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와 돌봄을 바꾸는 시민행동'을 만든 강주성 사회운동가가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찻집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양쪽 귀에 꽂힌 건 무선 이어폰이 아닌 보청기였다. 수시로 눈에 안약을 넣고 손수건으로 입을 막아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한겨레>와 만난 강주성 ‘간호와 돌봄을 바꾸는 시민행동’ 대표활동가는 과거 만성골수성백혈병(CML) 투병 생활을 했고, 지금도 시각·청각·신장 장애가 있는 환자 당사자로 20여년간 ‘환자 권리찾기운동’ 중이다.
최근엔 환자를 제대로 간호하고 돌보는 데 필요한 법·제도를 마련을 촉구하는 ‘간호와 돌봄을 바꾸는 시민행동’ 출범을 이끌었다. 그는 돌봄 문제를 해결이 절박한 사회 문제라고 강조한다. “나처럼 갑자기 병이 생길 수 있고, 늙을수록 병이 늘어나 언젠가 모두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 될 수 있어요. 그런 돌봄을 환자 본인과 그 가족 문제로 두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사회 전체 문제입니다.”
1999년 서른아홉살 나이에 강주성 활동가는 갑작스레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그때까진 병원 입원조차 한 적이 없었다. 하루아침에 환자가 되고 나서야 항암제 약값으로 한 달에 300만원이 넘는 돈이 든다는 걸 알았다. “돈 있는 사람은 약을 먹고, 돈 없는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는 건, 너무 불합리한 거예요.” 그래서 ‘백혈병 환우회’를 만들고 글리벡(표적 항암제) 약값을 낮추기 위한 운동을 이끌었다.
그러나 환우회 활동만으로는 보건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현실에 눈을 뜨면서 2003년 보건의료 시민운동단체 ‘건강세상네트워크’를 창립했다. 2년 전 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직을 사퇴한 강 활동가는 국가가 간병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하도록 촉구하는 ‘간병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연대(간병시민연대)’ 활동을 거쳐 ‘간호와 돌봄을 바꾸는 시민행동(시민행동)’ 설립에 이르렀다. 지난달 10일 출범한 이 단체엔 간호대 학생·시민·환자 등 2만1천명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그가 보기에 아픈 이들을 간호하는 서비스 질이 현저히 떨어진다. 원인은 인력 부족이다. “세계 경제규모 10위라고 하기엔 너무 창피할 정도로 보호자가 (병원에서) 쪽잠 자면서 병간호하는 나라가 없거든요. 이런 현실은 간호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인력이 부족한데 법으로 정해진 인력 기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2016년 화재로 39명이 숨지는 참사가 일어난 경남 밀양 세종병원 사례가 대표적이다. “밀양 요양병원 법적 인력 기준은 의사 6명, 간호사가 35명이었어요. 그런데 불이 나서 수십 명이 죽고 난 다음 안에 들여다보니 의사 3명, 간호사 6명밖에 없었어요.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인력이 부족하니까 이건 돌보는 게 아니라 환자를 수용한 거죠.”
시민행동은 첫 번째 프로젝트로 병·의원 의료인 정원 기준 위반 실태조사 의무화, 간호사 정원 기준을 ‘연평균 1일 입원환자’가 아닌 ‘실제 입원환자’로 바꾸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 두 건을 국회에 국민동의청원했다. 2016년 기준 우리나라 인구 1천명 당 임상 활동 간호사(간호조무사 포함)는 6.80명으로 오이시디(OECD) 평균인 8.88명에 견줘 낮다.
병원 입원환자는 보통 가족이나 사적으로 고용한 간병인 간호를 받는다. 전문 간호 인력이 24시간 제공하는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정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수요에 견줘 공급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8만~9만원이던 간병비가 지금은 15만원까지 올랐어요. 코로나19로 인해 간병비는 크게 늘었는데,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너무 제한적이니까 환자들은 힘들죠. 방문간호서비스 등을 더 활성화해야 합니다. 병원 안에서도 퇴원해서도 제대로 된 간호를 받을 수 있게요.”
시민행동의 궁극적 목표는 헌법에 ‘돌봄기본권’을 명시하는 일이다. “발달장애 아동은 치과 진료를 한 번 받으려면 전신마취를 해야 해요. 여러 번 반복 치료가 어려우니 그냥 이빨을 빼버리는 경우도 있어요. 청각장애인은 어떤가요. 수어를 할 수 있는 의사가 없어서 큰 병원도, 작은 병원도, 요양병원도 못 가요. 진료에서도 돌봄에서도 사각지대인 거죠. 아프면 치료받고 돌봄을 받아야 하잖아요. 이런 권리를 헌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봅니다.”
장현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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