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곤 기자
4~5일 서울에 강추위가 몰아쳤다. 여의도 국회 앞 농성장. 바람이 휑하니 불어 천막 위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잔설을 매몰차게 흩뿌렸다. 천막을 에워싼 비닐을 들치니 한 장애인이 홀로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그 너머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이부자리와 식기들…. 자세히 보니 까까머리였다.
김광이 장애인차별금지법(장차법) 제정 추진연대 사무국장은 지난 10월26일부터 이곳에서 다른 장애인들과 번갈아 농성을 벌여 왔다. 유엔이 정한 세계 장애인의 날(3일)에는 머리카락마저 잘랐다. “잘려진 머리카락은 지금껏 차별받아 왔던 아픔과 수치, 고통과 눈물”이며 “삭발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고 한다.
그는 국회에서 장차법을 제정할 때까지 농성을 멈출 수 없단다. 장애인들 스스로 마련한 장차법은 지난 9월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발의한 것으로, 국무총리 산하 차별시정위원회 설립·시정명령 등의 강력한 차별금지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 법은 아직도 국회 상임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고 있다. 국회의원들과의 면담도 있었고 약속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손에 딱 쥐어지는 것은 없다.
한때 장차법을 독자적으로 추진했다 제정을 중단했던 정부도, 언론도 그저 ‘한때의 관심’일 뿐이었다. 김 국장은 장차법이 상정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차별시정 업무를 국가인권위로 일원화하려는 정부 방침 때문“이라고 한다. 인권위는 현재 이런 전제 아래 전반적인 차별금지법안 제정을 준비중이다.
하지만 김 국장은 “일원화 방침은 장애인의 처지를 진정 고려하지 않은 관료적 모습”이라고 반박했다. 현재 미국을 비롯해 30여개국에서 장차법이 제정돼 있다. 따지자면 장차법 제정은 장애인만의 일이 아니다. 장애 원인의 90%가 사실 교통사고 등 후천적인 요인이기 때문이다. 이창곤 기자 g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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