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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폭력 아빠의 ‘헌신한다’는 착각…아이 기억에 새겨진다

등록 2022-10-30 08:53수정 2022-10-30 10:40

[한겨레S] 전홍진의 예민과 둔감
‘공포의 기억’ 저장하는 편도체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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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씨는 30대 후반으로 음식점을 하면서 초등학생인 아들 둘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는 아들들을 엄격하게 훈육하는 것을 양육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두 아들이 숙제를 늦게 하거나 식사 시간에 늦게 오면 야단을 칩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회초리를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의 목표는 두 아들이 바르게 자라서 좋은 학교에 입학하는 것입니다. 영도씨는 아이들이 시험을 앞두고는 교과서의 공부한 내용을 확인하고 제대로 알고 있지 않으면 혼을 냅니다. 두 아들은 영도씨의 이러한 훈육 방법에 잘 길들여져서인지 말을 잘 듣고 신속하게 움직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둘째 아들의 학교 담임 선생님이 영도씨에게 연락을 해왔습니다. 아들이 학교에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영도씨와 그의 아내는 수소문 끝에 인근 피시(PC)방에서 게임에 몰두하는 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모범생인 줄로만 알았던 아들이 학교에도 가지 않고 피시방에서 게임하는 것을 목격하고는 아들을 무자비하게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영도씨는 피시방 주인에게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되었고 결국 경찰 조사를 받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군림하는 아빠의 ‘헌신한다’는 착각

영도씨는 스스로 두 아들을 위해서 헌신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음식점에서 진상 손님을 만나도 두 아들을 위해 참고 웃으면서 돈을 벌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에게도 엄격했고 두 아이들도 자신만큼 엄격하게 스스로를 관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두 아이들은 영도씨를 무척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영도씨를 아버지라기보다는 무서운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도 더 이상 영도씨의 평소 성향을 견디지 못하고 이혼하자고 했습니다.

영도씨는 가족들이 모두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혼자 버려지는 상황이 되자 온몸에 힘이 빠지고 우울한 생각에 빠져들었습니다. 다행히 신고는 취하되었지만 이제 두 아들과 아내를 보면 배신감에 몸이 떨렸습니다. 음식점도 잘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매일같이 음식점에서 남은 술을 혼자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자꾸 자존심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살아가는 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빠져들었습니다.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곤 했습니다. 그러다 더는 음식점을 운영하기 힘들 것 같아 손해를 보고서라도 가게를 내놓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렸고 영도씨는 기분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결국 도움을 받고자 인근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 방문했습니다.

담당 의사는 검사 뒤 영도씨를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증으로 진단했습니다. 가족들에 대한 그의 분노는 계속됐습니다. 이로 인한 우울감과 불면증을 달래기 위해서 밤에 혼자 술을 마셨습니다. 술의 양은 계속 늘어서 이제 주체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분노는 영도씨 자신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쓸모없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극단적인 생각까지도 이르게 되었습니다.

영도씨는 매우 무서운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매를 들었고 막내인 영도씨와 형들은 아버지가 술 마시고 오는 날에는 무서워서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에게 아버지는 따뜻하고 다정한 기억은 전혀 없었습니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권위와 복종, 그리고 체벌을 주는 대상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무심했고 아들이 맞는 것을 보면서 저녁을 만들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에게 말을 안 들으면 아버지에게 이르겠다고 하면서 영도씨를 훈육했습니다.

영도씨는 아이들과 아내에게 좋은 기억을 만들어주는 방법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저 자신은 아버지에게 배운 대로 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두 아들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함께 여행을 가거나 맛있는 것을 먹은 기억이 거의 없었습니다. 두 아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흥미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습니다. 자신의 기준에서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 체벌을 통해 고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기억 중에서 무섭거나 두려운 기억은 우리 뇌의 ‘편도체’를 통해서 강화됩니다. 편도체는 영어로 ‘아미그달라’(amygdala)라고 하는데, 이는 편도체가 ‘아몬드’(almond)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편도체는 공포나 화 등 감정과 관련된 학습 과정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편도체는 기억에 공포의 태그를 붙여 그 기억을 회상할 때마다 당시 느꼈던 공포감이 발생하게 됩니다. 영도씨가 혼을 내고 체벌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만든 기억은 편도체를 통해 만들어진 공포의 기억입니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기억할 때마다 편도체가 최대로 활성화되면서 공포의 기억을 회상하게 됩니다. 영도씨는 아이들과 아내에게 두려움으로 가득 찬 존재가 되었던 것입니다.

‘공포의 기억’을 바꾼다는 것

영도씨는 담당 선생님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간절하게 여쭈어보았습니다. 담당 선생님은 영도씨가 그동안 가족에게 만든 공포의 기억보다 더 많은 즐거움과 행복의 기억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앞으로 아이들과 시간을 가지고 편안하게 이야기하면서 아이들과 아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확인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이전의 기억 때문에 바로 가까워지기 힘들 수 있습니다. 이때는 가족들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지금부터 자신을 바꾸겠다고 선언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첫째로 가족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자신의 말과 행동을 바꾸어보기, 둘째로, 다른 사람들이 편안하게 느끼는 표정을 만들어보기, 셋째로 술을 마시지 않고 대화하기, 넷째로 자존심을 짓밟는 폭력과 폭언은 절대로 하지 않기입니다.

영도씨는 치료를 받으면서 이제는 아이들과 아내에게 부드러운 말을 먼저 써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아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함께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양육할 때, 좋은 대학이나 직장에 가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목표를 수정했습니다. 이제 영도씨는 앞으로 두 아들이 자신을 생각하면 따뜻하고 편안한 기분이 들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이러한 영도씨의 변화가 결국 두 아들과 아내가 집에서 긴장을 풀고 편안하게 쉴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가족들의 정신건강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을 썼습니다. 자세한 것은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이 글로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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