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 앞에서 피시아르(PCR) 검사를 받는 긴 행렬.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선생님, 신철민님(가명) 전원 안 가시겠다는데요, 어떻게 하죠?”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한 20대 청년 철민님은 가래에 피가 섞여 나오는 증상이 며칠째 있었다. 철민님은 격리 기간이 다 되어 격리해제자로서 센터 퇴소를 앞두고 있지만, 의료진은 피가 섞인 가래에 대한 검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병원으로 옮길 것을 요청하였다. 병상 대기 환자가 넘치는 비상 상황에 어렵사리 근처 병원에서 전원 허가를 받았는데, 환자분이 갑자기 안 가겠다고 한다. 비협조적인 태도에 간호사 선생님들도 혀를 내두른다. 주말에만 생활치료센터 업무를 보는 나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생활치료센터 평일 담당 의사 선생님은 한숨을 쉬시며 전원을 가셔야 할 거 같으니 철민님을 설득해보라고 하신다. 그간의 상황을 자세히 몰랐던 나는 이제야 확실히 인지하고 심호흡을 하고 철민님께 전화를 걸었다.
“저 생활치료센터 담당 의사예요. 가래에 피가 섞이는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센터에서 병원으로 전원 가셔야 할 거 같아요. 어렵게 전원 허가를 받았고, 정확한 검사가 늦어지면 퇴소가 더 늦어질 수 있어요.”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치료가 되지 않으면 일상생활로 복귀가 늦어질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알린다. 하지만 철민님은 반문한다.
“ 전원 꼭 가야 하나요? 모레 퇴소 예정이라 그냥 퇴소하고 싶은데요? ”
다시 자세히 설명해 드릴 수밖에 없다.
“ 이번에 전원을 가지 않으시면 상태가 악화될 수 있어 저희도 퇴소를 도와드릴 수 없어요. 증상이 완화되어야 퇴소가 가능해요. 저희가 사전에 충분히 안내 못 드린 점 죄송해요. 치료 잘 받으시고 빠르게 퇴소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려는 것이 니 꼭 따라 주세요. ”
“1인실인가요? 병원이 먼가요? 저는 집이 바로 앞인데, 빨리 집으로 가고 싶은데.”
철민님과 나는 잠시 실랑이를 할 수밖에 없다.
“△△병원인데 멀지 않아요. 저희가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병상을 배정받았어요. 번거롭겠지만, 병원 치료를 잠시 받고 나오면 더 확실히 회복하실 수 있어요. 믿고 따라 주세요.”
대화 끝에 철민님의 공격적인 태도는 다소 누그러졌다. 병원에 가는 것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니며, 증상에 대해 정확히 확인하고 필요시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치료 이후에 일상생활로 확실히 돌아갈 수 있음을 재차 설명했다. 그제야 철민님도 태도를 바꾸고 마음을 열었다.
“선생님, 제가 낯선 환경에 가면 불안해서 난동을 부릴 수도 있어요. 그게 걱정되어 그래요.”
“아, 그러셨군요. 사정상 1인실은 아니지만 저희가 최대한 불편하지 않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이 20대 청년은 낯선 생활치료센터 환경과 더 낯선 곳인 병원 공간에 대한 불안 때문에 심리적으로 힘들었음을 어렵게 토로했다. 그 말을 듣고 그가 왜 그토록 비협조적이었는지 수긍이 됨과 동시에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안타까움에 마음이 녹아내렸다. 비협조적인 환자라고 치부해버렸던 나를 자책했다. 다행히 그를 센터에서 병원으로 옮기게 하는 내 몫의 일을 마치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에게 언제든 힘들면 이 번호로 연락하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내 역할 밖이라 내뱉지는 않았다. 얼굴을 모르는 이 청년에게 생활치료센터 격리 경험과 병원 치료가 나쁜 기억으로만 남지 않길 바랐다.
병원 옮기는 데 비협조적인 환자
“낯선 환경으로 가면 불안해서…”
대유행 2년 흘러도 매번 새 상황
코로나 무섭지만 내 역할 하고파
코로나 확산이 멈출 기세가 없어 보인다. 나는 코로나 치료와 방역에 전적으로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틈틈이 선별검사를 하고 생활치료센터에서 증상 호전을 돕고 있다. 2년째 이 일을 하니 코로나에 감염되는 것 자체도 무섭지만, 그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도 크다는 점이 눈에 띈다. 생활치료센터를 운영하는 건 분명 필요한 일이지만 낯선 생활치료센터에서 낯선 이와 강제 격리되는 경험은, 누군가에게는 결코 겪고 싶지 않은 일일 수 있다는 점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생업을 접고 격리해야만 하는 생활인들의 고충도 있고, 한 방에 3인 이상 격리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엔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집에서 자가격리를 하라는 지침도 나왔다. 미지의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강제되는 일 속에서 이 위기를 무사히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되뇌어본다.
경기도 제2호 특별생활치료센터(재택치료 연계 단기진료센터)로 운영되는 수원시 경기도인재개발원 실내체육관의 모습. 경기도청 제공
“어, 선생님이시네요. 저 매주 검사받아요.”
평일 야간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피시아르(PCR)검사를 돕고 있는데, 낯익은 분이 검사를 받으러 온다. 말기 암에 수차례 뇌출혈 증상을 보이는 어머니를 돌보는 보호자 김수진님(가명)은 거의 매주 코로나 검사를 받는다고 한다. 어머니가 걱정되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소 불쾌할 수 있는 검사를 그렇게나 자주 받는다. 아침에 진료 가면 밤새워 일하고 돌아온 보호자님이 어머니인 환자분 옆에서 주무시고 있기도 한데, 생업에, 어머니 돌봄에, 코로나 방역까지 신경 쓰느라 고생이 가중된다.
나도 코로나가 무섭다. 백신 접종을 무사히 마쳤는데도 그렇다. 코로나를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다. 왕진을 요청한 환자가 코로나에 감염된 건 아닐지 걱정하기도 하고, 내가 혹시 코로나 감염을 전파하는 건 아닌지 여전히 걱정한다. 걱정은 하지만 그렇다고 가 보지 않을 수 없고 모른 체할 수는 없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몸은 멀어지지만 마음은 가깝게 하라는 알쏭달쏭한 말의 의미를 코로나 대유행을 2년 겪으니 조금 이해된다. 코로나 극복을 바라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요즘은 확산세가 크게 늘어 가까이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타나고 병상 확보도 쉽지 않다. 비난을 먼저 하기보다 각자가 처한 상황을 세심히 이해하며 위기를 잘 헤쳐나가는 수밖에 없다. 나 역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이 상황을 극복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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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원 찾아가는 의사 _ 남의 집을 제집 드나들듯이 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꿈도 계획도 없다. 내 집도 남이 드나들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방문을 허락하는 이들이 고맙고, 그 고마운 이들과 오랫동안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