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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씨는 30대 여성으로 대기업 마케팅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확인하고 5초 안에 바로 답을 합니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하루에 다섯잔 이상 마십니다. 출퇴근 때에는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듣습니다.
퇴근 뒤에는 에스엔에스(SNS)에 그날 찍은 사진을 올리고 사람들의 댓글을 확인하고 답장을 달거나 ‘좋아요’를 누릅니다. 물건을 살 때도 홈쇼핑이나 온라인 쇼핑을 이용합니다. 저녁 식사도 배달 플랫폼을 이용해 주문합니다. 식사 뒤에는 투자해놓은 코인과 외국 주식의 시세를 앱으로 확인합니다. 그러고 나면 오티티 채널을 통해 영화를 봅니다. 영미씨는 주로 공포물을 좋아합니다.
자기 전에는 유튜브를 통해 알고리즘으로 검색된 동영상을 보면서 잠을 청합니다. 영미씨의 일상은 온종일 스마트 기기와 연결돼 있습니다. 영미씨의 뇌는 자는 시간 이외에는 온종일 스마트 기기에서 나오는 끊임없는 정보를 받아들이느라 쉴 틈이 없습니다.
스마트 기기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영미씨에게 자신이 사용하는 기기들이 두려움의 대상으로 바뀌는 일이 생기게 됐습니다. 영미씨는 직장에서 부서 팀장인 민철씨와 친하게 지냈습니다. 민철씨는 누가 보기에도 훈남이고 잘생긴 외모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민철씨는 유부남으로 같은 직장 다른 부서의 동기와 사내 결혼을 한 상태입니다. 영미씨는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민철씨가 좋았고 가끔 함께 맥주를 마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내 익명 게시판에 영미씨와 민철씨가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글이 올라오고 단둘이 맥주를 마시는 사진도 유포됐습니다. 영미씨는 직장 동료 여직원들에게 자신과 민철씨에 대한 소문이 돈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놀랐습니다. 해명을 할 방법도 없고 속이 많이 상했습니다.
심지어 영미씨에게 욕설 문자가 오기도 했고 자신의 에스엔에스 게시물에 댓글로 험한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영미씨는 스마트 기기에서 알람이 울릴 때마다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사내 게시판과 에스엔에스를 계속 들여다보며 자신과 관련된 글이나 악플이 있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했습니다. 너무 큰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영미씨는 결국 익명 게시판에 자신과 민철씨에 대한 글을 올린 사람을 찾아내 그에게 울며 항의를 했습니다. 그는 영미씨에게 미안하다며 글은 이미 내렸다고 했지만 영미씨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은 퍼질 대로 퍼진 상태였습니다. 글을 올린 이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할 생각도 했지만 그러면 더 뒷말이 나올 것 같아 그만뒀습니다.
영미씨는 자신이 그동안 편리하게 사용해오던 온갖 스마트 기기가 자신을 비난하고 조여오는 것 같은 압박감이 들었습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 울다가 출근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자려고 하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스마트 기기에 혹시 이상한 글이 올라오지 않았는지 자꾸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자다가 깨면 다시 폰을 확인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직장을 다닐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고 쉽게 눈물이 나서 결국 인근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서 검사를 해본 결과 영미씨는 우울증과 함께 교감신경계 항진으로 인한 심각한 과각성 상태였습니다. 영미씨는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고 집중이 되지 않았습니다. 회사와 민철씨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도 억울해서 죽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하고 있었습니다. 회사 생각만 해도 숨이 턱 막히고 불안이 증가했습니다. 더 이상 업무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민철씨와 유사한 남자의 사진만 봐도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매일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 수 있었고 스트레스로 인해 새벽 폭식이 생겨서 체중이 10㎏ 이상 늘었습니다. 거울을 보면 체중이 늘어난 모습에 화가 나고 다시 그 소문이 생각났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영미씨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나기 전부터 그가 지나치게 스마트 기기에 몰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있을 때도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메신저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에스엔에스에 자신의 일상생활을 과장되게 올리며 하루 종일 댓글을 확인하는 일에 열중했습니다. 마음과 몸이 편하게 이완되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카페인을 과다 섭취하고 오티티로 공포물을 자주 접하면서 긴장도는 더욱 커졌습니다. 미국 메이오클리닉에 의하면 하루에 네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면 부작용으로 두통, 불면증, 신경질, 짜증, 잦은 배뇨 또는 배뇨 조절 불능, 빠른 심장 박동, 근육 떨림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영미씨는 교감신경계의 작용이 과다 항진되어 있었습니다. 교감신경계는 부교감신경계와 함께 자율신경계의 한 축을 이루는 신경계통으로, 주로 긴장이나 공포·흥분 등의 감정을 느꼈을 때 신체를 활성화하는 쪽으로 작용합니다. 교감신경이 항진된 상태에서 놀라거나 두려움을 느끼면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어 우울이나 불면, 공황이 유발될 수 있습니다.
치료 뒤 영미씨는 우울증과 과각성 상태가 호전되며 이전보다 편안하게 동료들을 대할 수 있었습니다. 당분간 에스엔에스 계정도 폐쇄하고 사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긴장과 불안이 높을 때는 카페인 섭취를 줄이고 코인과 외국 주식에 투자하는 것도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메시지도 꼭 필요한 것만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 기기나 에스엔에스도 어느 순간 자신을 공격하는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영미씨처럼 온라인상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하려고 하면 더 일이 꼬이게 됩니다. 초기부터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을 썼습니다. 자세한 것은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이 글로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