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보아를 가장 좋아한다는 시각장애인 김유라(14)양이 26일 오전 강원도 춘천 집에서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춘천/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귀로 보는 세상의 빛 카트라이더도 해 볼래요”
보아 만나고 채팅 수다…조금만 도와주면 길 덜 헤맬텐데
보아 만나고 채팅 수다…조금만 도와주면 길 덜 헤맬텐데
컴퓨터 앞에 앉은 김유라(14)양에겐 마우스가 필요없다. 유라는 미리 지정된 단축키와 탭키를 톡톡 두드리며 인터넷의 정보 바다 속으로 빠져든다. 또래 아이들이 머리를 모니터 앞쪽으로 기울일 때 유라는 스피커 쪽으로 귀를 살짝 귀울인다. 유라는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인이었다. 1.15㎏이라는 작은 몸으로 세상에 태어난 탓에 ‘미숙아 망막증’에 걸렸기 때문이다. 유라는 컴퓨터상의 텍스트를 읽어주는 ‘스크린 리더’라는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인터넷을 통해 세상과 만나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유라는 강원명진맹학교에서 일주일에 한 번 컴퓨터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간에 시력을 잃은 사람들과 달리 공간개념이라는 것 자체가 없어 인터넷이 쉽지 않았다. 비시각장애인에게는 “바탕화면 오른쪽 셋째 줄 아래서 네번째 있는 윈도 익스플로러 아이콘을 누르세요”라고 말하면 되지만 유라는 키보드의 글자키 하나하나를 만져가며 위치를 익히고, 바탕화면이라는 개념을 머릿속에 그려주는 작업부터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컴퓨터 입문 5년이 됐지만 유라의 컴퓨터 실력은 비시각장애인이 5개월 가량 배운 수준일 뿐이다. 유라는 인터넷을 하면서 가장 좋아진 것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 것”이라고 했다. 유라는 가족들과 함께 외출할 때가 아니면 밖에 잘 나가지 않아 텔레비전을 ‘듣는’ 일 외에는 특별한 취미가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컴퓨터에서 좋아하는 가수 ‘보아’의 소식도 찾아보고, 신곡도 찾아 듣는다.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 유라는 컴퓨터에 ‘유라의 음악’이라는 폴더를 만들어놓고 그 안에 내려받은 음악 파일들을 차곡차곡 모아놓기도 했다. 또래 친구들이 ‘싸이월드’에서 일촌을 맺고 ‘얼짱’ 각도로 사진 찍는 법을 공유하는 데 몰두하지만, 유라는 채팅 사이트에 빠져 있다. 스크린 리더가 이미지를 읽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선생님과 친구 17명의 아이디를 등록해놓고 시시때때로 대화를 나눈다. “전에는 잠깐잠깐 만나 대화하는 게 전부였는데 요샌 인터넷 쪽지로 속얘기를 해서 친구들과 더 친해진 것 같다”며 유라는 웃었다. 요새는 인터넷 화면에 이미지들이 너무 많아 ‘길’을 잃고 헤매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기자가 유라와 함께 <한겨레> 인터넷 사이트(www.hani.co.kr)에 들어가 ‘황우석 교수’에 관한 검색을 해봤다. 그러나 처음부터 벽에 부닥쳤다. ‘로그인’ 버튼이 이미지 파일로 돼 있기 때문이다. 스크린 리더는 “에프비_라진 점 지아이에프(fb_login.gif)”라고 읽어준다. 유라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게 뭐지?”를 연발했다. 몇 차례 시도 끝에 유라는 그 긴 이름의 파일이 로그인을 하라는 버튼임을 알아차렸다. 비시각장애인에게는 1초도 걸리지 않았을 테지만 벌써 2분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렇지만 유라는 끈기있게 계속 탭키를 눌렀고, ‘황우석 사건 언론은 책임져야’라는 기사를 찾아냈다. 유라의 컴퓨터 선생님 박성수(44)씨는 “이미지 파일에 스크린 리더가 읽을 수 있는 ‘알트텍스트’를 달아주기만 하면 된다”며 “웹페이지 관리자들이 조금만 신경을 써줘도 시각장애인들이 훨씬 쉽게 인터넷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라는 “눈이 보이지 않는데 게임을 하는 애들도 있대요. 오래 걸려서 답답하긴 하지만 언젠가는 저도 동생 민성이처럼 카트라이더도 할 수 있을 거예요”라며 웃었다. 춘천/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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