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 고리’를 모으는 사람이 늘고 있으나, 정작 1만개를 모아도 휠체어로 교환할 수는 없다.
[추적] 캔고리 휠체어 ‘교환설’의 기원과 진실
“캔 뚜껑에 달린 고리 1만개를 모으면 휠체어를 바꿔준다.” 일반에 널리 알려진 내용이다. ‘캔 뚜껑따개 고리 휠체어’ 얘기는 이렇다. 캔뚜껑 고리 1만개를 모아서 장애인단체에 전달해주면, 자신의 이름으로 장애인에게 휠체어를 기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용 부담 없이 자원도 재활용하고, 장애인에게 도움된다는 여러 취지로, 어린 아이에서 어른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고리를 수집하고 있다. 1만개를 모으면 정말 휠체어를 줄까? 1만개를 모으려면 얼마나 걸릴까? 누가 바꿔줄까? 그리고 캔 고리는 무슨 특별한 성질의 합금일까? 꼬리를 무는 궁금증을 풀어보았다. 캔 고리 70만개 모아야 가능 음료수 캔은 몸통과 뚜껑 부분으로 나뉜다. 수집의 대상이 된 것은 캔 뚜껑에 달린 ‘고리’다. “캔 뚜껑 고리 1만개를 모으면 휠체어로 바꿔준다”는 결론부터 말하면 ‘거짓’이다. 아직까지 교환이 이뤄진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캔 고리는 1만개를 모아봐야 2Kg쯤 되는 데, 가격으로 따지면 2000원에 불과하다. 휠체어 한 대의 가격이 15만원~20만원인 걸 감안하면 캔 고리 1만개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최소한 캔 고리 75만개를 모아야만 휠체어를 살 수 있다는 얘기다. 75만개는 하루에 한 개씩 모으면 2054년이 걸리는 ‘대프로젝트’다. 이쯤 되면 차라리 돈을 모금하는 게 더 여러 모로 경제적이다. 누리꾼들이 지식검색에 올려놓은 글을 보면, “캔 뚜껑 1000개 모으면 휠체어 바꿔준다”는얘기에서 “캔 뚜껑은 특수합금으로 하나에 50원”이라는 내용까지 다양하다. 이들 이야기는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번져나갔다. 아예 휠체어 얘기는 사라지고 ‘돈벌이’가 되는지 문의하는 누리꾼의 글까지 보인다. 롯데알루미늄 “캔하나는 71원…뚜껑은 20원이나 고리는 얼마 안돼”
제조회사 “캔 고리 휠체어 교환설 어디서 나왔나 ‘우리도 궁금해’ ” 캔 음료 깡통을 만들고 있는 롯데알루미늄쪽은 “알루미늄 캔 하나의 가격은 제조가격인 71원”이라며 “캔 윗부분 뚜껑은 20원이나 캔 고리는 가격을 따져도 얼마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캔 제조회사 쪽은 “캔 고리에 대한 문의가 많은 데, 어디서 그런 얘기가 나왔는지 자신들도 궁금하다”며 “캔 고리를 떼면 재활용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언론의 잘못된 보도가 ‘진실’로 둔갑 그럼에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왜 캔 고리를 모으고 있을까?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언론의 탓이 크다. 지난 3월5일 <문화방송> ‘느낌표’에서는 11번째 황금배지 주인공 정아무개씨가 “알루미늄 특수합금으로 외국에서 로열티를 주고 수입한다” “캔 고리 2kg를 모으면 휠체어를 바꿔준다”는 내용이 그대로 방송됐다. 정씨가 활동하는 ‘파란나라 사랑나눔회’(http://cafe.daum.net/koinonialove) 카페에서도 캔 고리를 모으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올해 5월까지만 하더라도 2kg을 모으면 휠체어를 바꿔준다는 잘못된 내용을 알고 있었다. <국민일보>도 지난 5월29일 ‘캔 뚜껑 1만개 수집 효심 휠체어 얻고 또 남겼다’라는 기사를 통해,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이 외할아버지에게 휠체어를 선물하려고 캔 고리를 모으려고 쓰레기통까지 뒤져 ‘깡통소녀’라는 별명까지 얻었다는 내용이다. 게다가 이 여중생은 기독교 봉사단체에서 휠체어를 기증받아, 어렵게 모은 캔 고리는 기증했다는 것이다. 기사가 나간 뒤, 포털 기사 게시판에는 댓글이 수백개 달렸다. 댓글을 남긴 누리꾼들은 “나도 캔 고리를 모으겠다”는 얘기가 많았다. 국민일보의 기사 내용은 3일 뒤 <문화방송>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통해서도 방송이 됐다. 하지만 시선집중은 곧바로 정정방송을 내보내야만 했다.
<문화방송> ‘느낌표’는 3월5일 방송을 통해 “캔 고리 1만개를 모으면 휠체어로 바꿔준다”는 출연자의 얘기를 아무런 검증없이 그대로 내보냈다.
10년전 얘기가 아직도 ‘재탕’ 캔 고리 얘기는 뿌리는 깊다. 장애인봉사단체 다음카페 ‘편한세상 아름다운 세상(http://cafe.daum.net/johnnara)’ 대표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990년대 초 모 재일교포 사업가가 한국의 모 탤런트를 내세워서 캔 뚜껑 일만개와 휠체어를 바꾸어주는 멋진(?) 계획을 발표했다. 지금은 캔 뚜껑이 캔에서 떨어지지 않게 만들어져 나오지만 그 때만 해도 캔과 고리가 분리되게 생산되었다. 사람들이 캔 고리를 아무데나 버리는 바람에 폐지 속에도 들어가 종이류 재활용 기계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그것을 방지하고자 휠체어와 교환해 준다는 이벤트를 발표하게 되었다. 그 후 후원을 하겠다던 재일교포 기업은 부도가 났고 '캔 고리와 휠체어 교환'은 시작도 해 보기 전에 끝이 났다.” 캔 고리로 모아 휠체어 받은 사람 ‘0명’ 물론 캔 고리를 모아 휠체어를 기증하는 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파란나라 사랑나눔회’는 캔 고리를 모아 휠체어를 기증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 단체도 휠체어 한 대를 바꾸는 데 드는 캔 고리는 쌀 한 가마니 분량인 ‘80kg’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애초 2kg를 얘기했다가 뒤늦게 80kg을 모아야 한다고 알림글을 띄웠다. 하지만 파란나라 사랑나눔회쪽도 아직까지 캔 고리를 휠체어로 바꾼 사례는 한 건도 없다. 파란나라 사랑나눔회쪽은 “지금도 계속 모으고 있다”고만 말했다. ‘80kg을 모았을 때는 가능하냐’고 물어보니 “가능하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방법이나 계획은 “다른 쪽에서 맡고 있으나 연락이 힘들다”고 얘기했다. ‘모금이 더 빠른 방법 아니냐”는 질문에 “모금이 잘 안 된다”고 말했다. 이런 불문명한 태도로 인해 아직도 많은 사람이 캔 고리 1만개만 모으면 좋은 일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모금활동이나 봉사활동해야” 지난 5월 인터넷 장애인신문 에이블뉴스에 ‘캔 고리 휠체어 교환은 뜬 소문’이란 글을 쓴 이복남 하사가장애인상담넷 원장은 “캔 고리를 모아 장애인을 위한 마음이 안된다고 하면(캔 고리를 모아도 휠체어로 바꿔주지 않는다고 하면) 사랑이라는 감정을 오히려 피폐시킬 수 있다”며 “캔 고리를 모으는 시간에 봉사를 하거나 돈을 모금하는 게 더 빠르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휠체어는 건강보험에서 80%를 지원해주기 때문에 수동 휠체어는 4만원이면 살 수 있어 모금이 더 현실적인 도움방법”이라고 덧붙였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이승경 기자 yam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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