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제4차 응급의료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대형병원 응급실이 위중한 환자를 우선해 받도록 정부가 응급의료체계를 고친다. 119 구급대와 의료기관의 환자 중증도 분류 기준도 통일하기로 했다. 중증질환을 치료할 권역응급의료센터가 경증 환자로 꽉 차거나, 급한 환자를 살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보건복지부는 21일 이런 내용을 담은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2023∼2027년)’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정부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응급의료법)에 따라 효과적인 응급의료 전달을 위해 5년마다 수립한다. 복지부는 우선 현재 ‘권역응급의료센터-지역응급의료센터-지역응급의료기관’으로 나뉜 응급의료체계를 2026년까지 개편하기로 했다. 현재는 응급실의 시설·인력 구성 위주로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지정하는데, 앞으로는 중증환자가 응급실에 오면 입원·수술 등을 통해 최종 치료할 수 있는 역량까지 평가해 의료체계를 재편할 계획이다. 세 종류로 구분된 응급의료기관 명칭도 각각 ‘중증응급의료센터-응급의료센터-지역응급실’ 등 알기 쉽게 바꿔 환자들이 스스로 판단한 증세에 따라 적절한 응급실을 선택하게끔 유도한다.
이는 중환자를 주로 치료해야 할 대형병원 응급실에 경증 환자가 몰리는 현상을 줄이기 위해서다. 현행 응급의료법은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중증응급환자 중심의 진료’를 하고, 지역응급의료센터와 지역응급의료기관은 일반 응급환자를 치료하도록 한다. 그러나 전국 40개 권역응급의료센터의 중증 응급환자 진료 비중은 지난해 기준 10.3%에 그쳤다. 큰 병원 응급실 병상이 경증 환자 위주로 차 위독한 환자가 제때 응급실을 찾지 못하는 현상도 여전하다는 게 복지부 설명이다.
환자 이송 단계에서는 119 구급대의 응급환자 중증도 평가 기준을 의료기관과 통일할 방침이다. 환자를 응급·비응급·잠재응급 등으로 분류하는 구급대 이송 기준과 소생·긴급·응급 등으로 구분한 병원 기준이 달라, 환자들이 중증도와 무관하게 병상 남는 응급실로 이송된다는 지적에 따른 조처다. 김은영 복지부 응급의료과장은 20일 브리핑에서 “지역별 의료자원 분포에 따라 ‘지역 맞춤형 이송 지침’을 수립해, 중증도에 따라 환자를 어느 병원으로 이송해야 할지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또 중증환자가 제때 수술 등을 받을 수 있도록 모든 응급의료기관에는 전문의 24시간 상주가 의무화된다. 현행 기준은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에만 전문의 상주를 의무화하고, 지역응급의료센터에는 전문의 또는 3년 차 이상 레지던트가 24시간 근무하도록 하고 있다. 응급의료 취약지에는 인력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지역 내 병원들이 요일마다 특정 진료과의 전문의를 돌아가며 배치하는 ‘순환당직제’를 도입한다. 지방자치단체가 조율해 순환 당직 일정을 짜고, 복지부가 중증 응급환자의 지역 내 치료율 등을 평가해 응급의료센터 재지정 등에 반영하는 식이다. 이를 통해 정부는 중증 응급환자의 적정시간 내 최종 치료기관 도착 비율을 지난해 49.6%에서 올해 60.0%로 높이고, 병원 내 사망률은 같은 기간 6.2%에서 5.6%로 낮출 계획이다.
다만 이번 계획에는 일반 환자들의 ‘대형병원 응급실 쏠림’을 막을 해법은 빠졌다. 복지부는 응급증상별 의심 질환과 응급실별 혼잡도를 안내하는 온라인 알고리즘 등을 개발해, 환자가 자발적으로 적절한 의료기관을 선택하게 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외래와 응급실 모두 중증도와 상관없이 대형병원을 찾는 환자가 많은 상황에서 의료전달체계 전반의 개편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재활의학과 전문의)은 “경증 환자가 대형병원 응급실로 몰리지 않으려면 지역 (병·의원급) 1차 의료 시스템이 제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 의료취약지에는 의료기관 수 자체가 부족하다”며 “적어도 만성질환을 관리하는 1차 의료 기관을 육성·지원할 대책이 포함됐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천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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