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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곳곳에 깔린 수입 야자 매트, 산도 사람도 숨을 못 쉰다”

등록 2023-08-31 07:00수정 2023-10-18 15:19

[짬]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 박동창 회장

박동창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 회장이 인터뷰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김창금 선임기자
박동창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 회장이 인터뷰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김창금 선임기자

“건강한 삶과 존엄한 죽음을 향한 기도입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내민 저서 첫 쪽의 친필 글귀가 눈에 띈다. 삶과 죽음이라는 글자는 10㎝ 거리 안에 있고, 곱씹으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100살 시대’라고 하지만 건강 수명은 훨씬 짧고, 그래서 ‘잘 죽기’를 바라는 현대인의 심정을 담고 있는 듯하다. 종교적 신앙이 없음에도 기도로 마음을 담아 전하는 정성은 어디서 온 것일까. 맨발과 맨땅이 만나는 미묘한 순간의 감각에서 길러진 통찰일까.

박동창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 회장은 ‘맨발 걷기’를 확산시킨 ‘맨발 대부’다. 그가 처음 맨발로 걷기 시작하고, 첫 책인 ‘맨발로 걷는 즐거움’을 낸 게 2006년이다. 이후 17년이 지났고 맨발 걷기는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맨발로 동네 뒷산을 오르거나 공터를 누비는 ‘맨발 족’을 쉽게 볼 수 있다.

경제학 박사로 국외에서 금융기관 최고경영자(CEO)까지 지낸 그가 맨발 걷기의 홍보대사가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는 “외국에 있던 2001년께 업무 스트레스로 몸 상태가 급격히 악화했다. 우연히 한국 티브이 방송에서 암 환자의 맨발 걷기 치유담을 본 게 전환점이었다”고 소개했다. 이후 동네 숲길을 맨발로 걸으면서 효과를 확신한 그는 귀국 뒤 맨발 효능을 최전선에서 알리고 있다.

맨발 걷기 초기 단계에 확산·전파를 통한 대중화에 역점을 뒀다면, 지금은 한 차원 높아져 기본권 법제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 신발이나 아스팔트, 우레탄, 콘크리트 등에 의해 하루 24시간 땅과의 접촉이 원천차단된 상황을 해소하고, 땅과 접촉을 원하는 국민에게 ‘접지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대표적이다.

2006년 ‘맨발로 걷는 즐거움’ 내고
‘맨발 걷기’ 확산시킨 ‘맨발 대부’
초기 대중화서 지금은 법제화 애써
“온 산 야자 매트로 ‘맨발 걷기’ 불편

“맨발로 걸으면 세상 달라져 보여
지나쳤던 나무와 숲길, 하늘과 교감”

땅의 지압자극, 혈류 개선, 체내 에너지원 활성화 등 맨발 걷기의 효능은 다양하다는 게 박 회장 생각이지만 실증과학 측면에서 일부 증명의 문제가 있다. 하지만 신발을 벗고 맨발로 땅을 내디뎌 신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느끼는 것은 해본 사람만이 얻는 실존적 체험이다. 그것을 ‘수치화된 데이터’가 아니라고 무시할 수는 없다.

전주, 화성, 용인, 남원, 장수, 서울, 인천, 충주 등 시·군·구 지자체가 앞다퉈 맨발 걷기 환경조성을 위한 조례를 만든 것은 시민들의 건강권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곳곳에 황톳길이 생기고, 아파트나 강 주변에 맨발 산책로를 조성하기 위한 지자체들의 자문 요청도 많이 들어온다. 국회를 통해 접지권 입법화를 위한 노력도 이뤄지고 있다.

물론 맨발 걷기의 장애물도 여전히 있다. 최근 몇 년 새 공원 산책길에서부터 사적지 등 온갖 곳에 깔려 있는 야자 매트는 가장 큰 ‘적’이다. 박 회장은 “수입 야자 매트로 인해 땅을 밟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맨발로 걷는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끼고, 산도 숨을 못 쉬어 답답해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울퉁불퉁한 야자 매트는 겨울철이면 습한 표면이 딱딱하게 얼어붙어 신발을 신은 등산객에게도 위험하다.

맨발 걷기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필요하다. 박 회장은 “서울 도심 한복판의 왕릉에서 맨발로 걷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먼지 묻은 구두를 신어야 예의가 있고, 맨발은 무례하다는 것은 편견이다.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10분 정도라도 맨발로 왕릉을 걷는다면 기분전환도 되고, 왕릉의 공원 기능도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동창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 회장이 책을 선물하면서 써준 글.
박동창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 회장이 책을 선물하면서 써준 글.

맨발 걷기는 신발이 등장하기 전까지 아주 오랜 기간 인류의 생활 방식이었다. 맨발 걷기의 유행은 문명이 스스로 위기를 감지하고, 다시 ‘오래된 미래’로 향하고 있다는 징표일지도 모른다.

박 회장은 “처음 맨발로 걸으면 아프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 발이 적응한다. 원래 우리 조상들은 그렇게 살았다. 신발 벗어 던지고 산으로 가면 세상이 달라져 보인다. 지나쳤던 나무와 숲길, 하늘과 교감하는 일종의 사건이 벌어진다. 한번 해보길 권한다”라고 했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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