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의료·건강

건강보험 기금화 논쟁 “투명성 확보 필요” vs “보장성 후퇴 우려”

등록 2022-11-21 05:00수정 2022-11-21 09:18

[이창곤의 정책 오디세이]
서울 영등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 영등포남부지사 모습. 연합뉴스
서울 영등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 영등포남부지사 모습. 연합뉴스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기획재정부가 총괄하는 국가재정에 포함해 국회 심의·의결을 거치게 하자는 기금화, 어떻게 볼 것인가?

최근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이 건강보험 재정을 국가 기금으로 운용하는 것을 뼈대로 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건보재정 기금화’ 찬반 논쟁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건보재정 기금화 논란은 해묵은 의제다. 조합별로 쪼개져 운용되던 건강보험 재정이 2003년 하나로 통합된 이래, 20여년 동안 찬반 양론으로 나뉘어 떠올랐다 가라앉길 거듭했다.

찬반 진영을 거칠게 구분하면 주로 국회 예산정책처·감사원·기획재정부, 현재 여당인 국민의힘 계열 의원들이 기금화 찬성론을 펼쳤다. 기금화 반대 또는 신중론인 쪽은 이해당사자인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보건복지부, 그리고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계열 의원들이었다. 실제 논쟁 구도는 이보다 더 복잡하다. 건보재정을 보는 시각에 따라 진보 쪽 인사나 야당 의원 가운데서도 기금화에 손을 들어주는 이가 있는가 하면, 기금화에 신중해야 한다는 보수 쪽 인사나 여당 의원도 있다. 기금화 논쟁이 오랫동안 결론 없이 반복된 이유다.

건보재정 기금화, 무엇이 달라지나?

현재 건강보험 재정은 건보공단 일반 회계로 운영되고 있으며, 복지부가 관련 예산을 승인한다. 이런 방식은 국민연금·산재보험·고용보험 등 다른 사회보험의 재정 운용과 확연히 다르다. 이들 사회보험은 모두 기금이란 이름으로 재정을 운용한다. 하지만 건강보험만은 수백개로 나뉜 조합에서 제각기 재정을 운용한 역사적 유산으로 인해 지금껏 기금이 아닌 ‘적립금’으로 운용하고 있다.

서정숙 의원이 지난 7일 발의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 뼈대는 건강보험 사업에 필요한 책임준비금으로서 적립금을 ‘국민건강보험기금’으로 변경·설치해 이를 정부가 관리∙운영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는 건강보험 재정을 다른 사회보험 재정과 마찬가지로 국가재정(일반·특별회계·기금) 틀에 들이는 것을 뜻한다. 국가재정법을 보면, 재정 당국인 기획재정부가 기금을 비롯한 국가재정 총괄 권한을 지니며, 모든 기금의 운용계획은 국회 심의∙의결을 거쳐 확정되고 국회에 결산 보고를 하게 돼 있다. 따라서 서 의원안은 건강보험 재정 운용도 기재부와 국회 통제를 받게 하겠다는 것이다. 건보재정 기금화 찬반 논쟁이 벌어지는 건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이번 서정숙 의원안을 놓고 형식은 의원입법이지만, 실상 기재부의 입법 요구를 대행한 ‘청부입법’으로 보는 견해가 정치권에서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찬성론자 “투명성 위해 재정당국과 국회 통제 받아야”

건보재정 기금화 주장엔 긴 역사가 있다. 2004년 5월 감사원이 적자 관리를 위해 기금화가 필요하다며 첫 방아쇠를 당겼다. 같은 해 8월 국회 예산정책처가 국회 통제권 확보 차원에서 기금화를 주장했다. 두 기관은 최근까지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다. 국회 예정처는 ‘2021년 예산안 총괄분석’에서 “정부는 관계기관 간 협의를 통해 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을 국가 기금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조속히 논의할 것”을 권고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감사원도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감사를 벌인 뒤 같은 권고를 되풀이했다.

2005년 한나라당 박재완 의원을 필두로 보수정당 계열 의원들의 기금화 법안 발의가 이어졌다. 2008년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 2012년 새누리당 김현숙 의원에 이어, 2017년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과 2020년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이 “문재인 케어에 제동을 걸겠다”며 기금화 추진을 위한 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 2019년에는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2022년까지 건보재정 기금화를 제안하기도 했다. 기금화 논쟁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일례다. 조규홍 현 복지부 장관이 당시 재정관리관으로 기재부를 대표해 이 위원회에 참가했다.

기금화 추진 논리는 간명하다. 서정숙 의원안의 ‘제안 이유’에 명시돼 있듯 “건강보험은 4대 사회보험 중 재정 규모가 2021년 77조7천억원으로 가장 크고, 정부 지원금(2021년 기준 9조6천억원)도 가장 많이 지급되고 있는데도 국가재정이 아닌 건보공단 일반 회계로 운영됨에 따라 국회와 재정 당국 통제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 국민연금·고용보험·산재보험 등 사회보험은 모두 국가 기금으로 정부 재정으로 집계되고 있지만 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만 여기서 빠져 있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최근에는 기금화 추진 논리에 재정 건전성 사유가 덧붙여졌다. 서정숙 의원 쪽은 “급속한 저출산∙고령화로 건강보험 지출은 증가하는 반면 수입 기반이 약화하는 등 재정의 지속가능성 우려가 심화해 재정 건전성 확보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법 개정안 발의 이유에 담았다. “전체 인구에서 생산연령인구(15~64살)가 차지하는 비중이 2020년 기준 72.1%에서 2060년 48.5%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등 인구 구조 변화는 건보재정 건전성과 지속가능성을 위협할 것”이기에 재정 당국이 기금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은 국가재정(일반·특별회계·기금)이 아닌 보건복지부 장관 승인 아래 국민건강보험공단 자체 회계로 운용되고 있다. 자료: 감사원
건강보험은 국가재정(일반·특별회계·기금)이 아닌 보건복지부 장관 승인 아래 국민건강보험공단 자체 회계로 운용되고 있다. 자료: 감사원

반대·신중론자 “효율화 논리, 이익단체 입김 우려”

하지만 기금화 주장에 대한 반론 또한 만만찮다. 보건의료·노동·사회단체 40여 곳이 모인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무상의료운동본부)는 지난 14일 성명을 내어 건보재정을 기금화하면 “지출 효율화에 더해 재정 자체를 정부(기재부)가 통제하면서 수십조원을 입맛에 맞게 운용해 보장성 강화를 위한 예산 확보가 어렵다. 국회가 (재정 운용을) 심의하면 투명성이 확보될 수 있다고 하지만, 오히려 갖은 이익단체들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다”며 “기금화 법안 즉시 철회”를 요구했다. 복지부는 겉으로는 ‘신중론’을 펴지만, 속내는 반대에 가깝다. 복지부 관계자는 서정숙 의원안에 대해 “기금화에 대해선 입장이 갈리고 있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건강보험 주요 정책에 대한 의사 결정은 복지부와 사회적 합의 방식의 의결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를 통해 이뤄진다. 건정심은 복지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가입자 쪽을 대표하는 노동계와 경영계 등 위원 8명, 의약계를 대변하는 위원 8명, 복지부·건보공단·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등 공공대표 위원 8명으로 구성된다. 건정심 위원은 복지부가 임명하거나 위촉한다. 사실상 복지부 통제가 이뤄지는 구조다. 건보재정을 기금화하면, 중앙정부 재정에 귀속되는 만큼 복지부가 운영을 하더라도 다른 기금과 마찬가지로 총괄 권한은 기재부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 쪽은 대체로 반대 견해가 많다. 민주당 조원준 보건복지 수석전문위원은 “건강보험은 그해 걷어 그해 다 쓰는 단년도 회계방식으로 설계된 것이어서, 적립해 수익을 내는 다른 기금과는 원천적으로 특성이 달라 기금화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기금화는 해마다 바뀌는 의료 환경과 경제 사정에 따라 재정을 신축적으로 운용하기 어렵게 한다고 덧붙였다.

조원준 위원은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왜 이 시점에 기금화를 제기할까”란 질문이며 “이는 국고 지원을 줄이려는 의도나 지출 통제기전을 갖겠다는 기재부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고 일축했다. 민주당은 건보재정 기금화 움직임에 대해 ‘문재인 케어’를 비난하려는 여당의 정치적 의도도 다분하다고 보고 있다.

“기금화 앞서 정책 의사결정 구조 개편 필요”

이처럼 논쟁이 오랜 시간 이어졌는데도 의외로 기금화 장·단점을 깊이 있게 살펴보는 탐색과 진지한 토론이 학계나 정치권에서 활발히 이뤄지지 않았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국민이 납부하는 돈은 국회 심의를 받아야 하는 만큼 “재정(민주주의) 관점에서 기금화는 피할 수 없는 길”이라면 “다만 기금화를 하더라도 (건강보험) 이해관계자 대표들이 지금처럼 건정심에서 보험료뿐 아니라 보장항목까지 다루도록 하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오 위원장은 “집은 그대로 두고 문패판 바꾸어 기금화를 하자”는 쪽이되, 건정심 역할을 “더 활력 있게 하는 방향으로” 건강보험 정책 의사 결정을 분명히 하는 계기로 삼자는 주장이다.

유재길 건보노조 정책연구원장은 “사회보험 방식으로 운영되는 건강보험에는 기금화가 적합하지 않다”며 “지나치게 정부 권한이 집중된 건정심 구조를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원장은 “건정심의 공익위원 추천을 국회가 하도록 국회 역할을 강화하는” 방식의 건정심 의사 결정 구조 개편을 제안했다. 이처럼 기금화 찬·반 논쟁 이면에는 건강보험 정책에 대한 의사 결정 권한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가 함께 놓여 있다.

전병목 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20년 발간된 ‘건강보험 중장기 재정 운영방향 연구’ 보고서에서 “기금화라는 제도 중심의 논의보다 포괄적이고 궁극적인 정책 목적을 바탕으로 (논의를) 전개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재정 총량의 관점과 제도운용의 자율성이란 두 관점을 조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프로세스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는 “정부가 기금화 추진에 대해 신뢰를 얻으려면 건강보험 국고 지원 등 우선 재정책임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기금화 이전에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할 사항이 있다고 강조했다. △건정심 거버넌스를 실질적인 사회적 합의 방식으로 이뤄지도록 할 것 △기금화로 인한 건강보험 보장성 후퇴를 막는 안전장치 마련 등이다. 기금화를 둘러싼 논의는 무엇보다 건강보험 그 본래 목적인 시민 건강을 충분히 보장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뜻에서다.

이창곤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gon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우리가 윤 대통령 구치소서 데리고 나올 수 있다” 1.

전광훈 “우리가 윤 대통령 구치소서 데리고 나올 수 있다”

[단독] 쇠파이프 들고 “판사 어딨어!”...서부지법 공포의 3시간 2.

[단독] 쇠파이프 들고 “판사 어딨어!”...서부지법 공포의 3시간

윤석열 지지자들 “목숨 아깝지 않으면…” 이번엔 헌재 협박 3.

윤석열 지지자들 “목숨 아깝지 않으면…” 이번엔 헌재 협박

윤석열, 미결수 옷 입고 ‘머그샷’…3평 독실 수감 4.

윤석열, 미결수 옷 입고 ‘머그샷’…3평 독실 수감

‘윤석열 지지 난동’ 부추긴 전광훈·석동현, 교사범 수사 받나 5.

‘윤석열 지지 난동’ 부추긴 전광훈·석동현, 교사범 수사 받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