죽음의 신이 아기를 놓아준 것 같았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미국 의학드라마 <하우스>(House M.D.)에 영감을 준 의사이자 <뉴욕타임스> 기고가 리사 샌더스는 오늘날에도 진단명 하나야말로 ‘좋은’ 의사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말했다. 비록 좋은 의사가 아니라 진단명을 찾지는 못했지만 ‘보통’ 의사의 책무를 다했다. 생명을 구하는 것, 그것이 가끔은 보통 의사가 할 수 있는 전부이기에.
아기는 수술받고 몇 주 뒤 건강한 모습으로 병원 문을 나섰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도 뇌 자기공명영상(MRI)도 신체검사 결과도 완벽히 정상이었다. 다른 장기도 모두 말끔히 회복했다. 무수한 의료기기와 함께 퇴원하거나 아예 집에 갈 수 없으리라 예상했던 환자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가슴에 일자로 남은 심장 수술 흉터 말고는 무결한 상태로 퇴원했다.
한순간도 아기를 떠나지 않고 보살핀 수많은 의료진의 정성과 아기를 살리려는 짙은 집념에 죽음의 신이 아기를 놓아준 것만 같았다. 샴페인 터지는 소리처럼 싱그러우면서도 고동이 파동 치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로비를 가득 채웠다. 아기 주변에 쏟아지는 웃음으로 폭죽이 터지는 것 같은 축제의 모습이었다.
스텔라 황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병원 소아과 신생아분과 교수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손바닥만 한 초미숙아부터 만삭아까지 돌보는 스텔라 황 교수가 어린 생명의 삶과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3주마다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