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서귀포 성산읍 삼달리에 이상엽씨가 손수 지은 삼달다방과 게스트하우스는 휠체어 이용자들에게 맞춘 무장애 공간이다. 사진 이상엽씨 제공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잇는 문화 공간, 제주와 육지를 잇는 소통 공간을 제주에 만드는 것이 제 오랜 바람이었습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삼달다방’을 검색하면 ‘#제주무장애여행 #제주휠체어배낭여행 #제주갬성’ 같은 해시태그가 뜬다.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의 게스트하우스 겸 다방인 삼달다방이 그동안 제주 여행이 여의치 않았던 장애인, 시민사회운동 활동가, 사회복지 노동자들을 위한 쉼터이자 감성 풍부한 문화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무심한 듯 무심하지 않아 ‘무심’이라고도 불리는 이상엽(52) 대표는 다방 이용자들에게 찻값을 받지 않는다. 다방 옆에 만들어둔 방 4개짜리 게스트하우스는 1박에 2만5000원이라지만 공익활동가들에게는 그나마 받지 않는다. 지금 삼달다방 옆엔 또다시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대체 무슨 사연일까.
건설업체 20년간 ‘사회공헌’ 인연
5년전 서귀포 게스트하우스 ‘정착’
공익활동가 무료…‘키다리 아저씨’
작년 가을부터 ‘장기대여’ 집짓기
장애운동가 이규식씨 첫 기금 쾌척
“장애-비장애 잇는 사다리 공간으로”
이상엽씨는 4월19~21일 열리는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집행위원장도 맡아 홍보에 앞장서고 있다. 사진 이유진 기자
그는 몇년 전까지만해도 중견 건설회사에서 20년 동안 일해온 건실한 회사원이었다. 홍보와 사회공헌사업 파트를 맡아 기업과 시민사회계를 잇는 사다리가 되곤 했다. 30년 동안 각종 공익운동단체의 문화기획자로 활동해 시민운동계의 ‘키다리 아저씨’로도 유명하다. 장애인, 여성, 인권 단체들 등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마당발’이었다.
5년 전 그가 문득 서울을 떠난다고 했다. 건강이 나빠진 뒤 직장인의 삶을 접고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지난 2014년, 퇴직금과 집 판 돈을 모아 제주로 내려갔다. 치병이나 귀촌이 아니었다. 삼달리에 터를 잡고 혼자, 때론 이웃과 함께 손수 집을 지어나갔다. 물론 자기만의 집이 아니었다. 2017년 11월 완성한 숙박동은 장애인이나 공익활동가를 위한 게스트하우스로, 다방은 만화책 5천권을 포함 1만여권의 책을 보유하고 있는 북카페이자 영화 상영·북토크·공연 등 각종 행사가 가능한 다목적홀이다. 두 채 모두 현관, 화장실 등에 턱이 없어 휠체어가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무장애(베리어프리) 시설로 지었다.
제주에 여행 온 장애인들을 위해서 휠체어 리프트카도 마련했다. 예약 대기가 밀려 있는 제주 장애인콜택시 대신 이용할 수 있는 차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가진 돈을 털어 중고차를 구입하고 주변의 후원을 받아 수리를 마쳤다. 이 ‘노란 버스’의 이용료는 무료. 삼달다방의 손님들을 태우거나 제주 여행을 하는 장애인들에게 무상대여도 한다.
이제 좀 쉴 만도 하건만, 지난해 9월부터 이 대표는 다시 집을 짓고 있다. 공사중인 건물은 장애인이나 비장애인 활동가들이 제주 한달살이를 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다. 아내인 박옥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사무총장의 동지이자 이 대표의 10년지기 친구, 장애운동가 이규식 이음장애인자립센터 소장이 대뜸 전화로 계좌번호를 알려달라더니 송금을 해왔다. 주택청약 통장을 깨 장애인들이 제주에서 좀 더 오래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달라 부탁했던 것이다. 이 대표는 오랜 고심 끝에 결국 다시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사실 고민했어요. 삼달다방을 막 지었고 경제적으로 버거운 상황이었거든요. 하지만 장애인들과 활동가들이 좀 더 편안히 여유있게 쉴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결심을 했죠.”
모자란 건축대금은 무턱대고 은행 대출부터 받았다. 답답한 그를 보다 못한 친구들이 먼저 팔을 걷어붙여 건축기금을 모으는 ‘삼달 살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의 도움을 받은 장애·인권운동계 활동가들이 자발적으로 도우미로 나섰다. 펀딩사이트 텀블벅도 곧 열릴 예정이다.(tumblbug.com/samdal_ieum, 후원계좌 352-1380-7004-63 농협 이상엽)?
이 대표는 19~21일 서울 마로니에공원에서 여는 ‘제17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조직위원장 문경란·박경석)의 집행위원장까지 맡고 있다.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과 영화제 조직위원회가 주최하는 이번 행사는 장애 당사자가 직접 연출과 제작을 맡아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국내 최초·최대 규모의 장애인 인권 영화제다. 올해 주제는 ‘사다리를 잇다’.
“사다리는 높은 곳과 낮은 곳을 오르내릴 때 디딜 수 있는 도구잖아요. 사회적 차별과 편견 속에 저항해온 장애인들의 요구를 상징하는 것이죠. 장애등급제 폐지를 요구하는 중증장애인 활동가들이 국회 앞 시위에서 목에 건 것도 사다리예요. 많은 참여를 부탁합니다.”
모두 12편의 작품을 상영하는 영화제의 개막작은 <애린>(감독 조승연). 다양한 외국 다큐멘터리 연대작도 만나볼 수 있다. 영상활동가 고 박종필 감독의 <석암투쟁 10년> 등을 주제로 다양한 부대행사도 마련된다. (www.420sdff.com)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