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관계자들이 지난 6월23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앞에서 열린 공공의료 확충, 불법 의료 근절, 정당한 보상지급, 비정규직 정규직화, 주4일제 도입 등 촉구 집회에서 방호복을 착용한 뒤 머리띠를 묶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장기화로 의료 현장의 ‘번아웃’(탈진) 문제가 심각한 가운데,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다음달 2일 역대 최대 규모의 총파업을 예고하면서 26일 정부와 막판 교섭이 진행됐다. 총파업 찬반 투표는 27일 결과가 발표되는데, 가결되면 2016년 성과연봉제와 의료민영화 반대 이후 5년 만에 총파업을 하게 된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18일 시작한 조합원 총파업 찬반투표를 이날 저녁 7시에 마감해 27일 오전 결과를 발표한다. 강연배 보건의료노조 선전홍보실장은 “그간 총파업 찬반투표가 부결된 적이 없고, 이번에도 큰 이변 없이 통과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부터 교섭을 진행해온 노조와 정부는 이날 마지막 실무교섭인 제11차 노정 실무교섭도 열었다. 박향 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코로나19로 의료인력이 번아웃된 상황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해달라는 노조의 요구에 공감한다”며 “‘끝장 토론’으로 터놓고 충분히 이야기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실무교섭단장인 송금희 보건의료노조 사무처장은 “미미하게 접점이 있지만 대체로 마음에 드는 게 없다. 인력 문제는 전혀 해결될 길이 안 보인다”며 “공공의료는 모두 정부 예산이 들어가야 하는 게 기획재정부에서 움직여줘야 하나 그런 움직임도 잘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17일엔 보건의료노조 124개 지부(136개 의료기관, 5만6천여명)가 노동위원회에 동시에 쟁의조정을 신청했다. 121개 지부(3만6천명)가 조정을 신청한 2004년 주 5일제 도입 총파업 때보다 많은 역대 최다 규모다. 코로나19 전담병원인 국립중앙의료원과 24개 지방의료원 등을 비롯해 서울아산병원, 고대의료원 등 29개 대형 사립대병원 등 주요 의료기관들이 포함되어 있다. 15일간의 쟁의조정 기간 내에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노조는 9월2일부터 전면 총파업 투쟁에 돌입할 예정이다.
노조가 총파업 투쟁을 추진하는 이유는 코로나19로 인해 의료 현장의 고통이 커지고 장기화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가 지난 3월 조합원 4만3천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에서 응답자의 40.7%가 “코로나 블루(우울감)를 경험했다”고 답했고, 코로나19전담병원의 노동자의 50.5%는 “노동 여건이 나빠졌다”고 응답했다. 이날 대한예방의학회와 한국역학회로 구성된 코로나19공동대책위원회도 성명을 내어 “케이 방역 시스템 또한 코로나의 장기화 및 대규모화 등에 따른 인력과 자원의 확충 없이 보건의료진의 헌신과 희생에 의존해온 결과 붕괴 직전의 한계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짚기도 했다.
노조의 8대 요구사항을 보면, 코로나19 장기화에 대비한 인력 충원만이 아니라 감염병전문병원과 공공의대 설립 등 공공의료 강화 등이 포함돼 있다. 노조는 ‘공공의료 확충·강화 3대 요구’로 △조속한 감염병전문병원 설립 △전국 70개 중진료권 1개씩 공공의료 확충 △공공병원 인력·시설 인프라 구축 등을 들었다. 또 ‘보건의료인력 확충·처우 개선 5대 요구’로는 △직종별 적정인력기준 마련과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한 교대근무제 시행 △5대 불법의료 근절 △의료기관 비정규직 고용 제한 △의사인력 확충과 공공의대 설립 등을 요구했다.
총파업이 진행되면 ‘의료대란’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의료 현장에 부담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노동조합법에서 병원 사업은 필수공익사업으로 분류해 파업하더라도 필수인력은 반드시 유지하도록 규정한다. 이 때문에 총파업이 시작돼도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에서는 인력을 뺄 수 없고, 다른 진료과에서도 일정 비율의 필수인력을 남겨두어야 한다. 송금희 사무처장은 “파업을 하면 조합원 5만6천명 가운데 필수인력을 제외한 많은 이들이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연배 선전홍보실장은 “2004년에 고려대 노천극장에서 1만명이 모였던 것이 최대 규모 집회였는데, 이후 조직이 2배가량 커졌기에 파업 집회 규모도 더 커질 것”이라며 “병원에 의사와 전공의, 수간호사가 있으니 ‘의료대란’이 일어나진 않겠으나 힘들고 불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박향 정책관은 “파업 상황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않을 순 없지만, 파업까지 가지 않겠다는 것이 목표”라며 “아직 일주일 정도 시간이 있으니 계속 논의를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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