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면역력이 약해지는 증상을 가진 루푸스, 당뇨,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인스타그램 @visability93 갈무리
기존의 휠체어 탄 장애인 기호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29가지 장애인 기호를 만든 디자이너들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도 배려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1968년 디자인 된 후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국제장애인접근성표지(ISA). Pixabay.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쓰이는 장애인 기호는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68년, 당시 디자인 전공 학생이었던 덴마크인 수잔 쾨푀드가 만든 것이다. 공공 화장실이나 주차장, 대중교통에서의 장애인 배려 공간을 표시할 때 사용하는 위 기호의 공식 명칭은 국제장애인접근성표지(ISA · International Symbol of Access)다. 이 장애인 기호 탄생 50주년을 맞아, 영국의 한 디자인 회사가 새로운 장애인 배려 기호를 공개했다.
’비저블리티93’ 프로젝트의 공식 포스터. ”이 화장실은 모든 장애를 가진 이들을 위해 개방되었습니다”라고 적혀있다.
공개된 기호는 총 29종이다. 프로젝트의 이름은 전 세계 장애를 가진 인구의 93%는 휠체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데서 따온 ‘비저블리티 93
(Visability 93)’이다. 맥켄 런던사무소 소속의 여러 디자이너들이 하나둘씩 고안해 총 29종의 장애인 기호를 만들었다.
이들은 공식
누리집에 “새 기호 디자인에 참여한 디자이너들은 가까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진 이들이 있다”며 ”디자인을 통해 장애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시작하려고 한다”고 프로젝트 취지를 설명했다. 29종의 기호에는 알츠하이머, 크론병, 당뇨, 루푸스, 류머티스성 관절염, 조현병, 불안장애, 통합운동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등이 포함됐다. 모두 겉모습만으로는 알아채기 어렵지만, 공공시설을 이용할 때 응급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질환들이다.
당뇨 환자를 표현한 기호. 인스타그램 @visability93 갈무리
자폐성 장애가 있는 이들도 갑작스럽게 높은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 별도 화장실을 쓰거나 배려석에 앉아야 할 수도 있다. 인스타그램 @visability93 갈무리
불안장애를 표현한 기호를 인쇄한 티셔츠. 인스타그램 @visability93 갈무리
가족 중 소화기에 만성 염증이 생기는 크론병 환자가 있다는 참여 디자이너 리암 리들러는 〈패스트캠퍼스〉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사용하는 휠체어 기호가 강렬하고 효과적이기는 하지만, 그런 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진 이들을 배제해온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공개한 새 기호들이 기존의 기호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지만, 이같은 디자인이 존재한다는 사실 만으로 사람들의 인식을 조금씩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맥켄 쪽은 29개 장애를 선택하는 데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다며, 앞으로도 더 많은 기호를 디자인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29개 기호 전체 디자인은 누리집
(www.visability93.com/icons)에서 볼 수 있다. 맥켄 쪽은 이 기호들을 글꼴로 내려받아 설치할 수 있도록 오픈 소스로 공개했는데, 마찬가지로 누리집(
www.visability93.com/s/Visabilty-93-V10.zip)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박수진 기자
sujean.par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