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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단독] ‘방역 번아웃’ 보건소 간호사들, 사직 1.5배로 늘었다

등록 2021-07-23 04:59수정 2021-07-23 07:09

올해 5월 말까지 벌써 200명 떠나…휴직자도 평년의 1.4배 수준
우울증·생리불순 등 호소 속출에 “인력 갈아 넣기로는 K방역 한계”
21일 낮 서울 강남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선풍기와 아이스팩으로 더위를 견디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21일 낮 서울 강남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선풍기와 아이스팩으로 더위를 견디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경기도의 한 보건소에서 10년째 간호직으로 일하던 40대 초반 ㄱ씨는 지난해 11월 육아휴직을 하기까지 한 해를 꼬박 코로나19 대응에 바쳤다. 선별진료소에서 4~5시간씩 검체를 채취하다가 보건소에 들어오면 원래 담당하던 금연 사업 등 건강증진 업무를 병행했다. 그러다 갑자기 역학조사를 다녀오라는 지시가 나오기도 했다. 두 차례 알 수 없는 이유로 고열이 났는데, 음성 판정을 받자마자 다시 보건소로 나가야 했다. 그가 하루 쉬는 만큼 동료들이 져야 할 짐이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저희 애가 어린이집에서 항상 끝까지 혼자 남아 있는 아이였어요. 저한테 ‘엄마, 일 안 가면 안 돼?’ ‘왜 주말에 나가?’ ‘나도 엄마랑 있고 싶어’라고 하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일이 힘든 건 어떻게든 참아보려 했는데, 아이까지 우울증이 오는 수준이 되니까 휴직을 결심하게 되더라고요.”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ㄱ씨는 두통에 진통제를 달고 살았고, 몸이 안 좋아 둘째를 낳을 계획도 포기했다. 한 동료는 생리불순이 몇달 동안 이어져 수술까지 받은 뒤 다시 일했다. 또 다른 동료는 격무에 결국 안정된 정규직 공무원 일자리를 관두고 보건소를 떠났다. “우울증이 안 온 사람이 있을까요? 선별진료소 안에서 방호복을 입고 바깥에서 꽃이 피고 지고, 비가 오고, 눈이 내리는 걸 보고만 있어도 눈물이 났어요.”

정부 방역 체계에서 ‘손과 발’을 맡고 있는 간호직 등 보건소 공무원들이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격무에 시달리다 지쳐 하나둘 일터를 떠나고 있다.

2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행정안전부로부터 제출받은 보건소 공무원 휴직 및 사직 현황을 보면,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 사직한 공무원이 468명으로 이전 3년(2017~2019년) 평균 311명보다 1.5배로 늘었다. 휴직자 수는 1737명으로, 이전 3년 평균 1243명보다 1.4배로 늘었다. 올해도 지난 5월 말까지 벌써 200명이 사직하고, 1140명이 휴직했다. 간호사들이 하는 간호직과 보건진료직만 따로 떼어 현황을 보면, 지난해 이 직렬 간호사는 160명이 사직해 이전 3년 평균 108명의 1.5배로 늘었고, 휴직자도 909명이어서 이전 3년(634명)에 견줘 1.4배로 늘었다. 올해도 5월 말까지 벌써 66명이 사직하고, 580명이 휴직했다.

부산의 한 보건소 간호직으로 일하던 30대 ㄴ씨도 원래 예정보다 6개월 앞당겨 지난 1월부터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지난해 아이가 태어났는데, 아이 돌봄을 아내에게만 맡겨와 계속 그렇게 둘 순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학조사를 할 때 제가 늦으면 접촉자가 늘 수 있다는 압박이 커서 거의 매일 야근을 했어요. 역학조사를 하면서도 말 한마디가 예민하다 보니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통화를 하느라 소화불량이 생기고 건강이 안 좋아졌습니다.”

ㄴ씨는 특히 지난 5월 격무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부산시 동구보건소 간호직 이아무개(33)씨를 두고 “사람들이 그만두거나 휴직하면 되지 않냐고 하던데, 번아웃이 되면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해진다”며 “본인이 갑자기 휴직하면 동료들이 일을 더 떠안게 되는 상황이 되니 휴직도 선택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정부에서도 이씨의 죽음 이후 뒤늦게 인력 충원과 정신건강 조사 등의 대책을 마련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방공무원 정원을 800여명 늘려 현재 채용을 진행하고 있고, 올해 1~2차 추경을 통해 4~5개월 한시 지원인력 2500여명을 보건소에 배치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6일까지 시도별 확진자가 많은 17개 보건소에서 근무하는 대응 인력 약 4천∼5천명을 대상으로 정신건강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고, 이 가운데 1800여명의 응답을 받았다. 이두리 보건복지부 정신건강관리과장은 “전반적으로 힘들다는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고, 조직과 직무 분석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찾아보려 한다”고 말했다. 고민정 의원은 “코로나19 전장의 최일선을 지키는 방역 전사를 최우선적으로 챙기는 것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당연한 책무”라며 “현장에서 교대로 쉴 수 있도록 인력을 확충하고 냉방시설 확보 등에 필요한 예산을 제때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장기화와 또 다른 신종 감염병 유행에 대비하기 위해 보건소의 대응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특히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의료관리학)는 전국 254개 보건소마다 7명의 의사와 간호사 등을 배치해 ‘감염병 관리센터’를 만드는 방안을 제안했다. 독립된 동선과 환기 시스템을 갖춰 의심환자를 선별 진단할 수 있는 감염병 클리닉과 감염병 감시·역학조사·접촉자 관리를 실행할 감염병 대응팀을 등을 갖춰 전문적인 감염병 대응 역량을 갖추게 하자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인력을 충원해주는 대신 기존 인력을 갈아넣는 방식으로 계속해 온 ‘케이(K)-방역’이 높은 휴직률과 인력 부족의 악순환을 만들어 내고 있다”며 “정부가 코로나19가 장기화하고 신종 감염병이 또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하는데, 이번 코로나19의 경험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으려면 그에 걸맞은 체계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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