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2단계 개편안 9월 적용을 위해 입법예고를 발표한 지난 6월 29일 서울 영등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 영등포남부지사의 모습. 연합뉴스
‘은퇴자 지갑털기’ ‘은퇴자 날벼락’
건강보험료 2단계 부과체계 개편의 일환으로 이달부터 정부의 건강보험료 피부양자 소득 요건이 강화된 것을 두고 보수 언론과 커뮤니티에서 나오는 표현이다. 약 27만여명이 피부양자 자격을 잃고 건보료를 내게 됐는데, 상당수가 연금소득에 의지하는 은퇴자이기에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번 개편은 경제적 여력이 있음에도 자녀 등에 피부양자로 등록해 건보료를 내지 않는 ‘무임승차’를 바로잡기 위한 조처였다. 전문가들도 국외 사례에 견줘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입을 모은다. 바뀐 제도와 배경, 국외 사례 등을 토대로 ‘은퇴자 건보료 피부양자 탈락’ 논란을 짚어봤다.
공무원연금 받던 ‘피부양자’, 건보료 한 달 14만9천원
건강보험 가입자는 크게 △직장가입자 △지역가입자 △피부양자 등 3개 그룹으로 나뉜다. 직장가입자는 회사(사업장)에 소속돼 월급으로 건보료를 내는 사람이다. 프리랜서·자영업자 등 사업장에 소속되지 않고 건보료를 내는 사람이 지역가입자다. 직장가입자인 가족에 생계를 의존하는 이는 피부양자로 등록해 건보료를 내지 않게 된다.
정부는 부유층이 피부양자로 등록해 건보료를 내지 않는 상황을 막기 위해 피부양자 조건에 재산·소득 기준을 뒀다. 이번 개편으로 연금소득 등 연 2000만원 이상의 소득이 있으면 피부양자로 등록하지 못하고 건보료를 내야 한다. 기존에는 연 소득 3400만원 이하인 사람이 피부양자가 되면 건보료를 내지 않을 수 있었다.
5일 건강보험공단·보건복지부·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등 집계를 보면, 이번 조처로 피부양자 자격을 잃는 사람은 27만3000여명이다. 이들이 한 가구당 내야 하는 평균 건강보험료는 월 14만9000원꼴이다. “국민연금 소득으로 인해 건보료를 더 내게 됐다”는 사례들이 커뮤니티 등에 나오지만, 이런 경우는 소수다. 이번 조처로 피부양자 자격이 상실되는 공적연금 소득자는 13만898명 정도다. 한 달에 167만원 이상을 받는 연금수급자는 대다수가 공무원(80.6%), 군인연금(8.4%) 수령자 등이다.
특히 국민연금 소득이 연 2000만원이 넘어 건보료를 내게 된 경우는 2685명(2.1%)에 그친다. 국민연금 소득만으로 피부양자 자격을 잃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얘기다. 한 달에 고작 수십만원의 국민연금을 수령하는데 건보료를 내게 됐다는 주장을 들여다 보면, 국민연금만으로 건보료를 내게 된 것이 아니라 다른 소득이 있는 경우다. 국민연금과 금융소득 등 다른 소득을 합쳐 연 소득이 2000만원이 넘는 경우에 건보료를 낸다.
한달 수십만원 버는 빈곤층 지역가입자도 건보료 내
그간 건보료를 내지 않던 사람들이 내게 됐다. 제도가 바뀐 건 건보료 납부의 형평성 때문이다. 기존에 자영업자가 1년에 3400만원을 벌었다면 한 달에 21만원 수준의 건강보험료를 냈다. 하지만 피부양자로 등록된 사람은 3400만원의 연 소득이 있더라도 한 달 건강보험료가 ‘0’원인 문제가 발생했다.
이번 조처로 인해 건보료를 내는 이들의 재산·소득을 봐도 지역가입자들 보다 생활 수준이 낮지 않다. 이번 소득요건 강화로 제외되는 피부양자의 연평균 소득이 2450만원 수준이다. 이는 한 달 수십만원을 버는 지역가입자 빈곤층이 1만원대의 최저 보험료를 납부해왔던 것과 비교된다. 지역가입자 중 연평균 소득이 336만원이하(한달 약 28만원 이하 소득)여서 최저보험료를 납부하는 가구도 242만세대(전체 지역가입자 859만 세대 중 약 28%)다. 역으로 빈곤층 지역가입자는 피부양자로 ‘이름을 올릴’ 직장가입자 가족이 없기에 보험료를 내야 한다며 억울해 할 상황도 생기는 것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피부양자 자격 상실자는) 그간 연금소득 등 소득이 있음에도 건보료를 내지 않고 건강보험 제도를 이용한 것”이라면서 “이 부분을 조정해 모두가 함께 건강보험 재정에 기여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형평을 맞추기 위해 피부양자 자격의 소득 기준을 1천만원까지 낮춰야 한다고 본다. 한꺼번에 할 수 없으니 단계적 과정을 거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민연금공단은 국민연금액 월 수령액을 늘리는 방법인 추납(과거에 못 낸 보험료를 나중에 납부해 연금 수령액을 늘리는 방법), 임의계속가입(가입자가 퇴임해도 65살 수령 전까지 직장보험료 수준의 보험금을 납부할 수 있는 제도), 연기연금(수령 시기를 연기하며 월 수령액을 높이는 제도) 등을 독려한 바 있다. 이로 인해 국민연금 수령액을 늘린 이들 중 피부양자 자격이 상실된 사례가 있어, 개선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 피부양자 소득 기준 강화로 인해 국민연금 납부자들이 빠르게 수급자로 바뀔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비가 필요하다. 최혜영 의원실이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적은 금액을 받는 대신 앞당겨 국민연금을 받는 조기노령연금 월평균 신규수급자 수가 올해 월평균 4829명으로, 지난해(월 평균 3976명)보다 증가했다.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을 논의할 때 국민연금 수령액 기준이 이렇게 바뀔 거라고 예측을 못한 건 사실”이라며 “국민연금공단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서로 협의해 절충점을 찾을 필요는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과 정부는 이번 개편의 방향성에 동의한다. 한국은 이번에 피부양자 제외 소득 기준을 34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낮췄는데, 낮춘 금액조차 국외와 견줘 높은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독일의 경우 한화로 720만원, 일본은 1278만원 이상의 소득이 있으면 피부양자가 되지 않고 건보료를 낸다. 또한 한국은 직장가입자 대비 피부양자로 등록된 이들이 국외와 비교해 월등히 높다. 한국의 직장가입자 대비 피부양자 비율은 올해 기준 0.95명이다. 2020년 기준 독일 0.28명, 대만 0.49명, 일본 0.68명(2019년 기준) 등과 차이가 크다.
전문가들은 피부양자 요건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편을 진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신 위원은 “초고령화 사회로 진행하며 한명이 다른 한명을 부양하는 구조로 가고 있다. 특히 고령층은 의료이용 욕구가 많은데, (피부양자로) 보험료 면제 대상으로 두면 나머지 인구가 감당하기 어렵다”면서 “고령자들도 경제적 능력이 있으면 보험료를 십시일반 내는 게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일”이라고 말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