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15일 오전 서울 중구 한 회의실에서 열린 ‘의료법 체계 연구회’ 제1차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보건복지부 제공
정부가 간호사의 법적인 업무 허용 범위와 지역사회에서의 돌봄 영역을 어느 선으로 정할지 등을 포함하는 의료법 개정 관련 논의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간호법 제정안 재추진 움직임을 보이자, 이를 대신할 정부 차원의 대안을 내놓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보건복지부는 15일 초고령사회에 맞는 새로운 의료법 체계 마련을 위한 전문가 논의 기구로 ‘의료법 체계 연구회’를 구성, 이날 1차 회의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연구회가 현행 의료법 체계 문제점을 분석하고 국외 사례 등을 기반으로 △의료기관 밖 의료서비스 제공 근거 체계화 △의료행위와 직역별 업무 범위 규정 체계 개선 △의료법과 다른 법률과 관계 재설정 방향 등을 논의한다고 설명했다. 이날부터 격주로 적어도 연말까지 회의·의견수렴·공청회 등을 거쳐, 정부에 의료법 체계 개편 방향을 권고할 예정이다. 위원장인 이윤성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를 포함해 의료, 간호·요양, 법률 관련 교수 9명이 참여한다. 앞서 고용노동부가 ‘주 69시간(6일 기준) 노동시간 논란’이 일었던 노동 시간 개편 방안을 만들면서 전문가들로 꾸린 ‘미래노동시장연구회’와 비슷한 성격이다.
현행 의료법은 1951년 제정된 국민의료법에 기반을 둔 법으로, 1962년 이름이 의료법으로 바뀐 뒤 101차례 부분 개정만 이뤄졌다. 이에 고령화로 늘어난 돌봄 수요와 의료인 역할 변화 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의료계 안팎에서 제기돼왔다. 지난 5월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폐기된 간호법 제정안도 애초 현행 의료법만으로 간호와 돌봄에 대한 변화된 상황과 수요에 대처하는 데 제약이 많다는 문제의식에서 새로운 법 제정이 추진됐다.
현행 체계 아래에서 간호사들은 지침상 혈압이나 혈당 측정도 불법 행위가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의료법에서 몇몇 예외를 빼고 ‘의료기관 내에서 의료업을 하여야 한다’(제33조)고 규정하는 데다, 간호사 업무 범위를 ‘의사·치과의사·한의사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제2조)로 제한하고 있어서다. 가래나 욕창 관리처럼 요양보호사 등이 일상적으로 하는 행위까지 의료행위로 간주하는 까닭에 법원 판례와 해석에 따라 불법 여부가 가려지기 일쑤다.
복지부의 이같은 움직임이 민주당의 간호법 제정안 재추진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한겨레에 “5월 간호법 거부권 행사 이후 논의가 늦어진 데다, 당사자가 아닌 전문가 중심 연구회가 얼마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며 “간호법 제정이란 입법 논의를 희석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7월 정책의원총회에서 재추진 의사를 밝힌 데 이어, 현재 보건의료 직역 단체들과 만나 재추진에 대한 의견을 듣고 있다. 지난 간호법 제정 과정에서 간호사와 의사·간호조무사·임상병리사 등 다른 직역 사이 갈등이 컸던 만큼, 법 수용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춰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복지부는 간호법과 같은 별도 법 제정에 반대 뜻을 분명히 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이날 회의에 참석해 “초고령사회에 맞는 선진화된 의료·요양·돌봄 시스템 구축을 위해서는 특정 직역의 역할 확대만을 강조하는 단편적인 법 제정이 최적의 대안일 수 없다”며 “의료법을 포함해 의료·돌봄 전반을 다루는 법체계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와 혁신이 우선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임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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