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서울 강남의 한 연주홀에서 이나영양이 연주에 앞서 스승인 김인호 교수와 함께 연습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난 바이올리니스트가 될거야…”
소리란 것이 그저 듣기만 하면 되는 것일 텐데, 보이지 않는 두 눈은 소리조차 가로막고 있었다. 앞 못보고 살다가 만난 바이올린 소리가 좋아서, 언젠가 무대에 서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겠다는 한 시각장애인 소녀의 꿈이 이뤄지기까지는 6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13일 저녁 7시, 이나영(18·서울맹학교 고등부3)양이 서울 강남의 한 연주홀 무대에 섰다. 갖춰 입은 빨간 드레스가 얼마나 예쁜지 나영양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연주한 바이올린 소리가 100여명 관객의 마음속을 파고드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아름다운 로즈마리> 독주에 이어 스승 김인호 교수와 함께 연주한 <두 개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의 마지막 음이 잦아드는 순간,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박수가 터져나왔다.
이날 공연은 나영양의 공식 데뷔 무대였다. 자원봉사단체 ‘애원’이 주최한 이날 ‘꿈씨 음악회’는 다운증후군 환자들과 자폐아 등 나영양처럼 몸은 불편하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유달리 자존심과 독립심 강한 나영양은 가족들조차 공연장에 오지 못하게 했다. 긴장으로 떨리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였다. 연주를 마친 순간, 느낌은 오히려 간단했단다. “큰 실수 없이 끝나 뿌듯한 것”뿐이었다. 그러나 이날은 분명 나영양이 또 하나의 한계를 넘어선 뜻깊은 날이었다.
서울 맹학교 이나영양…안양대 김인호 교수 무료레슨
꿈씨음악화서 ‘아름다운 로즈마리’ 독주…“뿌듯해요” 선천성 녹내장을 앓으며 태어난 나영양은 초등학교 1학년 때 모든 시력을 잃었다. 빛을 잃자 대신 ‘소리’가 새롭게 들리기 시작했다. ‘클래식 음악’이 특히 어린 나영양의 마음을 끌었다. 부모님을 졸라서 공연장에 자주 찾아다녔는데, 그때마다 귀를 파고드는 묘한 악기 소리가 있었다. 당당하게 선율을 이끄는 그 악기 소리가 그저 좋았다. 나중에 알게 된 악기 이름은 바이올린이었다. 마침 나영양이 다니는 서울맹학교 밴드부 선생님으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울 수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활을 잡았던 그 때를 나영양은 “마음의 소리를 직접 표현하게 된 순간”으로 기억한다. 중학교 1학년 때까지 기초를 배운 뒤에는 나영양 혼자 음반을 들으며 3년 동안 독학했다. “부모님께 몇십만~몇백만원 하는 레슨비 부담을 드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2월, ‘애원’의 주선으로 나영양은 안양대 김인호 교수를 만나게 됐다. 나영양의 열성에 탄복한 김 교수는 매주 한두 차례씩 무료로 나영양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시각장애인이 악기를 배우는 데에는 모든 것이 장애물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점자 악보를 구할 수가 없어서 김 교수가 음 하나하나에 대해 음정과 음표를 설명하고, 직접 일일이 시범을 보여줘야 했다. 보통 아이들이 1시간이면 배울 것을 익히는 데 10시간씩 걸렸지만, 연습을 거른 적이 없다. 김 교수는 “악보를 보지 못한다는 것은 음악 하는 데 치명적이어서, 성악가인 안드레아 보첼리말고는 시각장애인 연주자는 본 적이 없다”는 말로 제자의 노력을 설명했다. 첫 무대를 마친 나영이는 요즘 새 목표에 도전하고 있다. 영어는 회화가 어느 정도 되고 일본어도 기초를 갖췄다. 앞으로 프랑스·중국·독일·러시아·아랍어 등 5개 국어를 배우는 게 목표다. “이츠하크 펄먼 같은 연주자를 만났을 때 한마디라도 제대로 하고 싶어서”다. “‘장애인인데도 대단한데’라는 식으로 설명되는 건 싫어요. 사람에겐 누구나 비슷한 정도의 아픔이 있잖아요. 제겐 시각장애라는 아픔이 있지만 앞으로도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은 일을 해볼 거예요.”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꿈씨음악화서 ‘아름다운 로즈마리’ 독주…“뿌듯해요” 선천성 녹내장을 앓으며 태어난 나영양은 초등학교 1학년 때 모든 시력을 잃었다. 빛을 잃자 대신 ‘소리’가 새롭게 들리기 시작했다. ‘클래식 음악’이 특히 어린 나영양의 마음을 끌었다. 부모님을 졸라서 공연장에 자주 찾아다녔는데, 그때마다 귀를 파고드는 묘한 악기 소리가 있었다. 당당하게 선율을 이끄는 그 악기 소리가 그저 좋았다. 나중에 알게 된 악기 이름은 바이올린이었다. 마침 나영양이 다니는 서울맹학교 밴드부 선생님으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울 수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활을 잡았던 그 때를 나영양은 “마음의 소리를 직접 표현하게 된 순간”으로 기억한다. 중학교 1학년 때까지 기초를 배운 뒤에는 나영양 혼자 음반을 들으며 3년 동안 독학했다. “부모님께 몇십만~몇백만원 하는 레슨비 부담을 드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2월, ‘애원’의 주선으로 나영양은 안양대 김인호 교수를 만나게 됐다. 나영양의 열성에 탄복한 김 교수는 매주 한두 차례씩 무료로 나영양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시각장애인이 악기를 배우는 데에는 모든 것이 장애물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점자 악보를 구할 수가 없어서 김 교수가 음 하나하나에 대해 음정과 음표를 설명하고, 직접 일일이 시범을 보여줘야 했다. 보통 아이들이 1시간이면 배울 것을 익히는 데 10시간씩 걸렸지만, 연습을 거른 적이 없다. 김 교수는 “악보를 보지 못한다는 것은 음악 하는 데 치명적이어서, 성악가인 안드레아 보첼리말고는 시각장애인 연주자는 본 적이 없다”는 말로 제자의 노력을 설명했다. 첫 무대를 마친 나영이는 요즘 새 목표에 도전하고 있다. 영어는 회화가 어느 정도 되고 일본어도 기초를 갖췄다. 앞으로 프랑스·중국·독일·러시아·아랍어 등 5개 국어를 배우는 게 목표다. “이츠하크 펄먼 같은 연주자를 만났을 때 한마디라도 제대로 하고 싶어서”다. “‘장애인인데도 대단한데’라는 식으로 설명되는 건 싫어요. 사람에겐 누구나 비슷한 정도의 아픔이 있잖아요. 제겐 시각장애라는 아픔이 있지만 앞으로도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은 일을 해볼 거예요.”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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