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관리청이 코로나19 먹는(경구용) 치료제 계약 물량을 애초 계획보다 확대할 방침인 것으로 확인됐다. 먹는 치료제는 경증·중등증 환자가 중증으로 악화하는 것을 막아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 상황에서 병상 부담을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8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현재 먹는 치료제 예산은 지난 4~5월에 만든 것이어서 4차 유행이나 ‘단계적 일상 회복’ 이후 유행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면이 있다”며 “현재 예산은 내년 1분기 물량 정도로 보고, 국회 예산 논의 과정에서 추가 예산을 확보하려고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질병청은 올해 168억을 들여서
글로벌 제약사인 머크사의 먹는 치료제 ‘몰누피라비르’ 1만8천명(1인당 92만원)분을 도입하는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몰누피라비르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개발되는 먹는 치료제로 다음달께 미 식품의약국(FDA)에 긴급사용승인을 신청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질병청은 내년도 예산안에도 여러 종류의 먹는 치료제 2만명분을 도입하기 위한 예산 194억을 배정했다.
하지만 올해와 내년을 합쳐 3만8천명분만을 도입하는 건 현재의 유행 상황으로 봤을 때 물량이 적다는 지적이 나왔다. 미국은 지난 6월 머크사에 12억 달러를 지원하고 170만명분의 몰누피라비르를 공급받는 선구매 계약을 맺었다.
질병청은 위험을 분산한다는 측면에서 ‘포트폴리오’ 구매를 원칙으로 두고, 머크사 이외에도 먹는 치료제를 개발 중인 복수의 글로벌 제약사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 제약사의 개발 상황도 지켜보고 있다. 백신처럼 여러 종류를 들여오고 나서 특정 치료제가 부작용 발생 등으로 문제가 됐을 때 다른 치료제로 대체하는 등의 방법으로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서다.
현재 먹는 치료제의 경우에는 머크사의 몰누피라비르 외에도 미국 화이자사, 스위스 로슈사 등이 글로벌 3상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최종 결과가 나오지 않아 도입에는 위험 부담이 남아있다. 이에 정부 관계자는 “만약 치료제가 미국 식품의약국이나 유럽의약품청(EMA)에서 긴급 사용 승인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허가를 받지 못하면 계약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고 비용 지불도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특히 백신 때처럼 ‘늑장 도입’ 논란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백신 수급 사례를 참고해서, 먹는 치료제는 제약사들에 상당히 선제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먹는 치료제는 캡슐 형태로 상온 유통이 가능해 많은 양을 구입해도 도입 일정을 분산시킬 수 있게 조정할 여지가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적극 도입’과 ‘신중론’이 엇갈린다.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교수(호흡기내과)는 “국내 인구가 미국의 6분의 1 수준이니, 치료제도 28만명분 정도는 가져오는 게 맞다”며 “경구용 치료제는 많이 도입해도 유효 기간이 길어서 버릴 일은 없다. 나중엔 사고 싶을 때 사지도 못할 수 있으니 후회 없게 충분히 선구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교수(감염내과)는 “몰누피라비르는 경증환자보단 (중증 아래인) 중등증 환자에 투여하는 약이어서 중등증 환자가 앞으로 4~5차 유행에서 어느 정도로 발생할지 예측하고 구매를 해야 한다”며 “완전히 검증되지는 않은 약이고, 임상시험 성공 가능성도 어느 정도 되는지 모르며, 비싸다는 점을 고려해 정부가 최대치를 구매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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