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서천군에 있는 한 정신요양원 건물. 1997년 정신질환자 인권유린 사태가 알려지면서 당시 보건복지부에 의해 폐쇄됐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제공
정신요양시설은 정신질환자를 입소시켜 사회복귀를 위한 훈련을 돕는 곳입니다. 그러나 장기 입소자 1만693명 중 10년 이상 머문 이는 전체 입소자의 50.2%에 이릅니다(2014년 말 기준). 대부분의 정신질환자가 지역사회로 복귀하지 못했다는 뜻이지요. 그들은 왜 그곳에서 이토록 오랜 기간 동안 머물 수밖에 없었을까요?
문재인 정부는 7월19일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에 ‘(장애인의) 탈시설 등 지역사회 정착 환경 조성’을 포함시켰다. 이어 같은 달 국가인권위원회는 전국 중증·정신 장애인 수용시설에 대한 전면적인 실태조사에 들어갔다. 중증·정신 장애인 수용시설만 집중해 정부가 실태조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장애인 수용시설의 문제점을 밝히는 것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해당 입소자가 시설 밖으로 나와 지역사회에 적응하는 단계를 고려하기 위해서다. 이와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는 “중증장애·정신요양 시설에 있는 장애인에 대한 치료와 보호가 절차에 따라 이뤄지는지, 인권침해가 없는지 등에 대해 우선적으로 알아보려는 것”이라 말했다.
국내 정신요양원 최초 조사
한달에 한두번 외출 허용
‘퇴소’ 방법 몰라 세상과 단절
40여년 전 입소한 환자도 있어
장애인단체들 ‘탈시설’ 요구
“‘보호’ 명분으로 ‘격리’ 말라”
스웨덴, 장애요양시설 폐쇄
장애인 80% 탈시설 후 만족
이번 실태조사는 전국 233개 중증장애인 시설 중 40곳, 59개 정신요양시설 중 35곳을 선정해 개별면담 및 설문조사 방식으로 진행된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 3개 기관이 중증·정신 장애인 수용시설 실태조사 관련 용역 업무를 맡았다. 여기서 정신요양시설이란 만성적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요양과 사회복귀를 위한 훈련을 행하는 곳을 말한다. 입소 대상은 자의입소자,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소자(강제입소)로 나뉜다.(※옛 정신보건법 규정에 의해 시장·군수·구청장이 보호의무자가 돼 해당자를 입소시키는 경우는 최근 법 개정으로 삭제됐다.) 현재 국내 정신요양시설들은 과연 제 기능을 하고 있을까? <한겨레>는 한 정신요양시설 실태조사 현장을 동행했다.
한 정신요양원의 내부 전경. 입소자들의 신발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이곳 입소자에게 개인물품은 극히 조금밖에 허용되지 않는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제공
설명 들은 적도, 본인 서명한 적도 없어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은 여름의 끝자락, 전라북도에 위치한 A정신요양원의 본관 옥상에 햇볕이 내리쬐었다. 오전 9시 반 무렵, 직원들이 회색 콘크리트 바닥 위에 20여개의 철근 의자를 줄 맞춰 배치하기 시작했다. 그 옆으로 자원봉사자 10여명이 미용도구를 꺼내들었다. 이들은 정신요양원 입소자들의 이발을 돕기 위해 이곳을 찾은 미용사들이다. “위잉~.” 머리카락을 다듬을 때 쓰는 미용기구인 ‘바리캉’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입소자 20여명이 의자에 앉자마자 자원봉사자들이 각자 바쁘게 바리캉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 소리가 옥상을 메우는 동안 자원봉사자와 입소자 간에는 그 어떤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속내를 알 수 없는 무표정. 어느덧 잘려나간 머리카락이 입소자의 어깨나 허벅지 위로 떨어졌지만 이를 털어주는 이는 없었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나머지 입소자들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그 광경을 말없이 지켜봤다. 이윽고 성별에 관계없이 비슷해진 짧은 머리들, 그 위로 좀 전과 별반 달라지지 않은 햇볕만이 환하게 쏟아졌다.
실태조사에 나선 한 활동가는 “누가 봐도 칭찬해드릴 만한 봉사의 현장이었지만, 사소한 부분에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처음 만난 자원봉사자와 입소자가 서로 기본적인 인사조차 나누지 않고, 바리캉부터 들이대는 모습이 낯설었다. 평범한 사람과 사람 간의 만남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날 장기 입소자 오선화(가명·60대)씨를 만났다. 1990년대 초반 정신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고 이곳에 들어왔다는 게 오씨에 관해 이 정신요양원에 기록된 내용이다. 20년 넘게 이곳에 거주해온 셈이다. 그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한동안 식당에서 설거지 일을 하다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이곳에 왔다. 들어오는 과정에서 이 정신요양원에 입소하겠다는 본인 서명을 한 적이 없고, 이 시설이 어떤 곳인지에 대한 설명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2015년 보건복지부가 정신요양원 59곳에 대해 정리한 ‘정신요양원 장기 입원자 현황’에 따르면 가족 등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이 6476명(59.1%), 시·군·구청장에 의한 입소가 3351명(30.5%)에 이르렀다. 타인에 의한 강제입소 비율이 90%나 되는 셈이다. 오씨도 그중 한 사람이다.
자원봉사자가 짧게 다듬어놓은 머리를 매만지는 모습에 “새로 한 머리가 마음에 드냐”고 묻자, 오씨는 “네”라고 짧게 답했다. 가족 얘기에 이르자 답변이 제법 길어졌다. “가족은 어디 계시냐”는 질문에, 그는 “엄마가 ‘여기서 사는 게 좋다’고, ‘평생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대여섯차례나 “추석에 엄마가 올 거다”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사는 거주지는 물론 연락처도 알지 못했다. “가족과 마지막으로 연락한 적이 언제냐”고 묻자, 오씨는 한참이나 답하지 못하다가 “추석에 엄마가 올 거예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잠시 침묵하다가 “꼭 올 거예요”라고 다시 말했다.
오씨는 6평 남짓한 방에서 5명의 입소자와 생활한다. 지난해 입소자 한명과 다툰 일 때문에 시설 직원에게 ‘방을 바꿔달라’ 사정을 해봤지만, 통하지 않았다고 한다. 공동거실엔 입소자들이 사용하는 개인사물함이 있지만, 그 안에는 오씨의 물품이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몇몇 직원들이 그의 사물함에 자신의 양말이며 물품을 넣어둔 터였다. 이 시설은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 사이에만 개방된다. 한달에 한두번 외출이 허용되는데 이때 시설 직원을 따라 근처 마트를 방문한다. 오씨는 그 시간이 가장 즐겁다고 했다. 마트 안에서 외부 사람들을 오랜만에 구경할 수 있어서다. 그는 “바깥 사람들은 드라마처럼 사는 것 같아 놀랐다”면서 올해 초 방영했던 티브이엔(tvN) 드라마 <도깨비>를 언급했다. “시설에서는 할 게 없어서 티브이로 드라마를 자주 봤지요.” 그러면서도 오씨는 바깥세상의 자유로운 삶에 대한 기대는 완전히 접었다고 했다. “그런 건 안 일어나요. 포기하게 돼. 하루하루 그래요. 그냥 사는 게 포기예요.”
무기력이 일상화되는 시설병 앓아
2014년 말 기준으로 전국의 3년 이상 장기 입소자 1만693명 가운데 40년이 넘은 사람은 28명, 30~40년 618명, 20~30년 1600명, 10~20년 3119명이다. 10년 이상 장기 입소한 사람의 비중이 전체 입소자의 절반에 이른다. 30년 이상 장기 입소자(646명)는 교도소에 30년 이상 수감된 수형자(15명)에 견줘 43배나 많은 수치다.
다른 정신요양원을 상대로 실태조사에 참여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염형국 변호사 역시 “방문했던 정신요양원 2곳도 입소자의 대부분이 20~30년 이상 시설에서 거주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심지어 27살 때 들어와 현재 72살이 된 입소자도 있었다. 국내 한 정신요양원에서 40여년의 세월을 보낸 이지순(가명·72)씨는 염 변호사의 질문에 그저 “고단하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31살 때 이 정신요양원에 들어와 35년여를 지낸 유아무개씨도 장기 입소자다. 대학원 문제로 부모와 크게 다투다가 이곳에 입소하게 됐다는 게 유씨의 설명이다. 유씨는 “마음이 힘들다. 여기서 나가 지금이라도 자유롭게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이 정신요양원에서 생활하는 대부분의 입소자에게는 개인물품이 없거나 극히 조금밖에 허용되지 않았다. 심지어 속옷조차 남녀 구분 없이 공용이었다. 염 변호사는 “입소자들은 ‘원복’이라는 단체복을 입고 외출도 통제된 채 삼시 세끼 밥 먹고 정신과 약을 먹으며 긴 시간을 견뎌내고 있었다”며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의 입소자들은 시설에서 나가고 싶어하는데, 그 누구도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원식(가명·47)씨는 A정신요양원을 탈출했다가 가족과 연락할 방법을 찾지 못해 요양원으로 돌아온 케이스다. 평소 담당 의사에게 “정신질환 증세가 나아졌다”고 제아무리 설명해도 담당 의사는 정씨의 차트에 ‘자신의 병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 병식 결여’라고 적었다. 요양시설에 ‘감금’된 처지를 비관한 정씨는 결국 시설 직원의 눈을 피해 야산으로 도망쳤지만 갈 곳이 없어 돌아와야만 했다. 그는 “나의 동의 없이 형들이 이곳으로 (나를) 보냈다. 가족이 보고 싶다. 제발 나가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호소했다.
정씨처럼 삶의 의지가 남아 있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대부분은 ‘시설병’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여준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시설병은 정신장애요양시설(정신요양원)에 오래 머문 결과 무기력이 일상화되는 일종의 정신적 후유증”이라며 “요양시설에서 오래 지낼수록 장기간 강제적으로 복용해야 하는 정신과 약물 등 때문에 심신이 무기력해지는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입소자들은 자신이 먹는 약이 어떤 효능이 있는지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한 채 매일 일정한 시각에 알약들을 삼켜야 한다. 식사 때마다 아예 밥에 알약을 섞어 나눠줘 복용을 거부할 수 없게 하는 경우도 있다. 여 활동가는 “사람이 아니라 좀비가 사는 곳처럼 느껴진다”며 “여기가 감옥이지, 재활을 목적으로 하는 요양시설이라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2005년부터 국내 장애인단체들은 꾸준히 ‘탈시설’을 요구해왔다. 장애인들을 ‘보호’란 명분으로 ‘격리’하지 말고,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살 수 있도록 정책 방향을 바꿔달라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심각한 수준의 인권침해가 아니더라도, 시설이라는 공간 안에서 장애인들의 자기결정권은 단체생활, 안전 등의 명목으로 극도로 제한돼왔다.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시설 장애인들의 58%가 퇴소를 희망했고 83%가 비자발적으로 시설 입소를 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염 변호사는 “정신병원 강제입원 절차 강화와 정신질환자 지역사회복지를 골자로 하는 개정 정신건강복지법은 정신장애인의 탈원화 시대를 여는 법”이라며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 취지에 발맞춰 정신요양시설에서 오래 지내고 있는 입소자들이 지역사회에 들어와 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A정신요양원에 22년째 입소 중인 임미진씨는 곧 추석이라는 사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제공
시설수 10년 새 5배 늘어
그럼에도 장애인수용시설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지난 6월 국회에서 열린 ‘탈시설-자립생활, 진정한 의미와 방향은 무엇인가?’ 세미나에서 문혁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상임활동가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정신장애요양시설을 포함한 장애인수용시설 수는 2006년 288곳에서 2015년 1484곳으로 약 5배 증가했다. 입소자 수 역시 2만598명에서 3만1222명으로 1.5배가량 늘었다. 문혁 활동가는 “전체 장애인요양시설 이용자의 77%가 발달장애인이고, 90%는 기초생활수급자”라며 “사회적 취약계층 중에서도 제일 약자이며,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장애인요양시설로 입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역사회로 나가고 싶어도 재정적인 토대가 마련되지 않아 이를 포기하는 경우가 상당수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캐나다는 2009년 장애인요양시설을 전면 폐쇄했다. 장애인요양시설에 투입됐던 예산은 지역사회 중심의 서비스 개발을 위해 쓰이고 있다. 스웨덴은 1999년 모든 장애인요양시설을 폐쇄했다. 당시 스웨덴 정부 쪽 조사에선 장애인의 80%가 탈시설 이후 생활에 만족했다.
이날 A정신요양원에 22년째 입소 중인 임미진(가명·54)씨는 머지않아 추석이라는 사실을 똑똑히 인지하고 있었다. 임씨는 “가족한테 연락하고 싶은데 직원이 안 도와준다”며 그는 자신의 손가락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는 거듭 우울하다고 했다. ‘왜 우울한가’란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는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 “포기하게 되니까, 자꾸.”
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